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한미FTA 비준안 상정이 예정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출석해 있다.
남소연
김종훈 수석대표, '쌀 재협상' 거짓말
2007년 8월 29일자 외교전문에 따르면, 한미 FTA 공식서명 직후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의 얼 포머로이 하원의원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쌀 추가협상을 약속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포머로이 의원이 김 본부장에게 "한미 FTA에서 쌀이 빠져서 캘리포니아 곡물업자 등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고 전하자 김 본부장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쌀 관세화 유예가 2014년에 끝나게 될 것이고, 한국 정부가 (미국과) 다시 협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한미 FTA와 쌀 관세화는 전혀 별개이며 쌀과 관련해 미국과 어떤 약속도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김 본부장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그간 정부는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한 셈입니다.
<중앙> 기자, "조중동, 반미 막으려 '의식적'으로..." 2007년 8월에 작성된 외교전문에 따르면, 당시 아프간 샘물교회 신도 피랍사건과 관련해 모 <중앙일보> 기자는 "조중동으로 지칭되는 주류언론은 급진적 매체나 운동가들이 아프간 피랍 사건을 반미운동의 수단으로 삼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의식적'(conscious)인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미 대사관 공보관이 "조중동 3사가 이런 전략을 논의하기 위한 만남을 갖느냐"고 묻자 그 기자는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not as such) 각 사의 선임급 기자들이 커피를 마시며 또는 다른 모임에서 만났을 때 종종 얘기하는 사안"이라고 덧붙인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미국 측의 요구가 없었음에도 스스로들 '알아서' 친미보도를 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러니 미 대사관 관계자가 전문의 마지막 논평에서 "기쁘게도 (한국의) 주류언론이 이례적으로 올바른 방향을 잡고 있는 것 같다"고 보고한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KBS 고대영 보도본부장, 미국대사관 '연락선'" 현 KBS 보도본부장과 메인뉴스 앵커가 지난 대선 무렵 미국 측에 관련 정보를 제공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2007년 9월 19일자 전문에 따르면, 고대영 KBS 보도본부장(당시 해설위원)은 당시 한국의 대선 정국에 대한 정세분석을 미국 측에 제공했으며, 미 대사관 측은 "고대영 기자는 종종 대사관과 대면하는 연락선(frequent Embassy contact)"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말하자면 고 본부장은 미국 정보요원 노릇을 했다는 얘기입니다.
2007년 12월 17일자 전문에 따르면, 민경욱 '뉴스9' 앵커(당시 뉴스편집부 기자)는 12월 20일 방송 예정인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취재내용을 방송 전에 미국 측 인사에게 들려줬습니다.
그 내용을 떠나서 이는 취재내용 외부공개를 금지한 'KBS 기자윤리강령' 위반입니다만, 그는 "제가 이야기한 것 가운데 세상이 모르고 있던 것은 없다"며 여전히 앵커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친일파도 "일본 위해 친일한다" 표방하지 않았는데...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제가 알기로 구한말의 매국노나 일제 강점기의 친일파 가운데 "일본을 위해서 친일을 한다"고 표방한 자는 없었습니다. 적어도, 겉으로라도 "민족을 위해서"를 표방하며 친일을 했습니다. 춘원 이광수와 육당 최남선이 학병권유를 하면서도 "훗날 조국을 위해서"라고 명분을 내세웠으며, 최소한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한 미 대사관 외교전문에 등장하는 몇몇 한국인 고위관리와 언론인들은 아예 대놓고 "미국을 위해서"를 외치거나 아니면 스스로 알아서 '친미 반민족·반국가적' 행태를 보였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그간 우리가 "민족반역자"라고 비판해온 친일파들보다 한술 더 뜨는 셈입니다. 우리가 이들의 행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김용진 KBS 기자(전 탐사보도팀장)가 위키리크스 공개 전문 25만 건을 검색해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전문 가운데 주한 미국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외교전문은 모두 1980건에 달합니다. 연도별로 보면, 2006년 이전에 생산된 전문이 10건, 2006년 431건, 2007년 380건, 2008년 367건, 2009년 690건, 2010년 1월부터 2월 말까지 102건 등이며, 이 가운데 2급 비밀 및 3급 비밀 전문은 전체의 55%에 달합니다.
비밀로 분류된 문건의 경우 보통 해제기한이 10년 이상이며, 이는 공개될 경우 외교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들입니다. 다시 말해 문건 하나하나가 특종감이며, <가디언>과 <뉴욕타임스>, <슈피겔> 등 세계 유수의 언론사들이 이 전문을 주목하고 또 대서특필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9월 14일자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공개된 주한 미국 대사관의 외교전문에는 "청와대 연락선(Blue House contacts)", "국회 연락선(our National Assembly contacts)", "정기 연락선(regular contacts)" 등이 언급돼 있다고 합니다(참고로 2007년 9월 19일자 전문에 따르면, 고대영 KBS 보도본부장은 '대사관 연락선(Embassy contact)'으로 언급돼 있습니다).
