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6. 공모전 심사 기록의 일부로 1차 예비 심사를 거친 평가 내역과 기초적인 수치가 정리된 모습을 볼 수 있다. 1등 당선안인 막스 두들러의 작품이 1122번 작품이다.
Berlin.de
즉, 베를린과 기타 여러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공공 건축, 도시, 조경 설계에 대한 공모전 요강, 과정, 결과, 심사 등은 시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략하게 소개된 공모 과정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려면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는 심사결과 보고서를 확인하면 된다.
많은 국책 사업과 공모전이 마치 비밀리에 진행되듯 관련 정보를 찾기 어려운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논란이 많았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과 서울 신시청사에 대한 비평도 단순히 형태에 관한 비난 혹은 비평 일색이었지, 공모 과정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베를린의 경우처럼 애초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관련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 디자인재단에 따르면 DDP를 건설하기 위한 공모전의 시작은 다음과 같았다.
"국내 건축·도시·조경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을 통해 국내·외 저명 건축가(조성룡, 최문규, 승효상, 유걸, 자하하디드, 스티븐 홀, FOA) 총 8명을 선정하여 '국제지명초청현상설계경기'가 진행되었다." - 왜 자하 하디드인가 중한 도시의 공공 건축 사업을 위한 공모전에 설계 스타일이 확실한 유명 건축가들만 지명 초청하여 진행했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국제 공모전. 애초에 건축의 공공성을 건축적으로 발현시키려는 주최 측의 의지보다 입맛에 맞는 화려한 건축물을 갖고 싶은 주최 측의 욕망이 더 컸던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지명초청이라는 방식 자체가 문제라는 건 아니다. 그 또한 정상적인 공모 방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다만 무려 2300억 원에 달하는 세금이 들어가는 건축물을 설계하기 위한 건축가를, 어떤 전문가들이 어떠한 이유로 지명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도 없는 것은 문제이지 않을까?
게다가 당시 논란이 되었듯 1등으로 선발된 자하 하디드의 설계안이 기존 공사비 예산보다 2배 이상 투입되었다는 점은 큰 문제다. 정상적인 공모전 심사가 진행되었다면, 2배 이상의 공사비가 소모되는 문제는 애초에 비용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도시의 맥락과 역사를 무시했다는 점도 역시 공모전이라는 평가 과정의 문제다. 자하 하디드라는 건축가는 오랜 세월 도시적 맥락과는 무관한 설계를 해온 건축가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영화 <말하는 건축 시티 : 홀>을 통해 공모전과 건설 과정 안팎의 문제점이 조명된 서울시 신시청사 공모전 역시도 대상을 국내 건축가로 한정만 지었을 뿐이지, 근본적으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공모와 다를 바 없었다.
유명 건축물, 화려한 게 전부가 아니다막스 두들러의 건축 설계안이 당선되고 실제 건축물로 지어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분명 테라스 형태의 열람실 공간(Lesesaal) 때문이었을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다른 공간들은 평범한 도서관 마냥 단조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런 단조로운 공간들을 통해 공모전이 요구하는 사항과 필요한 사항들을 지킬 수 있었기에 1개월에 걸친 숱한 평가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멋진 건축안이어도 1등이 되고 최종 심사에서 심사위원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것은 길고 자세한 예비 평가를 통과한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