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lses of Tradition의 대표사진
Pulse of Tradition 홈페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코크에 대한 기억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면 단연코 아이리쉬 전통 음악과 탭 댄스 공연인 Pulses of Tradition 때문일 것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전통의 리듬, 맥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이 공연은 해마다 여름(6월~9월)이면 코크시티에서 만나볼 수 있다.
공연의 구성은 아이리쉬 전통북인 보드란(Bodhran), 아이리쉬 전통 피리인 틴 휘슬(tinwhistle), 키보드, 바이올린, 기타 등의 악기를 6~7명의 뮤지션이 연주하고 그 연주에 맞추어 6~7명의 무용수들이 음악에 따라 탭 댄스를 추는 형식이다.
일반적으로 처음 코크를 여행하면 코크 시내를 구경하고 유명한 성이나 성당을 찍은 후 코브(Cobh)항으로 가는 코스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명동이나 인사동이 서울 사람들에게는 이색적인 장소가 아닌 것처럼 비교적 코크를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우리에게도 그런 관광지는 그다지 매력적인 여행 코스가 아니었다.
코크 주변의 나름 유명한 곳을 다 둘러본 우리 가족은 남은 시간을 그냥 숙소에서 쉬다 갈것인가, 아니면 시티센터를 한 번 더 갈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멋진 도시에서 더 멋진 무언가를 경험하고 싶었으나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일반적인 관광지도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찰나에 남편은 우연치 않게 유명 여행 리뷰사이트에서 코크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트에서 당당히1위를 차지하고 있던 여행상품은 우리가 보았던 잉글리쉬 마켓도, 세인트 앤 성당도, 블라니 성당도 아니었다. 바로 '전통의 리듬(Pulsesof Tradition)'이란 2시간짜리 공연이었다.
아일랜드로 이사올 때부터 남편은 아이리쉬 음악(특히 아일랜드 전통 바이올린 연주)과 탭 댄스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일랜드에 왔으면 아이리쉬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음악과 춤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남편의 주장이었고 그런 갈증을 단번에 해소시켜 줄만한 공연이 바로 Pulses of Tradition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먹고 놀기만 하는 소비성 강한 여행에서 아이리쉬들의 실제 음악을 이해하는 교감적 여행을 한껏 충족시킬 수 있는 공연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우리에겐 어디로 튈지 모르는 4살짜리 아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아이를 데려가는 것은 민폐일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나는 오후 공연을, 남편은 저녁 공연을 선택했다. 함께 공연의 열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여유있게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엄마의 신분을 잠깐 내려놓기로 하였다.
공연은 코크 중심가에 있는 작은 문화센터에서 이루어졌는데 사용하지 않는 교회를 개조해서 만든 곳이었는지 공연장 내부는 열악한 편이었다. 의자는 교회의 긴 의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고 관중석은 경사가 지지않아 뒷자석에 앉으면 공연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구조였다. 뭔가 2% 부족한 마음을 가진 채 공연장 앞부분에 자리를 맡았고 어떤 공연을 보게 될지 내심 기대를 하며 공연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여행지에서의 깊이 있는 교감공연이 시작되자 어두웠던 무대의 조명은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고 긴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공연수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일반 공연장도 아닌, 음향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공연장이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천사처럼 신비로웠고 오묘했다. 이윽고 연주자들이 있는 곳에 조명이 비춰지기 시작했고 공연의 열기는 점차 뜨거워져 갔다.
새로운 음악세계를 경험해서일까? 한국으로 따지자면 아일랜드 국악공연을 보는 것이나 다름 없었는데 나는 어느새 아이리쉬 음악과 춤에 푹 빠져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보드란북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키보드, 기타 등의 악기가 이렇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니! 공연이 끝나는 것이 아쉬워 앙코르를 수차례 외쳐대던 것도 내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코크란 여행지에서 이렇게 깊이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실로 감격스러웠다. 어쩌면 눈에 보여지고 사진기의 화면 속에 들어있는 코크의 아름다움보다 보이지 않지만 내 귓가에 맴도는 음악소리와 내 머릿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세계가 나를 이 도시의 매력에 빠지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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