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후 마시는 물이라 착각했던 손 씻는 물
정수지
기나긴 예식이 끝나고 맞이한 점심식사. 레스토랑은 부페식이었지만 신랑, 신부 식구들에게는 코스요리처럼 친절히 음식을 가져다준다. 식사가 끝나갈 때 쯤 물 위에 레몬이 띄워진 그릇 하나를 받았다. 마침 갈증을 느껴서 마시려하자 여러명이 동시에 일어나 마시면 안 된다며 나를 말렸다.
"안돼, 안돼. 그건 손 씻는 거야. 먹으면 안 되는 물이야." 일제히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웃고만 있다. 식사 전후로 손을 씻는 문화가 있는데 결혼식이라 특별히 가져다준 것 뿐이란다. 나도 웃으며 들고있던 그릇을 내려놓았다. 문화를 모르면 이처럼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나는 성인이지만 다른 문화권에서는 먹는 물과 씻는 물을 구분 못하는 어린 아이처럼 되버린다. 완벽한 쪽팔림 뒤에 완전한 깨달음이랄까? '식사 후 손 씻는 레몬 물'은 당분간 잊지 못할 듯하다.
식사 후 가지게 된 자유시간. 나는 방 안으로 올라가자마자 사리를 벗고 침대에 누웠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에어콘 바람을 쐬고 있는데 솔직히 천국 같았다. 문득 맥주도 마시고 싶어졌다. 사실 아마다바드(Ahmadabad)에 도착한 첫날 근처 슈퍼 몇 군데를 들렀지만 술을 파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쿠루티에게 따로 물어보았을 때도 꽤 곤란해하는 눈치였다.
"구자라트 주(Gujarat)에서는 술이 금지되어 있어. 아마 호텔에 물어보는 게 빠를 것 같아. 외부인만 가능한 곳은 있다고 들었거든...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해."실제로 구자라트주는 알코올 제조, 판매, 구입이 금지되어 있는 금주법 시행 주(A dry state)였다. 술이 범죄에 악용되며 그로 인해 벌어질 사건 사고를 금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금주는 건전한 사회를 지향하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의 신념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일이라 믿었다.
그럼에도 구자라트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에 한하여 술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 바로 5성급 호텔에서였다. 아마다바드에 있는 모든 5성급 호텔이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내가 머물고 있는 곳에서는 술을 살 수 있었다.
호텔 직원이 알려준 시간을 확인 해보니 마침 가게가 문을 닫기 한 시간 전이었다. 호텔 리셉션에 가서 다시 방법을 물으니 여권과 비행기 티켓 그리고 호텔에서 발행한 투숙 증명서류가 필요하다며 종이 한 장을 적어주었다.
나는 델핀과 함께 필요 신분증을 지참한 후 지하에 위치한 주류가게로 갔다. 규모는 굉장히 작았지만 위스키, 맥주, 와인 등 웬만한 종류는 다 구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맥주 한 박스를 들고서 신용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자 직원은 오직 현금만 가능하다며 게다가 구매 품목 카드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구매 카드요? 그게 뭐예요?"그는 가게 바깥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받아오면 된다며 우리가 가져온 맥주 박스를 제자리에 갖다 놓으며 말했다. 밖으로 나가서 다시 묻자 여권, 호텔 투숙 확인증, 비행기 티켓을 먼저 요구했다. 그런데 내 비행기 티켓을 확인하던 중에는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티켓은 구자라트 (Gujarat)로 들어온 티켓이 아닌데?" 내가 그에게 준 티켓은 인천-델리행 티켓이었다. 남자는 "반드시 구자라트로 들어온 날짜와 나가는 날짜가 찍혀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는 수 없이 자이푸르(Jaipur)에서 구자라트(Gujarat)로 들어온 티켓과 구자라트(Gujarat)에서 콜카타 (Kolkata)로 나가는 비행기 티켓을 다시 들고 왔다.
그에게 건네받은 투어리스트 퍼밋(Tourist's permit, 관광객 허가증) 내용에는 예상 외의 구매 제한도 있었다. 대략 개인당 맥주는 9캔, 와인 3병, 양주는 1병. 우리가 한 박스를 사고 싶다고 해서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주 1회, 1개월을 초과할 수 없는 구매 횟수. 술을 골라 담으면서 더 황당했던 사실은 도수에 따라서 허용되는 주류가 늘거나 줄어드는 점이었다(알콜도수가 2%미만인 경우에는 750ml 27병까지 구매가 가능). 우리는 18병의(개인당 750ml, 9병) 맥주를 구매하며 3900루피(한화 약 6만 원)를 지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