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이희훈
"우리 나라에서 가장 민주화가 덜 된, 봉건적인 곳은 자본가 머릿속이다." 최근 신입사원과 20대 직원에게 희망 퇴직을 요구해 큰 논란을 빚은 두산 인프라코어의 이야기를 꺼내자 문 소장이 한 말이다. 청·장년을 가릴 것 없이 일자리 안정성이 흔들리는 가운데 2016년 새해를 맞이하는 노동자들의 앞날은 암담하기만 하다.
일부 노동계는 취업 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파견직 허용 범위 확대, 저성과자 해고, 기간제 사용 기간 연장 등의 내용을 담은 박근혜 대통령의 노동개혁 정책에 우려를 넘어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하종강 학장은 과거 취업 규칙을 악용해 노동자를 해고하려 시도했던 사례를 들려줬다. <송곳>에도 등장하는 에피소드다.
"한 버스 회사 취업 규칙에 불이익 조항으로 '회사 인근에서 숙박을 단체로 하는 자는 해고한다'가 있었다. 회사 근처에서 잔다고 해고 되는 게 말이 되나. 그래서 그게 무슨 잘못이냐고 사장에게 따져 물으니, 몇 해 전 기사들이 회사 근처에서 숙박하면서 (회사) 탈세 사실을 수집해 고소했다고, 그래서 5억 원을 손해봤다고 하는 거다. <송곳>에 보면 구고신이 이 말에 기가 차 '그럼 대실은 됩니까'라고 물어보는 장면이 바로 이 이야기다."하 학장은 보다 엄격했던 과거 취업 규칙 불이익 변경 조건을 설명하면서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기존의 노동 조건보다 저하된 새로운 취업 규칙을 적용하는 것은 불법이다'라는 판결을 과거 몇 년 동안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민정부 이후 관련 판결에서 취업 규칙 변경 적용 범위를 넓히려는 시도가 이뤄져 왔고, 이는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노동 조건이 저하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사측의 일방적인 취업 규칙 불이익 적용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제도적 안전 장치의 존재 이유다. 문 소장은 "취업 규칙을 내맘대로 쉽게 바꾸겠다는 박근혜표 노동개악이 그래서 무서운 거다"라면서 "지금도 징벌 조항이 400개가 넘는 취업 규칙을 더 (완화해) 바꾸겠다는 것이니 정말 위험하다"라고 말했다.
저성과자 해고 가이드라인 도입에 대해서도 하 학장은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저성과자 해고를 만들 수 있다"면서 KT의 저성과자 해고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안내 업무를 하던 여성 노동자를 전신주에 태워 가설 업무를 시켰다"면서 "저성과자로 분리돼야 하는 사람이 실제 업무 평가가 높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회사) 지침에 나와 있다"고 말했다.
문 소장도 사무실 출구에 책상과 걸상을 놓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으라"라고 지시해 저성과를 조장한 사례를 들면서 "(그 노동자에게) 견뎌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그런 조치는) 고문과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의 (노동) 현실이다. '헬조선'의 '헬'이 오히려 더 깊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을 쥔 당신에게"세상 진짜 건조하다 건조해." - JTBC 특별기획 드라마 <송곳> 1화 중에서길바닥에 쓰러져 누워 있는 사람을 무심하게 지나는 행인을 보며 구고신이 한 마디 툭 던진다. 이 세상의 건조한 시선은 특히 '노동자'라는 단어 앞에서 더욱 촉촉함을 잃는다. 하종강 학장은 한 중학교에 특강을 하러 갔다가 청소년들의 노동인식을 마주했다.
그는 "노동자는 '□이다'라는 질문에 빈칸을 채우도록 했다. 아이들이 주로 쓴 것은 '노동자는 거지다' '노동자는 힘들다' '노동자는 득이 없다' '노동자는 동남아다' 이런 (잘못된) 인식이었다"라고 말했다.
한숨을 내쉬는 기자에게 하 학장은 다른 이야기를 내놨다. 그는 "'노동자는 우리 아빠다' '노동자는 미래의 나다'라고 쓴 학생도 몇몇 있었다. 노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많지만 그래도 희망을 약속할 수 있는 인식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인식이 점차 많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