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나기 위한 우리의 선택, 김장바지.
조남희
본격적 추위를 앞두고, 나는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난방비를 최대한 절감하고 덜 춥게 겨울을 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더구나 우리집은 제주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쉐어하우스가 아닌가 말이다. 기본적인 난방을 하면서도 형편이 넉넉지 않은 젊은 이주민들이 모여살기에 난방비 절감도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때껏 서울에서 해본 적이 없는 고민과 연구를 해야 했다. 도시가스 빵빵하게 들어오는 서울에서야 추우면 보일러 버튼 하나 누르면 끝이었다. 가스비가 걱정된다면 옷을 좀 입거나 온도를 좀 낮추면 그만이다. 그러나 제주도의 중산간 농촌 저지리에서 사는 나는, 이제 그런 편리함과는 안녕한 지 오래였다.
불편함의 문제에 더해, 제주도는 난방비 문제도 있다. 모 보일러 광고에서 신구 할배가 '시골에 산다고 아무 걱정 없을 것 같지? 4주만 살아봐, 가스비 걱정 엄청해~ '라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그럼, 그럼!' 하며 맞장구 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제주도는 아직 도시가스가 완벽하게 들어오지 않고, 일부 지역만 공급된다(공기가 LPG혼합방식). 제주시를 벗어나면 대부분 기름보일러를 쓰거나 LPG통을 배달시킨다. 겨울 난방을 위해 이 기름이나 LPG를 육지에서 하던 습관으로 난방을 돌려대기 시작하면 난방비 폭탄으로 슬프게 울게 되기 십상이다.
우리집의 경우는 보일러가 없이 전기 판넬로 난방을 하기 때문에 기름이나 LPG값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엉덩이는 몹시 뜨거운데 우풍이 강해 코가 시려운 것이 문제였다. 거실과 부엌건물 등에라도 훈훈함을 주기 위해 화목난로, 석유난로, 가스난로, 전기히터, 온풍기, 컨벡터 등 온갖 난방기구를 놓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고민을 하다가, 날씨가 점점 추워지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여자1호의 '카더라 통신'에 의한, 지인이 써보니 꽤 쓸 만하다는 말에 팔랑팔랑 귀가 열려 거실에 놓을 컨벡터(대류식 난방기기)라는 것을 질렀다. 그럭저럭 쓸만했다. 그럼 부엌 난방을 위해서는 무엇을 지를 것인가를 놓고 마지막까지 포기하기 어려웠던 것은 바로 화목난로다.
기름통에 기름을 받아서 집으로... 별 걸 다해 정말우선 다른 난방기구를 하나씩 지워나갔다. 전기세 폭탄이라는 복병이 있으니 전기히터는 안 되고, 공기가 탁해지니 온풍기는 싫고, 석유나 가스난로는 왠지 겁나는 데다, 농촌에서 각광받는다는 화목난로를 놓고 싶어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화목난로라니. 생각만 해도 따뜻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말이다. 그윽하게 나무타는 냄새가 나면서, 공간 전체가 훈훈해지고, 난로 위에서는 펄펄 물도 끓일 수 있으며, 심지어 고구마와 귤도 구워먹을 수 있는 화목난로라니(제주도에서는 감귤을 구워먹기도 한다). 우리집 사는 여자들이 맛나게 잘 구워진 고구마와 귤을 정답게 나눠먹으며 난롯가에 앉아 도란도란 수다 떠는 모습을 그려보니 생각만 해도 흐뭇했다.
그러나 결국 몇 가지 단점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가급적 잘 마른 나무를 미리미리 재어 놓아야 하고, 덜 잘라진 나무라도 구하게 된다면 나무를 쪼개야 한다는 불편함(요즘 화목난로용 나무를 인터넷 판매도 한다지만 제주도에서 연료용 나무를 제 값 주고 주문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알음알이로 구하는 경우가 많다), 정기적인 연통 청소 등의 문제다.
난로 문제를 놓고 회의를 했다.
"이걸 도대체 우리가 할 수 있을까!""언니, 우리의 생활방식상 이건 할 수 없다고 봐요." "…내 생각에도 역시 그래."이렇게 한방에 정리된 후 석유와 가스난로 사이에서 다시 고민했다. 효율은 거기서 거기라는데, 배달이 많은 겨울에는 가스 보충을 위해 배달소에 전화를 넣는다고 가정집에 득달같이 달려오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을 작년의 경험으로 알기에, 결국 중고 석유난로를 샀다.
철물점에서 5천 원을 주고 호스가 달린 기름통을 사서 주유소로 향하니 주유소 한 켠의 실내등유 주유기에서 기름 한 통을 가득 넣어준다. 2만5천 원이다. 기름통을 들고 집으로 향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진짜 이런 기름통에 기름을 받아서 집을 다 가고, 정말 별 걸 다해보게 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