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의 대장정을 시작하다. 뉴욕 퀸즈에서.문종성
낮에는 맨해튼 성결교회에서 주일 예배와 청년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밤에는 일주일간 머물렀던 퀸즈의 한인 유학생 집에서 조촐한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을 하는 1.5세 동웅씨는 일주일 동안 뉴욕 음악 대학 연주회와 뉴욕 1.5세 화요 기도모임에 데려가는 등 이것저것 나를 챙겨주었다.
일요일 자정이 넘은 깊은 밤 마지막 식사로는 뮤지컬 연출을 꿈꾸는 수헌씨가 직접 삼겹살과 이것저것을 사와 내일 떠나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 역시 '주독야경'을 하며 힘들게 고생하는 청년이다. 서로의 처지에 공통분모가 많아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한 점 한 점 고기를 입 안으로 밀어 넣을 때마다 이것이 앞으로의 고생을 위한 마지막 축복이라고 생각하니 더욱더 비장해졌다.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다가 너무 부피가 크고 무거워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했다. 세트로 있는 것들은 하나만 남기고 다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사용 가치가 낮은 물품은 과감히 쓰레기통으로 슛을 던졌다.
고가 물품들은 무겁기는 했지만 필요하고 또 비싼 제품들이라 쉽게 버리지 못했고, 결국 하나 뿐인 가장 최근에 산 재킷과 건빵 바지는 미련없이 수헌씨에게 넘겼다. 비워냄. 앞으로 여행 중에 또 얼마를 비워내야 할 것인가. 비움 없이는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도 없나니, 앞으로 현명하게 버리는 방법도 배워야 할 듯싶다.
나, 본유적 빈곤과 빈약한 영적 자원을 가지고 떠난다. 드디어 결전의 날, 월요일. 낮에 간단히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고 식사를 한 후 온통 고속도로로 거미줄을 쳐 놓은 뉴욕의 번잡함과 진입불가를 일거에 해결하기 위해 외곽지역까지 차로 이동했다.
외곽지역으로 빠져나가려는 뉴욕은 혼잡하기만 하다. 주말에 밀린 물품들을 수송하기 위한 트럭의 행렬이 계속 이어진 것이다.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맞아준 가스펠 펠로우십 교회의 성현경 목사님께서 뉴욕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배웅해 주셨다.
뉴욕의 외곽지역에 내린 나는 짐들을 다시 한 번 단단히 동여매고, 드디어 첫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오후 4시.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한 그늘 아래를 반복하며 달리는 나에게 앞으로 내 인생을 책임질만큼의 자유가 주어진 것이다. 이제 그 자유 안에서 나와 인류의 비전을 바라보아야 한다. 내 몸의 모든 감각들을 일일이 깨워내 세상을 투명한 시선으로 껴안아보도록 한다.
'청춘, 너의 삶에 자유와 희망을! 어떤 일이 일어나든 감사하자. 누구를 만나든 그의 인생을 존중해주자. 중요한 건 일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무엇을 했는가하는 경험보다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하는 인사이트인 것이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은 채 뉴욕 주 북쪽으로 핸들을 고정시켰다. 저녁 7시. 바람은 조금씩 거세지고 날은 어둑해지며 기온은 떨어지고 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당장 급한 숙박을 해결해야 했다.
'오, 나의 주님. 나는 당신의 자비로우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디 저에게 잠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을 허락해 주십시오. 음, 되도록 7시 30분까지면 좋겠습니다.'
이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면, 어쩌면 신앙심 없는 나의 믿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날지도. 어쨌든 신이 존재하고 그것을 믿는다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기대되는 위로와 반전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뉴욕 주의 5월은 제법 쌀쌀한 바람을 품고 있다. 7시 20분. 우연찮게 한인교회를 발견하게 되었다. 오, 이런. 이렇게 교외 지역에도 한인 교회가 있다니. 그 곳의 성도로 보이는 한 아저씨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그 교회를 섬기는 청년의 집주소를 받아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나의 기도를 외면하시지 않았구나'라는 안도감에 마음이 놓인 순간이다. 하지만 어찌 신의 계획과 인도를 한낱 피조물인 인간이 낱낱이 파헤쳐 알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