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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통과된 법안은 공정위에서부터 시작하여 차관회의를 거치고, 국무회의에서 최종 정부안으로 채택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정위가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보완책으로 제기한 '환상형 순환출자금지'는 폐기되었다. 이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논란 끝에 일부 의원이 퇴장하는 곡절을 거쳐 법사위까지 일사천리로 통과된 것이다.

그렇다면 출총제의 후퇴가 정당한지 2006년 10월 23일 마무리한 공정위의 '대규모기업집단시책 T/F(이하 팀)'에서 점검한 내용부터 살펴보자.

이 팀의 역할은 2003년 시작된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의 성과를 점검하고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성과를 평가하며 이 제도의 개선방안을 내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각종 내·외부 견제시스템의 평가를 통한 지배구조 개선의견을 내는 것이기도 하였다.

요컨대 이 평가를 통해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완화할 근거가 충분하다면 완화해야겠지만 반대로 강화할 근거가 발견되면 당연히 그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팀'의 주된 과제였다고 볼 수 있다.

재벌 출자 늘고 있는데, 출자총액제한은 완화?

첫째, 재벌들의 출자행태의 변화가 현행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완화할 근거를 주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공정위가 지난해 '팀'에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자산 규모 상위 13개 재벌들의 출자규모의 추세는 경제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97년 말 13조 6000억원, 1999년 말 36조 9440억원, 2003년 말 49조 9050억원, 2005년 말 68조 6160억원이다.

이와 같이 출자총액제한제도 규제대상 재벌들의 출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시장개혁 로드맵에 의한 여러 장치가 작동되는 와중에서도 상위재벌들은 2년간 출자를 37.5%나 증가시켰다. 여러 가지 제도를 시행한 결과에서도 출자규모와 관행이 변화가 없다면 현행 제도를 강화거나 더욱 보완하여야 한다.

반대로 출자총액이 여러 경제변수를 감안하고 비교시점부터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있거나 감소하였다면 이 제도를 폐지하거나 또 다른 관점에서 적절한 제도를 도입했어야 하는 게 옳다.

이런 점에서 현행제도는 더욱 강화되었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지만 정부와 정책 입안자들은 이에 대한 충분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출자총액제한도'를 사실상 폐지하는 수순을 밟았다.

이사회 독립성은 목표치 미달

둘째, 출자규제와 관련이 없는 것이지만 내·외부시장견제시스템에 대한 평가를 보자. 이것은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내부견제시스템 평가 항목은 주주권리, 이사회구성, 이사회운영, 투명성 항목이다. 이를 종합한 점수는 2003년 38점(100점 만점), 2004년 39점, 2005년 40점, 2006년 41점 수준으로 매년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기업지배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이사회의 독립성에 대한 평가는 초기보다 더욱 하락하였다는 사실과 함께 극히 미미한 개선 효과를 과대평가하였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내부견제장치에 대하여 동일한 척도로 본 미국 화이자(Pfizer)사의 점수는 97점이다. 목표치에 너무도 모자란 것이다.

그리고 외부견제시스템 평가는 제도의 도입 여부에 대한 평가이므로 피상적이라 할 수 있다. 즉 그 제도의 실효성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증권관련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되었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점들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외부견제시스템의 평가 점수가 미국의 89점보다 높은 92점을 받았다고 우리의 법제도가 훨씬 더 잘 작동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없다.

이처럼 공정위의 3개년 과정평가의 핵심을 보면 어떤 근거로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이와 같이 후퇴되어 입법되었는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기업지배구조 성과 평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름에도 함께 평가했는지 납득할 수 없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경제력 집중의 측면과 기업의 성과 측면 등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살펴볼 사안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중소기업 경쟁력 약화 초래할 것

이러한 정권의 오판과 정책의 오류는 훗날 우리 경제민주화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될 것은 물론 중장기적으로 산업의 왜곡에서 비롯된 절대다수 중소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1편에서 설명하였듯이 선진국의 대기업 정책은 매우 엄격히 실시해오고 있다. 이것은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시장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몇 개의 재벌 및 대규모 기업들이 국민 경제 전반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키우는 것보다는 그 비중을 축소하는 것이 국가적 위기관리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우리의 산업이 소기업 및 다양한 분야에서 더욱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상위 그룹보다는 하위 그룹이, 하위 그룹보다는 더 아래 단계에 있는 그룹 혹은 수많은 기업들이 더 자유롭게 활동을 하고 기업을 확장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

이것은 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생산수단을 갖게 하는 것이며 이로써 경제의 토대가 튼튼하게 구축되는 것이다. 쉽게 비유하면 양극화는 안정된 직장, 즉 일자리의 부족과 개인으로서 경제주체가 생산수단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점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창업에 이은 소기업과 중소기업으로의 성장은 재벌그룹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는 그 중요성을 갖는다.

덧붙이는 글 | 위평량 기자는 경제학 박사로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경실련 재벌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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