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순천만 가는 67번 버스를 타다
김종길
쓰린 속을 달래며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 승강장은 노인들의 차지다. 순천만 가는 버스가 이곳에 서는지를 묻자 모두 사전 연습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고개를 끄덕인다. 배낭을 멘 일행의 행색을 살피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낮은 소리로 수군거렸다. 조금 있으니 배낭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순천만을 그렇게 자주 왔어도 기차 타고 버스로 가기는 처음인 걸로 기억된다. 어떻게 바뀌었을까. 기형도가 말한 소금의 도시 순천과 김승옥이 말한 안개의 도시 무진에 대한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버스가 왔다. '버스는 무진 읍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기와지붕들도 양철지붕들도 초가지붕들도 유월 하순의 강렬한 햇볕을 받고 모두 은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철공소에서 들리는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잠깐 버스로 달려들었다가 물러났다. 어디선지 분뇨 냄새가 새어들었고 병원 앞을 지날 때에는 크레졸 냄새가 났고 어느 상점의 스피커에서는 느려빠진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사람들은 처마 밑의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빨가벗고 기우뚱거리며 그늘 속을 걸어다니고 있었다. 읍의 포장된 광장도 거의 텅 비어 있었다. 햇볕만이 눈부시게 그 광장 위에서 끓고 있었고 그 눈부신 햇살 속에서, 정적 속에서 개 두 마리가 혀를 빼물고 교미를 하고 있었다.' (출처 : 무진기행)
버스 안은 두어 군데 빼고는 빈자리가 없었다. 아내는 운 좋게도 자리 하나를 잡았다. 다음 버스정류장에서 할머니 한 분이 탔다. 좌우를 살펴보니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스마트폰에 온 정신을 쏟고 있다. 아내에게 눈짓을 했다. 이것저것 물건을 야무지게 묶은 보따리를 안은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고 하더니 변죽 좋게 말을 늘어놓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마지막 이 말만 아니었다면 목적지까지 할머니는 졸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아이는 하나 뿐이요? 둘은 낳아야지." 아내는 마지못해 웃었고 그 뒤로 할머니는 계속 졸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