▲장일순 선생무위당 장일순 선생
무위당 사람들
그는 연설 때나 사람들을 만나면 노자의 물처럼 살라고 당부하였다.
"물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다. 둥근 그릇에선 둥글고, 모진 데선 모지다. 많이 모아도 물, 작게 갈라놓아도 물이다. 끓여 증발해도 물이요, 얼어도 물이다. 물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지만 끝내 자기를 잃지 않는다. 또한 물은 아래로 아래로 흘러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한 방울의 물은 아무 것도 아니나 바다의 성난 파도는 무섭다. 즉 가장 유약한 것이 가장 강할 수 있다."
전두환의 광기가 펄펄 날뛰던 시절, 대한성공회 광주교회 김경일 신부가 원주로 장일순을 방문하고 소감을 남겼다.
"장일순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의 첫 인상은 맑고 큰 눈 때문에 유순한 소 같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시국과 정치에 대해 조근조근 말씀하실 때면, 크고 오똑한 코가 철학이 분명한 강직한 정치가라는 느낌을 주었고, 선시를 읊고 노자를 말씀하다 동학으로 넘어가서 예수의 복음을 새롭게 해석하는 지경에 이르면, 종교의 경계를 넘어가서 그 본질에 들어가 일반 종교인이 넘볼 수 없는 경지에 계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석 1)
여기서 중요한 것은 김 신부의 '장일순 관'이 아니라 그날 있었던 다음의 대담 내용이다.
"선생님! 소문을 들으셨겠지만, 군사정권이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몽땅 잡아들여 한꺼번에 학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구체적인 명단 작성에 들어갔다고 하는 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당국에서 혹 실수로 내 이름을 빠뜨릴까 걱정이네. 그거야말로 큰 망신 아닌가? 사람들이 전두환을 겁내지만, 그 사람이 사람 죽이는 거 외에 무얼 알겠는가? 군대라는게 그런 것 아닌가? 그 정도는 주머니 속의 공깃돌처럼 굴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주석 2)
부드러움으로 강한 것을 물리쳐야 한다는 신념이고 철학이었다. 다음과 같은 비화도 전한다.
1970년대 중반 원주와 연고가 없는 김 모씨가 낙하선 공천으로 원주 지역구 여당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시내 고급 술집에서 원주시장을 비롯하여 지청장, 지원장, 경찰서장 등 권력기관장들과 지역인사들이 함께하여 축하연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기관장들이 당선자에게 술을 먼저 따르면서 설설 기니까 무위당이 화를 벌컥 내며 '김의원, 이분들 덕에 당선되었으니 당신이 먼저 술을 따르시오. 대접만 받지 말고 먼저 대접하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습니다.
그런데 나가면서 술집 주인에게 부탁하여 술값을 외상으로 하고 절대 다른 사람의 돈은 받지 말라고 다짐을 하고 갔어요. 나중에 이를 알고 경찰서장이 돈을 싸들고 무위당을 찾아갔지만 끝까지 거절했습니다. 술값이 적지 않은 금액이었는데 무위당이 무일푼인 사정을 잘아는 전 중앙의원 원장 이관형(작고) 씨 등이 나중에 슬그머니 대납했어요.
당시는 지역구 국회의원이 모든 것을 쥐고 흔들 때였는데 무위당은 지역출신도 아닌 사람이 관권선거 덕에 당선되고도 유권자인 지역민을 우습게 보는 데 대해 분노했던 것이지요. 지금 같으면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지방정가의 현실이었습니다. (주석 3)
앉았던 자리에 향기는 못남기더라도 추악한 X냄새를 남기는 각계의 지도자라는 인물들이 있다. 두 전직 대통령과 그 주변에서 호가호위하던 자들이 법망에 걸려 발버둥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100년 1,000년이나 살듯이 공권력을 사유화하여 검은 돈을 긁어 모은다. 심지어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까지 뇌물로 챙기면서 입만 열면 '국가안보' 운운하는 파렴치들도 보았다.
장일순이 활동할 때도 다르지 않았다. 전두환ㆍ노태우 정권기 공권력은 '산적의 칼'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세우기는 정의라는 깃발을 들었다.
당시 집권당이 민주정의당이었다. 가장 비민주적이고 반정의, 불의한 집단이 모여서 만든 당명을 민주정의당이라 이름 한 것은 희대의 코미디였다. 그런데도 정치꾼들은 물론 학계ㆍ언론계ㆍ법조계 등 엘리트들이 들어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거나 고위 관료가 되어 으시댔다.
주석
1> 김경일,「불욕이 정천하 장차정(不欲以 靜天下 將自定)」,『무위당 사람들』, 28호, 2009. 5.
2> 앞과 같음.
3> 윤원제,「누구나 끌어 안고 생명을 소중히 여긴 무위당」, 앞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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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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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순의 철학 "부드러움으로 강한 것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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