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인 뉴케냐롯지에서 찍은 나이로비 시내모습.김성호
이처럼 나이로비는 동아프리카 최대의 도시로 꼽히지만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나이로비 강이 흐르는 마사이족과 키쿠유족이 살던 습지대였다. 마사이어로 '차가운 물'이라는 뜻인 나이로비는 에티오피아 디레다와처럼 철도가 건설한 전형적인 신흥도시이다.
영국식민지 정부가 지난 1896년 케냐의 인도양 연안도시 몸바사에서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까지 연결하는 철도건설의 전초기지이자 중간 역으로 나이로비를 만들고, 1901년에는 식민지 총독 청사마저 몸바사에서 이 곳으로 옮겨오면서 최대의 도시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영국인들이 이 곳을 선호한 것은 아프리카답지 않게 해발고도 1676m의 고원으로 기후가 서늘하고 땅이 비옥하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그러나 나이로비는 화려한 대도시라는 생각도 잠시. 위험한 도시라는 낙인을 찍는 체험을 하게 된다. 시내중심가에 있는 숙소인 뉴케냐롯지에 도착하자마자 나이로비의 진짜모습을 보기도 전에 택시기사의 위협적 횡포를 경험한 것. 내가 공항에서 환전한 1000 케냐 실링(1달러=80실링)을 주자 택시기사는 "잔돈이 없다"며 거스름돈을 주지 않는다.
야야센터에서 탈 때 미리 700실링으로 흥정이 끝났는데 아예 딴소리를 하는 것이다. 내가 "700실링으로 약속해놓고 무슨 소리냐"고 따지자 택시기사는 "유, 폴리스(당신 경찰 부를 거야)"라고 오히려 위협적인 자세로 나온다.
나이로비의 첫 경험은 단순한 택시기사의 횡포가 아니라 위협적인 공포였다. 그렇잖아도 나이로비는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그래서 나는 케냐를 가능한 빨리 떠나야겠다고 도착하자마자 결심했다. 물론 나이로비에 온 것도 사실은 우간다로 가기위한 중간 기착지였지만.
리버 거리와 라테마 거리가 만나는 곳에 있는 뉴케냐롯지는 대표적인 도심 슬럼가이다. 재래시장과 대중교통 버스정류장이 가까이 있어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차량과 물건들로 혼잡스런 곳이다.
숙소 뒤로는 곧 무너질 것 같은 허름한 건물들이 그대로 방치된 채 흉물로 남아 있고, 강절도가 끊이지 않는 대표적인 위험지역이다. 여행책자에서도 별로 추천하지 않는 지역이다. 아니 오히려 기피대상지역이다. 그러나 가격이 워낙 싸고 시내중심가에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는 이유 때문에 찾은 것이다.
나는 택시요금의 거스름돈을 포기하고 뉴케냐롯지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길가의 입구 문에서부터 철제문으로 단단히 닫혀 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 나와 열어주었다. 다시 계단을 올라가니 안쪽의 출입문도 철제로 커다란 열쇠로 채워져 있다. 마치 보안시설이 철저한 교도소 출입문처럼 도시안의 요새였다.
주변이 모두 위험지대라보니 여행객 숙소의 시설도 철저하게 보안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숙소를 드나들 때도 일일이 벨을 눌러 종업원을 부른 뒤 철제문을 열어달라고 해야 할 정도로 불편하기도 하다.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보안시설의 불편쯤은 감수해야 한다.
아프리카의 관문은 곳곳이 위험지대
숙소에 들어가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젊은 여행객이 배낭 하나만을 메고 들어왔다. 여름방학을 맞아 아프리카 여행을 온 대학생이었다.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방학 때면 혼자서 아시아와 유럽 등 여러 나라를 배낭여행을 했던 전문가 수준이었다. 한국에서 라면과 김치, 고추장 등 먹을거리도 가져와 숙소에서 직접 밥을 지어 먹는 등 초절전 여행객의 모범. 학기 중에는 이론을 공부하고 방학 때는 가난한 배낭여행을 통해 실전을 익히는 모습이 대견해보였다.
자신의 장차 희망 직업도 관광경영 전공과 같은 게스트하우스(여행객 숙소) 운영이라고 하니 어쩌면 배낭여행은 학점 없는 필수코스인 셈이다. 나는 이 학생과 함께 한방에 4명이 같이 자는 이른바 공동 숙박시설인 도미토리 방으로 들어갔다. 하루에 370실링(4600원). 당연히 여러 명이 함께 자는 도미토리식 방을 이용하면 숙박 요금을 줄일 수 있다.
우리가 들어간 6호실 방에는 이미 일본 젊은 여행객 2명이 투숙하고 있었다. 그런데 침대위에 입던 옷가지 등을 그대로 팽개치고, 버너 등 요리기구 등을 어지럽게 방안에 내버려둔 것이 아무래도 심상찮다.
3호실 방에는 또 다른 한국 여행객이 있었다. 숙소의 직원이 "코리아에서 온 여행객이 있다"고 먼저 알려준다. 젊은 남자는 의사이고, 다른 여자 여행객은 재미교포 대학생이었고, 또 이들과 같이 방을 쓰는 뉴질랜드 출신 젊은 남자 여행객이었다. 이들 역시 아프리카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사이라고 한다.
첫날이라 나와 대학생은 현지인 음식을 먹어보기 위해 숙소 바로 앞의 허름한 현지인 식당으로 갔다. 퇴근 시간 무렵이어서 인지 거리는 차를 타려는 사람들로 북적북적 거렸다. 바로 앞이 케냐의 대중교통수단인 마타투(Matatu) 버스정류장.
차안은 이미 사람들로 콩나물시루처럼 꽉 찼는데도, 남자 차장은 한명이라고 더 태우려고 목적지를 외치며 연신 승객을 부르고 있었다. 손님이 꽉 차야 출발하는 아프리카의 대중교통수단인 마타투는 일반적으로 봉고버스 또는 미니버스와 같다고 보면 된다. 아프리카 여행 중 이런 장면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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