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적도에서 인천으로 나오는 배 안에서 김흥수. 아픈 다리를 이끌고 덕적도를 헤매고 걸었던 그는 여객선의 객실에서 지쳐 누웠다. 그는 배를 타고 세계여행을 다니고 싶어한다.
변상철
두 사람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간첩 조작 사건으로 또다시 얽히게 됐다. 세 번째 만남은 다방에서였다. 이번엔 변상철 시민기자가 찾아갔다. 이근안의 자서전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고백'을 들고서다.
'간첩 김흥수' 어르신은 이근안 패밀리의 작품(?)이었다. 이근안의 고문이 허위자백을 받아낸 거다. 그와 함께한 수사관들은 김흥수 어르신의 부인을 속여 자신의 남편을 '간첩'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조작된 간첩혐의로 김흥수 어르신은 12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변상철 시민기자는 진실을 추적했다. 이런 기막힌 이야기를 기록하고 세상에 알렸다. 김흥수 어르신의 재심도 도왔다. 이게 납북어부 김흥수 어르신의 사연을 담은 그의 기사다.
[관련 기사] 이근안 '예술'에 절단 난 다리... 늙은 어부의 마지막 소원난 궁금했다. 변상철 시민기자가 기억하는 이근안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물었다.
-직접 만난 이근안 어떤 사람이었나?"그런 사람이 있다. 소위 스타성이 있는 사람들. 이근안이 그랬다. 그는 '고문 경찰계'의 스타였다. 수많은 고문 수사관들 틈에서도 눈에 띄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수사관들도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일까? 다른 수사관들은 이근안을 질투했다. 공은 그가 다 가져갔다고 말했다.
이근안은 반대였다. 고문은 함께해놓고 죄는 자신에게만 덮어씌웠다고 했다. 김근태 고문 사건도 다른 수사관은 10여 일 지나도 해결 못 하는 걸, 자신은 이틀 만에 풀어냈다고 했다. 하지만 박처원은 감옥에 안 들어가고 자신만 (감옥에) 들어갔다며 억울한 듯 말했다. 다른 수사관을 욕했다."
-이근안이 고문도 증언했나?"그와 일한 수사관들은 이렇게 증언했다. 알려 진대로 이근안의 고문기술이 뛰어났다. 듣고 싶은 말만 간결하게 듣는 방법을 알았다. 여기저기 그의 고문기술이 필요한 데가 많아서인지 시간을 끌지 않았다. 그래서 고문할 때, 손가락 하나 정도는 묵지 않았다. 고문을 받다가 용기 있게 고백하고 싶으면 손가락을 움직여 신호를 보낼 수 있게 했다. 질문도 O/X로 선택할 수 있게 물어봤다.
이근안은 이런 말을 했다. 박종철 치사 사건은 고문의 '고'자도 모르는 애들이 한 거라고. 물고문해본 사람은 안다고. 흉부를 압박한 상태서 물고문하면 질식한다고. 그래서 앉아 있는 사람의 목을 꺾어서 물고문하는 게 아니라고. 질식해 숨을 못 쉬게 될 수 있으니. 몸 전체를 거꾸로 매달아야 한다고.
고문 기술을 설명하는 게 다른 수사관과 달랐다. 이러니 고문은 예술이란 소리를 한 게 아닌가 싶다."
여기까지다. 내가 글로 옮길 수 있는 고문 이야기는. 변상철 시민기자는 더 입을 열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근안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