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중고차를 사서 5개월 동안 유럽여행을 했다.(루마니아 클루즈 나포카 캠핑장)김향미 & 양학용
그러나 난 심각해졌다.
"아니, 내가 스트레이트로 해 달랬잖아요!"
"당신 머리카락은 짧아서 불가능해요."
"그럼, 처음부터 안 된다고 말했어야죠. 이건 제게 꿈이라고요! 원래 제 머리로 다시 돌려놔 주세요!"
"그것도 불가능해요. 아- 아니 난 몰라요. 지금 그 머리가 스- 스트레이트예요."
이제 그녀는 완전히 횡설수설이었다. 스트레이트파마라는 것 자체를 처음부터 몰랐던 것인지, 일단 해주고 나서 돈이나 벌자는 심산이었는지 통 알 수 없었다.
마침내 미용사가 경찰을 불렀다. 내가 스트레이트파마를 다시 해주던지 원래 머리로 돌려놓던지 하지 않으면 돈을 지불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돈을 안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머리를 어떻게든 수습하고 싶어서였다.
미용사가 경찰에게 상황 설명을 했다. 루마니아 말로. 설명을 듣고 난 경찰이 내게 왜 돈을 지불하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 것 같았다. 미용사가 앞뒤 사연을 잘라버리고 아내와 나를 파마비용이나 떼먹으려는 불한당으로 몰아붙인 모양새였다.
"이런! 드라큐라 백작의 마누라 같으니라고!"
화가 났다. 하지만 경찰은 오히려 나를 경찰서로 데려갈 태세였다. 그때였다. 학생처럼 보이는 젊은 남녀가 미용실로 들어왔다. 아내가 그들에게 뛰어갔다.
"영어할 줄 아세요?"
"네."
"좀 도와주세요. 저흰 한국에서 온 여행자예요. 지금 억울한 상황을 당하고 있는데, 말이 통하질 않아요. 경찰에게 저희 얘기를 통역해줄 수 있겠어요?"
"그- 글쎄요…."
그들은 미용사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서로 잘 아는 관계 같았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였다. 가슴에 못을 박듯이 말했다.
"당신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저흰 경찰서로 끌려갑니다. 그리곤 곧 풀려나겠죠. 아무 잘못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마음에 상처가 남을 겁니다. 당신들의 나라 루마니아가 먼 이국에서 온 여행자에게 가한 상처 말입니다!"
다행히 그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설명을 다시 들은 경찰은 미용사를 한 번 쳐다보고는 중재안을 내놓았다. 나는 내 머리에 만족하고 미용사는 비용을 포기하라는 거였다. 만족할 수 없었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그날 이후 파마머리는 조금씩 부어올라 한 달쯤 지났을 때는 거의 펑크 머리로 변해갔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점점 내 머리가 마음에 들었다. 생각할수록 파격적이고 멋있었던 것이다. 나의 소심한 성격에다 주변에서 쏟아질 눈총과 입총까지 고려해본다면, 한국에서는 결코 시도하지도 못했을 스타일이었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또 그녀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름도 알지 못하는 그 인터내셔널 미용사가 오히려 고마워졌다.
그런데 그날 난 왜 그렇게 흥분했을까. 아직도 '떠돌이 까치'에 대한 열등감이 남아있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