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얄 알버트 홀은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인 알버트 공을 기념하는 공연장으로 1871년 3월 29일 개관했다.
이주빈
이름 그 자체로 세계 대중음악의 신화가 된 비틀즈가 콘서트를 했던 곳. 바그너와 베르디가 자신들의 작품을 영국에서 공연할 땐 반드시 첫 번째 장소로 고집했던 곳.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가 시범경기를 했고, 윈스턴 처칠과 넬슨 만델라 그리고 달라이 라마가 연설했던 곳.
영국 런던에 있는 로얄 알버트 홀(Royal Albert Hall) 이야기다. 로얄 알버트 홀은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인 알버트 공을 기념하는 공연장으로 1871년 3월 29일 개관했다. 빅토리아 여왕이 로얄 알버트 홀의 모습을 보고 "'영국 헌법'처럼 생겼다"고 말한 것은 두고두고 화제다.
여왕의 말은 건물 디자인부터 내부시설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취지였다. 전 세계의 1/5을 통치하던 여왕답게 발언엔 제국의 위용과 자긍이 넘쳐났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여왕이 자긍에 넘쳐 이야기했던 '제국의 위용'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때 영국은 말 그대로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이었다. 로얄 알버트 홀 건립 공사가 한창이던 1870년 무렵. 대영제국은 세계인구의 1/4을 다스렸고, 전 세계 공업생산력의 1/3을 차지했다. 막강한 공업생산력은 대영제국이 전 세계 무역의 1/4을 점유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른 후 영국은 더 이상 '대영제국'이 아니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은 세계 유일의 정치군사·경제 대국이었던 대영제국을 주요 채무국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에만 25억 파운드라는 큰 빚을 지고 있던 영국은 미국이 원조를 끊어버리자 더욱 궁핍해졌다.
이제 더 이상 미국은 대영제국에서 '도망친 루저들의 나라'가 아니었다. 그들은 언제든지 대영제국을 거덜내버릴 수 있는 살벌한 채권국가가 되었다. 세계의 돈줄을 쥔 미국은 군사 우위를 유지하며 '세계 경찰국가'라는 정치적 지위까지 획득했다. 불과 100여 년 전 대영제국이 누린 지위를 '아메리카 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 가져간 것이다.
많은 이가 대영제국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심지어 미디어들은 영국을 '미국의 푸들'이라며 조롱했다. 세계경찰을 자임하는 미국의 노선을 맹목적으로 좇는 영국의 꼴을 애완견 푸들에 비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