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 출처: 위키페디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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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울의 물감이 대야 전체에 골고루 퍼지듯이, 지구상 한쪽에서 벌어진 사건은 지구상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이 점은 비행기나 인터넷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먼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다. 먼 옛날에는 영향을 미치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뎠을 뿐이다.
지구상의 한쪽과 반대쪽이 오래 전부터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점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인류의 생활양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라시아·아프리카·아메리카·대양주 어느 곳에서도 정치조직·종교조직·문자·무기 등이 발달한 것을 보면 그러하다.
한민족 역시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상호작용에서 예외가 아니었다는 점은 임진왜란(임란)의 발발에서도 단적으로 나타난다. 임란 발발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을 살펴보다 보면, 우리는 서유럽인들의 식성이 동아시아의 임란에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한 이유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예컨대, 41년간 단절된 중·일 무역관계를 재개하기 위해서, 여몽연합군의 침공에 복수하기 위해서, 센고쿠통일(戰國統一) 이후의 내부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 봉건 영주들에게 나눠줄 토지를 획득하기 위해서 등등의 해석이 있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임란 발발에 영향을 미친 게 사실이지만, 이것들이 다는 아니었다. 단순히 남의 집 담을 넘어야 할 사정이 있다고 하여, 누구나 다 강도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강도가 되려면 체력도 있어야 하고 무기도 있어야 한다.
일본이 자신 있게 조선 담 넘은 이유, 군사기술에 있다마찬가지로, 가야·백제 멸망 이래 대륙세력에 비해 열세에 처했던 일본이 조선의 담을 과감히 넘을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감의 원천 중 하나는 조선보다 우월한 군사기술이었다.
흥미롭게도, 일본이 그런 군사기술을 갖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서유럽인들의 식성이었다. 서유럽인들의 식성이 일본의 군사기술 우위로 연결되고 나아가 임란 발발로 연결되는 과정을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