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무섭지 않아요" 밉도록 솔직한 녀석들입니다. 영화 <선생 김봉두>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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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글쓰기 공부를 재밌어하는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바닷길은 늘 행복했습니다. 논술 시간을 재밌어하는 아이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바닷길이 섭섭할 정도였으니까요. 사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다릅니다. 지난해와는 달리 글쓰기를 원해서 선택한 아이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천방지축 녀석이 다니는 학교는 한 학년에 예닐곱 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선택의 여지 없이 한 학년 모두 논술을 배웁니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관심 없어 하는, 천방지축, 천덕꾸러기 녀석들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아이들과의 만남이 늘 즐겁다며 떠벌리고 다녔는데 제대로 임자를 만난 것이지요. 그 천덕꾸러기 녀석을 떠올릴 때마다 '그려, 내가 아니면 널 누가 받아 주겠냐'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고 있었습니다. 받아 주지 않겠다 해도 별 뾰족한 수도 없는 처지인데도 말입니다.
천덕꾸러기 녀석들은 다른 선생들의 말 한마디에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하지만 내 말은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곧잘 듣질 않습니다.
녀석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 다른 선생님이 호통을 치면 말을 잘 듣는데 왜 쌤 한티만 그러는 겨?" "혼내지 않잖아요."녀석들은 밉도록 솔직합니다. 나는 험악한 해적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으르렁거려 봅니다.
"그려? 이 눔 자식들이 니들 한번 혼나 볼래? 쌤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모르지?" "에~, 안 무서워요." "좋아, 그럼 오늘부터 쌤도 진짜루 소리치고 화내고 벌 세운다!""안 그러실 거잖아요.""그려? 어디 한번 두고 보자 이눔들!"아이들의 폭력적 행동... 원인은 딴 데 있었다두고 보자는 놈치고 무서운 놈 하나도 없다는 듯 녀석들은 들은 체 만 체합니다. 얼핏 보면 녀석들은 아주 자유로워 보입니다. 제멋대로 자유로움에 익숙한 것 같지만 결코 자유로움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강압적인 교육에 눌려 있어 보입니다.
녀석들은 강압적인 교육에서 오는 불만을 나처럼 헐렁한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분풀이하고 있는 듯합니다. 녀석들에게 자유로운 분위기가 조성되면 화를 내고 소리치고 심지어는 폭력적으로 무엇인가를 내던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몇몇 사람들은 '아이들을 휘어잡지 못한 탓'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한편, '인권을 존중해주는 자유로운 교육'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로움에는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습니다. 천덕꾸러기 아이들의 폭력적이거나 대책 없는 행동은 자유로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억압의 분출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올해는 세 군데의 초등학교를 오가며 아이들과 방과 후 글쓰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한 학교 아이들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 교실을 아주 재미있어하지만 또 다른 글쓰기 반 아이들은 글쓰기 자체를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제멋대로 교실을 싸돌아다니지도 않는 녀석들이었는데 합창하듯 "쌤 글쓰기 하지 말고 놀아요!"라고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나는 그동안 녀석들의 고통스러운 간절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입니다.
"수다 떨어가며 놀메놀메 하구 있잖어? 왜? 글쓰기가 싫어?""예!""얼씨구, 쌤이 재미없나 보네.""아니요, 그게 아니구요, 그냥 글쓰기가 싫어요.""그려…. 글을 억지로 써서는 안 되지…. 근디, 글쓰기 공부를 하겠다고 너희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잖어. 그래서 이 교실에 온 것이고.""아녀요,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녀요. 엄마가 하라구 해서 하는 거예요.""잉? 너희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구?""예."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그냥 신나게 놀고 싶어요." 원하지 않는 글쓰기는 할 수 없습니다나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대체 뭔 짓인가?' 글을 억지로 꾸며서 쓰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었는데 녀석들은 한 달 넘게 속내를 감추고 억지로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나는 또 뭐란 말인가? 그동안 돈벌이를 위해 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단 말인가? 아이들이 놀아야 할 시간을 빼앗고 있었단 말인가?'
따지고 보면 아이들과 나, 모두가 글쓰기 교실에서 불행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이 놀 수 있다면 나 또한 그 시간에 바다에 나가 밑반찬 고기를 낚아 올리거나 밭에 나가 흙하고 놀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글쓰기 교실을 없애면 모두가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곧바로 학교 측에 요구했습니다. 부모가 아닌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방과 후 과목을 선택하도록 하게 해달라고. 아이들이 원치 않는 글쓰기 교실이라면 당장 그만두겠다고 통보했습니다. 그 어떤 경우라도 오로지 돈벌이를 위해 가르친다면 그것은 사기꾼들이 하는 짓거리나 뭐가 다르겠습니까.
'죽도록 패주고 싶다'던 녀석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