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삼림가 옛 김성백의 집터 앞에서 김우종 선생이 그날을 증언하고 있다.
박도
이토 히로부미 기사를 보다 1909년 10월 23일 오전, 안중근과 우덕순은 10월 23일자 조선어신문 <원동보<遠東報)>를 통하여 10월 26일 아침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기사를 보았다.
전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동청철도총국의 특별열차편으로 10월 25일 오후 11시에 관성자 역을 출발하여 러시아 재무대신이 코코후초프가 기다리는 하얼빈으로 향한다.두 사람은 눈을 부릅뜨고 다시 읽고는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렸다.
"관성자(창춘)에서 밤 11시 출발한다면 하얼빈에는 몇 시쯤 도착할까?""글쎄, 특별열차는 도중의 역에 그다지 서지를 않으니까 통상의 시간보다 빨리 도착할 테지."이런 계산은 상인인 우덕순이 치밀했다. 그는 담배 행상으로 이곳저곳을 두루 다녀 정보에 빨랐다.
"이토가 하얼빈에 도착할 때는 코코후초프 러시아 재정대신이 영접할 테니 정거장 경비가 삼엄하겠지.""아마 그럴 거야."안중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러시아 측 정보를 들을 수 없으니 답답하구먼. 유동하의 러시아어는 생각보다 부족하고 너무 나이가 어려서 여차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아.""러시아어를 잘할 수 있는 또 한 사람을 구하는 게 어때?""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계획이 실패할 거야. 하얼빈 정거장에서 결행이 어려우면 좀 더 남쪽으로 갈 수밖에 없어.""나도 같은 생각이야. 도중의 역이라면 아무래도 경계도 약할 거야."동청철도는 단선이기 때문에 비록 특별열차라 하더라도 우편열차나 화물열차와 엇갈릴 때에는 큰 역에서 정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정차 역을 알 수 있다면 미리 가서 숨어 기다리는 편이 훨씬 성공률이 높다는 판단이 들었다. 동청철도 종업원은 러시아인과 청국인이지만 철도 관리나 경비원은 모두 러시아인이었다. 중도 역에서 잠복하더라도 러시아어를 알지 못하면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