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에서 구고신이 노동법을 가르친 실제 배경이 된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의 모습.
이희훈
16일 오후 4시 서울 금천구 가산동. 한 층에만 십여 곳의 일터가 있는 낡은 아파트 상가. 입구에 있는 중국집의 달큼한 춘장 냄새를 뒤로 하고 3층 꼭대기 층에 다다르자 '남부 노동 상담 센터'라 새겨진 나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니 좁은 사무실 오른편 66㎡(20평) 남짓한 넓이의 노동조합 교육장에서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장이 나왔다. 1994년부터 구로공단 근처에 뜻맞는 이와 상담소를 열고 노동자를 맞아온 그였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 바닥에 쌓여 있는 서류들, 화이트보드 칠판, 앉은뱅이 책상과 의자들. 교육장 공간은 <송곳> 속 부진노동상담소와 똑같이 닮았다. 장판 바닥은 열기가 들어오는 곳이 드물었다. 문재훈 소장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여기 화초도 그대로 나오죠? 이 공간 그대롭니다. '싱크로율' 백 퍼센트."<송곳>의 탄생, 그 옆에 구고신이 있었다기자가 신기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는 사이,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이 상담소 문을 열고 들어왔다. 19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쭉 노동운동가로 살아온 그다. 문재훈 소장이 일어나 그를 맞았다. "여기 따뜻한 데 앉아요. 거긴 낡은 의자고, 대학로 때 단식하면서 썼던 의잔데 (여기로) 가져온 거야." 오랜만에 마주했음에도 어제 만난 이웃처럼 인사를 나누는 둘. 노동운동가라는 점을 제외한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최규석 작가'로 다시 좁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