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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확대당정협의회에서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출자총액제한제도 개편안 등 안건을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나라 전체가 한미FTA 협상과 타결에 관심이 집중되어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안만큼 국민경제에 광범하고 심대한 영향을 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또 하나의 우려할 사건이 진행되었다. 다름 아닌 개정한 '출자총액제한제도'의 국회 본회의 통과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 시점에서 글을 쓰는 것은 관심 있는 시민들에게 제도의 본 의미를 충분히 알리기 위한 것이다. 또한 제도의 국회통과가 잘못된 분석에 기초하였음을 확인하고, 이로 인해 머지않아 국민경제에 나타날 폐해를 사전에 충분히 보완하기를 요청하는 것도 글의 목적이다.

출자총액제한, 기업 지배구조만의 문제 아니다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왜 중요하고, 과연 무엇인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1조는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대규모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에 대하여 다른 회사에 대한 출자총액을 일정수준 이하로 제한하고 동일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 간에는 상호출자를 금지하는 등의 제도를 도입하여, 기업으로 하여금 무리한 기업 확장보다는 내실 있는 기업성장에 주력하도록 유도함으로 대규모기업집단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현상을 억제하고 국민경제의 활력제고 및 균형발전을 도모한다."(1986.12)

이처럼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단순한 기업의 투자와 관련된 것이거나, 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인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법의 근본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서 바라보았고, 전혀 다른 논거로 법을 다루었다.

경제력집중 억제가 왜 중요할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력 집중에 의한 국민경제의 효율성 저하. 둘째, 소유 집중에 따른 분배 형평성 저해. 셋째, 소수의 의사가 시장기구를 대체하는 데 따른 경제적 민주주의 역행. 넷째, 정치행정력과 결부된 정경유착의 유발. 다섯째, 거대해진 경제력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강력한 권력이 주는 민주주의체제의 내재적 위험. 마지막으로 경제력집중의 심화방치에 의한 이해집단간의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분극화는 자본주의체제 내적해체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정리이다(이규억, 1990).

즉, 현재의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의 많은 부분이 경제력의 집중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불공정 거래와 경쟁의 제한, 중소기업의 고사로 인한 경제 활력 저하, 소유구조의 왜곡으로부터 발생한 지배구조의 문제 등등이다.

미국·영국·일본·독일도 출자 규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진국도 경제력 집중 문제에 봉착하였을 것인데 이들은 어떻게 대응해 왔는가?

선진국들도 발전 초기에는 우리와 같은 문제에 봉착했는데,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묘한 법제들을 도입하여 기업들의 자유로운 출자를 규제하였다.

즉 미국은 피라미드 형식의 재벌을 통제하기 위하여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 보아도 매우 기묘한 대책을 마련하였고 그러한 정책을 구사하였다. '반독점법' 및 '클레이톤 법', '배당에 관한 이중과세제도' 등 다양한 제도가 시행되었다.

일본은 패전 직후 재벌의 해체와 함께 우리와 같이 출자규모를 직접 규제한 국가로서 1977~2002년까지 시행했다. 그리고 현재에도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규정은 여전히 남아있다.

상호출자가 자유롭다고 알려진 독일의 경우도 출자에 관한 결정을 엄격히 하고 있다. 주식회사법(제182조)에서는 출자를 하고자 할 경우 주주총회에서의 대표자본 및 각 종류별 주식의 3/4의 특별결의가 필요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콘체른(재벌기업) 내부자간 거래에 대한 판매세를 부과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적대적 인수합병 시장이 가장 자유롭다는 영국에서는 소유권취득에 관한 증권거래소 규칙을 통해 새로이 발생하는 기업 간의 출자를 억제하였다. 이로써 경영자들이 기업경영에 전념케 하는 효과를 거두었고 소유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도 하였다. 그런 결과가 소유와 경영을 분리토록 유도하였고 지배구조 문제를 최소화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선진국에는 우리와 같은 출자를 제한하는 제도가 없다'는 주장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선진 외국도 우리의 출자총액제한제도보다 훨씬 더 강한 출자규제를 통해 기업들이 가공자본을 형성할 수 없도록 해왔다.

시장 잡아먹는 대기업, 공정한 경쟁을 하자

▲ 창업자 가족 중심의 오너 경영은 많은 폐해를 낳고 있다. 사진은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문제와 관련해 논란이 된 두산중공업 주주총회.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재벌과 유사한 구조의 기업집단이 주요 선진국에서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국가에서도 재벌그룹 및 재벌들 스스로 자본충실의 원칙에 부합하고자 하지 않았으며, 경제력 집중을 스스로 억지하거나 공정한 경쟁을 추구하고자 하지 않았다.

시장제도가 발전할수록 더욱 더 교묘하게 공공의 이익을 해치는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국가로부터 강력한 제재를 받았다. 그것은 모두 대재벌 기업의 경제력 집중이 시장의 경쟁을 파괴하는 행태를 보다 못해 탄생시킨 제도이다.

선진국들의 대기업소유구조가 처음부터 현재와 같이 효율적으로 만들어졌는가? 아니다. 미국·일본·영국·독일 등은 기업의 소유구조를 직접적으로 통제하면서 경제력 집중을 적극적으로 억제했다. 미국 스탠다드오일 재벌의 해체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결과 이들 나라에서는 최고의 기업일수록 오너가 소유하고 지배하며 경영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이들 나라의 자산규모 상위 20위 기업들의 소유구조를 보면 우리와는 전혀 반대로 오너 및 대주주가 경영에 참여하고는 비율은 극히 낮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상위 20대 기업(주식회사)을 놓고 볼 때 가족지배기업은 영국 1개, 미국 4개, 일본 1개, 독일 1개에 불과하다. 또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영국 100대 기업 중 8개사, 미국 50대 기업 중 7개사, 일본 3개사 및 독일 20대 기업 중 2개사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공기업을 제외한 20대 재벌 대주주 모두가 가족이나 개인(오너)이다.

지배구조보다 소유구조 개선해야... 선진국은 우리나라와 정반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선진국 각국에서는 지배구조를 개선하기에 앞서 소유구조를 직접적으로 개혁하였다. 우리나라가 현재 소유구조보다는 지배구조 개선에 심혈을 기울인 것과는 정반대의 시도였다.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해결하고자 하였을 때 발생하는 비용, 즉 규제비용이 더 크게 나타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국은 소유의 직접통제로써 창업자 및 재벌가문을 기업경영으로부터 배제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선진국 기업들이 저토록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배경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실패했던 사례를 통해 후발국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번 출자총액제한제도 개정안 통과는 장래의 우리 경제구조에 심각한 폐해를 가져다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출자총액제한제도를 강화하기 위하여 그동안 노력해온 경실련과 시민단체 및 일부 전문가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태그:#출자총액제한제도, #독점규제, #기업, #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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