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 공원묘지에 있는 시인 박인환 연보비
정운현
이곳에는 일본인도 두 사람이 묻혀 있어 눈길을 끕니다. 한 사람은 한국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아사카와 다쿠미. 그는 조선총독부 농공상부 산림과에서 조선의 산림녹화에 힘썼고 개인적으로 조선의 민예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데 일생을 바친 사람입니다. 그는 조선을 진정으로 사랑해 우리말을 하고 우리옷을 입고 생활했으며, 죽어서도 조선의 땅에 묻히길 소원해 결국 이곳에 묻혔습니다. 해마다 그의 기일이면 일본에서 그를 기리는 사람들의 참배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곳에 묻힌 또 한 사람의 일본인은 한반도에 처음으로 포플러와 아카시아를 심은 사이토 오토사쿠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이곳이 의미가 깊은 것은 소파 방정환, 위창 오세창, 만해 한용운, 설산 장덕수, 죽산 조봉암 선생 등 항일 애국지사들이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도산 안창호 선생은 1973년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으로 이장). 여기에 범주를 좀 더 넓히자면 서양의학의 선구자인 지석영, 언론인 출신의 호암 문일평과 설의식, 반민특위 조사부 제1부장을 지낸 이병홍, 민족대표 33인 출신으로 나중에 친일로 변절한 박희도 등도 기억할만한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살아생전의 직업과 출신, 위상에 관계없이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혹은 위아래에 자리를 잡고서 함께 안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곳 지명 '망우리(忘憂里)' 글자 그대로 말입니다.
엊그제 올 광복절을 앞두고 반가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습니다. 문화재청은 13일 수유리에 있는 이준 열사 묘소를 비롯해 서울지역에 산재한 독립유공자 묘역 7개소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습니다. 이준 열사 외에는 손병희 선생(우이동), 이시영·신익희 선생(수유리), 안창호 선생(도산공원), 김창숙 선생(수유리), 한용운 선생(망우리) 등입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30일간의 등록 예고 기간에 수렴한 이해 관계자와 각계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결정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애국선열들의 묘소를 국가에서 관리하게 됐으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간 '공동묘지'로만 인식돼오던 이곳들이 '근대 역사·문화 공원'으로 탈바꿈할 계기가 마련된 셈입니다. 특히 망우리공원묘지의 경우 주변경관과 어우러져 더욱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됩니다. 수년 전 남한산성 자락에 있는 조용수 선생(전 <민족일보> 사장)의 묘소 참배에 동행한 적이 있습니다. 조 선생은 5·16 쿠데타 직후 간첩으로 몰려 희생됐는데 최근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고 명예도 회복됐습니다. 그밖에도 우리 근현대사의 주역들이 이 땅 곳곳에 이름도 없이 묻혀 있는데 이번 애국선열 7위 묘소의 문화재 지정을 계기로 전국에 산재한 역사인물들의 묘소를 국가가 챙겨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물병 하나 달랑 들고 망우리 공원묘지를 한번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만약 어린 자녀랑 동행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저절로 우리 현대사 교육이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진실의 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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