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지 두 달여만에 숨진 채 발견된 이혜진양의 친구들이 17일 오전 안양 명학초등학교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남소연
"아줌마, 기자들은 왜 그래요? 혜진이 장례식 때 잠깐 눈물이 멈춰서 가만히 있으니까 마이크 들이대고 '너는 왜 안 우니? 눈물 안 나와?' 그래요. 그래서 울면, 갑자기 여러 군데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어요."혜진이와 예슬이가 다니던 안양 명학초등학교 어린이들은 잔혹한 유괴범죄의 심각성을 절감하지 못하는 듯 했다. 엄마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끌탕하며 교문 앞을 지켰지만, 애들은 친구들과 장난치며 한 손에는 종이컵 슬러시, 다른 한 손에는 신문종이에 싼 마른 오징어다리 열 개를 쥐고, 입속 가득 질겅질겅 씹고 다녔다.
혜진이·예슬이 얘기를 꺼내면 애들은 "슬퍼요" "보고 싶어요" 등등 재잘재잘 말도 잘했다. 친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철부지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학교에 경찰이 드나들고, 방송차량이 상주하며, 기자들이 왔다갔다 하는 게 마냥 신기한 눈치였다.
"기자들 얘기 듣다가 안 울면 나쁜 아이 같아요"동심에 젖은 아이들은 그저 장난하는 게 좋고, 그날그날 숙제가 버거우며, 학원 가기 싫으니, 날씨 좋은 봄날 놀이터에서 엄마 몰래 '땡땡이'를 칠 방법이 없을까 골몰하는 듯 했다. 그게 애들이다.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면 "그런데요, 아줌마"라는 꼬리표를 달고 수십 가지 얘기를 쏟아내는 꼬마아이들은 친구의 허망한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서 '과연 기자란 무엇인가'라는 거창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 듯 하다.
고작 열두 살 남짓한 어린아이들이지만, 그들의 눈에도 기자들의 유도질문과 연출된 화면은 '진실'과 거리가 멀어보였던 모양이다. TV뉴스나 신문 사진기자들이 아이들에게 다가가 '친구가 죽었잖아, 왜 안 울어?'라고 묻고, 그래도 멈칫 하면 '너는 울음 안 나오니?' 한 번 더 추임새를 넣어 꼭 울게 만드는 게 좋지 않았던 거다.
일찍 철이 든 6학년 아이들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우리도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기도 했지만, 대개는 신나게 놀다가 '혜진이·예슬이' 얘기를 꺼내면 갑자기 우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쳤다. "기자들은 우는 어린이를 좋아한다"고 깔깔거리기도 했다.
몇몇 아이들은 '매스컴 울렁증'이 있다며 카메라를 피했다. 그중 한 아이는 "기자들의 얘기를 듣다 울지 않으면 꼭 나쁜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슬픈 일이지만 눈물이 안 날 수도 있는 건데…"라고 말끝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