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 노 모바락(Happy New Year)손으로 짠 페르시안 카펫 위에 설날 음식이 차려졌다. 보이는 친구가 '아사디'다.
양학용
그러나 웬일! 아버님이 꾸란 속에서 빳빳한 5,000리알 지폐를 꺼내 어머님부터 아들 둘, 딸 부부, 손자에게 차례대로 한 장씩 나눠주시는 게 아닌가! 나도 장난스럽게 두 손을 쭉 내밀었다. 아버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한 장 척 얹어주셨다.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한 장 나눠주자 지폐는 딱 떨어졌다. 미리 우리 몫까지 준비하신 게다. 순간 아내의 눈에 물기가 비쳤다. 세뱃돈을 받고 보니 고국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난 모양이었다.
곧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우리의 전담 통역관으로 임명된 아사디가 한 사람씩 소개했다. 그런데 촌수가 좀 이상했다.
“잠깐만! 이 분이 베흐루즈 여동생의 남편이야. 그치? 그런데 네 형이라며? 넌 베흐루즈의 사촌동생이라 했잖아?”
“그게 뭐? 그러니까, 우리 형은 베흐루즈의 사촌동생이자 처남인 거지. 우리 엄마 역시 얘(베흐루즈 여동생)한테는 이모이자 시어머니가 되는 거고!”
이후에 수도 테헤란에서 중산층 가정의 초대를 받은 적도 있었는데 도시인들도 한가지였다. 사촌끼리의 혼인은 이란에서 아주 흔했다. 그 때문에 200여 가구에 2,000여 명이 살고 있는 샤베마을은 거의 대부분이 서로 친척이었다.
그리하여 아내와 난 여행 떠난 이후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야했다. 이 집에서 점심. 저 집에서 저녁. 초대에 불려 다니느라 발바닥에 불이 날 지경이었다. 잠깐 틈을 봐서 마을 산책이라도 할라치면,
“어, 삼촌이 차 마시러 오라고 저기서 부르시네? 저긴 또 형수 이모님 아냐. 차 한 잔 안 마시러 온다고 아침부터 섭섭해 하시던데!”
“야, 아사디! 우리가 무슨 물고기도 아니고, 좀 어떻게 안 되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