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클로와 오토바이(하노이)하노이는 시클로를 대신해 오토바이가 장악했고 그들이 뿜어내는 매연과 소음이 거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양학용
투어리스트 버스를 타는 순간 여행자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터미널까지 나갈 필요도, 굳이 호텔을 찾아 헤맬 필요도 없어진다. 버스는 '도어 투 도어'. 즉, 호텔 문 앞에서 호텔 문 앞까지 데려다 준다. 게다가 내려주는 호텔도 싸고 무난한 편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런 '안락한' 조건을 마다하고 '로컬버스'를 타는 '바보'는 흔치 않았다.
그리하여 여행자들은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호텔에서 자고, 같은 도시를 돌아다니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베트남 땅 위에 보이지 않는 '선'이 생겨난 것이다.
하노이에서 나짱까지 우리는 '선' 안에서 편안히 여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허전했다. '선' 안에서 만나게 되는 현지인은 여행자에게 닳고 닳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보여주는 베트남과 그들이 웃고 돌아선 자리에는 왠지 씁쓸함이 남곤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외국인은 곧 '돈'이라고만 바라보는 것 같았다. 제2의 중국, 세계자본의 최고 재테크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베트남은 변화하고 있었다. 기회와 경쟁, 돈과 속도, 자본주의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닥치고 있었다. 내가 상상해오던 시클로의 베트남이 아니었다. 이미 도시는 시클로를 대신해 오토바이가 장악했고 그들이 뿜어내는 매연과 소음이 거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사실 아내와 난 진작부터 '선'을 넘기로 결심했다. 여행사가 만들어 놓은 '베트남 루트'를 탈출하고 싶었다. 하지만 '바보'가 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하노이에서는 투어리스트버스도 한 번쯤 타보자고, 훼에서는 비오는 날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녀 감기가 들어서, 호이안에선 우기(!)에 비가 온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어왔다. 비용과 질의 차이가 워낙 컸기 때문이었다.
'싱글벙글' 마침내 바보가 된 아내와 나는 날아갈 것만 같았다. 로컬버스(15인승 이스타나)는 해안도시 나짱을 떠나 산길을 내달렸다. 창 밖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언덕을 넘자 붉은 논과 밭이 넓게 펼쳐졌다. 여기저기 베트남 고깔모자(?)를 쓴 농부들이 한 마리 '학'처럼 점점이 박혀 있었다. 더없이 평화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