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등장한 '종북콘서트'(통일 토크콘서트). 위는 2014년 11월 25일(화) 작성된 메모. 아래는 다음날인 11월 26일(수) 작성된 메모.
언론노조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수첩'에 신은미 기자의 행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당시에 그는 이를 몰랐단다. 2년이란 세월이 흘러 '고 김영한 민정수석 비망록'이 공개돼서야 알았다. 김 전 수석의 수첩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황선 & 신은미 토크콘서트 장소제공 관련 조치요' (2014년 11월 22일)
'조계사 - 황선 장소제공 - 개입조사 후 조치(자승)' (2014년 11월 25일)
이 수첩은 특별했다. 지난 2016년 이른바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밝히는 데 주요한 증거로 세상에 공개됐다. 이런 특별한 수첩에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신은미 기자의 토크 콘서트에 개입한 정황이 적혀 있었다.
신은미 기자는 그제야 알았다. 수첩이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조치'(?)대로 토크 콘서트가 잇따라 취소됐었다. 부산상공회의소는 '회의실 중복'을 이유로 불허를 일방 통보했고, 경북대학교는 '학내 여론이 좋지 않다'라며, 장소 제공을 번복했다. 대구YMCA도 '이사회의 불허 결정'을 알려왔다.
수첩엔 수상한(?) 메모도 적혀 있었다. 지난 2014년 11월 26일에 기록된 메모다.
'종북토크 → 통진당 해산 찬성 쪽 여론변화 효과'
이때부터다. 신은미 기자는 그를 향한 '종북몰이'를 의심했다. 주변 사람들도 "통합진보당 해산을 희석하기 위한 '공작'"이라고 했다. 이런 소리, 예전엔 믿지 않았단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단다. 재미동포 아줌마에게 모국이, 평범한 주부에게 한 나라가 그런 잔혹한 일을 벌일 거라곤 쉽게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수첩이 공개되고 나선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이게 끝이 아니다. 지난 2014년 11월 28일, 정윤회 문건 사건이 터진 뒤 수첩에는 '종북토크 → 국민 혼란 초래, 왜곡'이라 기록돼 있었다. 그리고 수첩에 적힌 날로부터 얼마 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소위 종북 콘서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우려스러운 수준에 달하고 있습니다."
폭탄테러를 당한 피해자는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엔 참극을 겪어야 했던 이들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