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 직후 조도선
눈빛<대한국인 안중근>
그때 조도선이 찾아왔다.
- <광야의 열사 안중근> 102쪽~104쪽 발췌 요약정리
이튿날 하얼빈에 있는 김성백(金聖伯)의 집에 이르러 유숙하고, 다시 신문을 보고 이토가 오는 날짜를 자세히 탐지하였다.
또 그 이튿날 다시 남쪽으로 창춘(長春) 등지로 가서 거사하고도 싶었으나 유동하가 본시 나이가 어린 사람이라 곧 저희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다시 통역할 사람을 얻으려하던 중, 조도선(曺道先)을 만나 가족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남쪽으로 가자고 했더니, 조씨는 곧 승낙하였다.
그날(1909년 19월 23일) 밤은 또 김성백의 집에 묵었다. 그때 여비가 부족할 것이 걱정스러워서 유동하를 시켜 김성백에게 가서 50원만 빌려가지고 오면 곧 갚겠다고 말하라고 하여, 유씨가 김씨를 찾아갔으나 그냥 돌아왔다. 그때 나는 홀로 등불 밑 차디찬 상 위에 앉아 잠깐 동안 장차 행할 일을 생각하며, 강개한 마음을 이길 길 없어 노래 한 수 읊었다.
[丈夫歌] 생략
이렇게 읊기를 마치고, 다시 편지 한 장을 써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대동공보 신문사에 붙이려 했으니, 그 뜻인즉 첫째 우리들이 행하는 목적을 신문에 널리 알리자는 것이요, 또 한 가지는 유동하가 만일 김성백에게서 50원을 꾸어 온다면 갚아줄 방책이 없기 때문에, 대동공보사에서 갚아주도록 하는 핑계로 말한 것이니 그것은 잠깐 동안의 꾀였다. 편지 쓰기를 끝마치자 유씨가 돌아왔는데 돈을 꾸지 못했다고 하므로 자지도 못하고 그날 밤을 지새웠다.
- <안응칠 역사> 166~1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