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냥이의 앙탈!집을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갉아서 먹으리!
강나루, 박봄이
③ 배추도사를 능가하는 집주인사당의 일반 주택 1층. 지금껏 본 집 중에 가장 깔끔하고 마음에 들었다.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하자도 없고 내 또래의 여성 세입자가 집도 깨끗하게 쓴 터라 문의도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맛있는 떡을 봤으니 제사를 지내야 하지 않겠는가. 주인집에 가서 가계약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4층의 주인집 문 앞에서 살짝 망설이는 세입자.
"주인분이 조금 깐깐하세요.""지금 저희 집도 워낙 강적이라 괜찮을 거예요."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연락을 받은 듯 근엄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집은 다 봤어?""예." (초면부터 왜 반말이신지….)"이 집만큼 좋은 집이 어딨어, 그 값에. 나도 돈 욕심 없어서 어려운 사람 돕는 셈치고 싸게 내놓는 거야."옥탑방 보증금에서 몇 배를 올려서 하는 이사라 이 정도 집은 솔직히 평균 시세였다.
"도배랑 장판은 해주실 건가요?""왜? 깨끗하게 썼는데 할 이유가 없잖아, 1층 아가씨, 집에 하자 생겼어?"순간 당황하는 세입자. 아니 월세에 도배랑 장판 해주는 거야 당연한 건데 왜 불똥이 세입자한테 튀나.
"아니요, 집이 더럽다는 게 아니라 새로 이사하는 건데 도배장판은 여쭤볼 수 있는 거 아닌가요?""난 못해줘, 그럴 돈도 없고. 꼭 할 거면 1층 아가씨가 돈 내놓고 가."순간 왜 내가 울컥했을까. 아마 한마디 말도 못하고 울상 지은 세입자의 모습에서 배추도사 앞의 내 모습을 보았던 것 같다.
"그러시면 안 되죠, 월셋방 살면서 어느 세입자가 도배랑 장판 비를 내놓나요? 안 해주시면 그만이지, 이상하시네."꼭 해달라는 말은 아니었다. 벽지 장판 모두 깨끗하긴 했지만 사람이 살았던 집에서 어느 정도의 생활감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런 이유로 집주인에게 물어본 것뿐인데 세입자가 죄인이라도 되는 양 몰아대는 모습이라니.
"그리고 우리가 워낙 깔끔하게 살아서 집앞 골목도 더러운 꼴 못 보니까, 1층 사는 사람이 골목 청소해줘야 돼."이건 무슨 달밤에 복댕이 짖는 소리야. 깔끔하면 자기 성격이 깔끔한 거지, 1층 사는 사람이 왜 골목청소까지 해야 해?
"됐습니다, 전 제 방도 안 치워요!"미련없이 돌아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 배추도사의 잔소리는 사랑가로 들릴 정도의 내공을 가진 집주인. 여기서 살다간 아마 <오마이뉴스> 사회면에 내 이름이 올라갈지도 몰라.
대문 밖까지 쪼르르 따라나오는 세입자 아가씨가 얼굴엔 미안함이 가득이다.
"죄송해요….""그냥 날짜 맞춰서 나가세요, 그게 낫겠네요.""이러는 사이 몇 달 지나서 아마도 그래야 할 것 같아요…."세입자 아가씨와 난 마주 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인사 대신 서로 좋은 곳 얻어 빨리 나가자는 약속을 했다.
그날 밤, 옥탑에서 울긋불긋 알록달록 반짝이는 불빛들을 바라보자니 이 넓은 서울에서 작은 몸 뉘일 곳 구하기가 이리도 힘든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더군.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흑….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