이는 한국 내 미국의 '비밀연락선', 즉 첩보요원이 각종 기관 및 기구 곳곳에 침투해 있다는 얘기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한국사회의 각계각층에 다수의 한국인들이 미국 '첩보요원', 즉 '간첩'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어쩌면 충분히 예견할 만한 사안이기도 합니다만, 막상 문건으로 확인되고 보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절 숱한 '간첩사건'을 보도를 통해 접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간의 '간첩'들은 대개 북한 등 적국에 주로 군사정보를 몰래 건네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형법, 국가보안법 등에 의해 '간첩죄' 혐의로 처벌됐는데, '간첩죄'를 규정한 형법 제98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98조(간첩) ①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②군사상의 기밀을 적국에 누설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현행 형법에서 규정한 '간첩'은 상대를 '적국'으로 한정하고 있으며, 또 누설한 정보도 '군사상의 기밀'로 한정하는 있습니다. 이는 그간 우리가 북한과 대치해온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됩니다(이밖에 간첩죄의 특별규정으로 군형법 제13·15·16조, 국가보안법 제2·4·5조 등이 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친미 관료·언론인, '간첩'으로 봐도 별 무리 없어 <국어사전>에 따르면, '간첩'이란 "한 국가나 단체의 비밀이나 상황을 몰래 알아내어 경쟁 또는 대립 관계에 있는 국가나 단체에 제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흔히 첩자(諜者), 스파이(spy)로 불리며, 더러 사극에 등장하는 '세작(細作)'이라는 말도 같은 뜻입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작성한 외교전문을 토대로 앞에선 소개한 바에 따르면, 통상분야 고위관료나 몇몇 언론인들은 FTA 협상내용이나 대선 정보 등을 경쟁 상대국인 미국에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의 행위를 사전적으로만 해석한다면 '간첩'으로 봐도 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특히 국익('국가의 안전과 발전을 위하여 국민이 전체적으로 추구하여야 하는 이익') 차원에서 보자면 이들의 행위는 최소한 '국익 포기' 내지 '반(反)국익' 행위임은 분명하며, 본질적으로는 '간첩죄'의 결과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해외의 간첩죄 적용사례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조선일보>가 보도한 관련기사를 하나 접했습니다. 최근 <조선일보>는 군사기밀을 빼낸 예비역 장성 등 군 간부 50여 명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고 전원 집행유예나 선고유예 등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며 "미국처럼 적국(敵國)에 정보를 팔지 않더라도 엄벌할 수 있도록 법관들이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고, 법령 개편 등 제도적 보완도 서둘러야 한다"는 이석수 변호사의 말을 인용, 보도했습니다.
또 8월 6일자에서 <조선>은 유대인 출신 미국인 조너선 폴라드가 미 해군 정보분석관으로 근무하면서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에 1급 기밀을 넘긴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26년째 복역 중인 사실 등을 보도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었더군요.
"미국을 비롯해 독일·프랑스 등 대부분의 나라들은 자국에 해가 되거나 다른 나라를 이롭게 하는 행위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해 중형에 처하고 있다. 적국(敵國)이 아닌 동맹국에 기밀을 유출한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기밀유출은 곧 국가 안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특히 미국은 이를 가장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미 국가안보법은 '외국을 위해 비밀 탐지·수집시 최고 종신형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외국'의 범주에는 전통 동맹국인 한국·일본은 물론 최대 우방인 이스라엘도 포함된다.재미교포 로버트 김 역시 이 같은 '동맹국에 대한 기밀 제공'으로 걸려 중형을 받은 경우다. 그는 미 해군 정보국에 근무하면서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에게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등 대북 정보를 알려줬다가 간첩 혐의로 1996년 FBI에 체포됐다. 그는 당시 알려준 정보는 언론이나 외국에 공개된 것을 정리해놓은 수준이라고 항변했지만 결국 징역 9년 보호관찰 3년의 처벌을 받았다. 또 다른 한국계로 핵 전문가인 스티븐 김은 언론에 북한 핵실험 가능성과 관련한 정보를 흘렸다는 이유만으로도 간첩죄가 적용됐다."위 내용은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정보와 또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첫째, '간첩죄'에 대한 폭넓은 적용. 앞에서 약술한 대로 그간 우리는 '간첩죄'라면 주로 북한을 상대로 한 군사기밀 제공 등의 이적행위에 주로 국한해 적용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등 유럽 선진국에서는 '자국에 해가 되거나 다른 나라를 이롭게 하는 행위'에 대해 폭넓게 '간첩죄'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 국가들은 '자국에 해가 되거나 다른 나라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단지 군사기밀 유출 등으로만 국한시키지 않고 국익과 관련된 것이라면 폭넓은 분야에 걸쳐 '간첩죄'를 적용해 중형에 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점은 우리도 선진국의 사례를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둘째, '적국'만이 아니라 '동맹국'도 간첩죄 적용 대상국이라는 점. 미국 국가안보법은 '외국을 위해 비밀 탐지·수집시 최고 종신형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외국'의 범주에는 전통 동맹국인 한국·일본은 물론 최대 우방인 이스라엘도 포함돼 있다고 합니다. 한 예로 미 해군 정보국에서 근무하던 재미교포 로버트 김(71·한국명 김채곤)은 지난 1996년 간첩혐의로 FBI에 체포됐는데 그 이유는 그가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에게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등 대북정보를 알려주는 등 '동맹국에 대한 기밀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과 한국은 반세기 넘게 동맹국으로 지내온 사이이지만 '간첩죄' 앞에서는 동맹국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셋째, '간첩죄'에 해당하는 '정보'의 수준과 내용. 앞서 언급한 로버트 김은 간첩죄로 체포된 후 자신이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에게 알려준 정보는 언론이나 외국에 공개된 것을 정리해놓은 수준이라고 항변했습니다. 즉 비밀로 분류된 고급정보 같은 것이 아니라 알 만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도 있는 수준의 정보라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