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국 워싱턴에서 원정시위대의 반대목소리에 아랑곳없이 지난 5일부터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1차 협상이 9일 끝났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협상의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대체 한·미 FTA 협상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 한림대 국제대학원 최태욱 교수의 기고를 통해 한·미 FTA 협상의 문제점과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 한미FTA 1차 본협상 폐막을 하루 앞두고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9일 오후 광화문 미대사관 인근에서 "죽음의 협상판을 걷어치우라"고 외치며 한미FTA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본디 상품무역의 자유화만을 의미했던 자유무역협정(FTA)이 실질적인 경제통합협정으로 발전할 수 있는 소지를 갖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 WTO(세계무역기구)체제가 서면서부터이다. 소위 '무역관련(trade-related)'이란 새로운 개념의 고안 덕이었다. 제조업과 농업은 물론 금융, 교육, 의료, 법률 등의 서비스 상품들이 모두 자유화의 대상이 되었고, 무역의 패턴과 성격 그리고 그 효과에 영향을 끼치는 투자, 지적재산권, 시장접근권, 경쟁정책, 노동, 환경 등도 무역관련 이슈로서 협정 대상에 포함될 수 있게 되었다. 실질적으로 경제활동의 전 영역을 포괄하는 협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며, 이 경우를 '포괄적 FTA'로 부르게 되었다.

FTA도 천차만별... '맞춤형 FTA'도 가능

WTO의 통계에 의하면 2006년 5월 현재 전 세계에는 193개의 지역무역협정(RTA)이 존재한다. 이 중 대다수인 124개가 FTA로 지칭되고 있다. 이 가운데 경제통합에 가까운, 즉 매우 포괄적인 FTA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협정의 대상 및 영역의 범주가 일정한 '제한적 FTA'에 해당한다. 예컨대, 미국은 운송산업, 유럽연합(EU)은 노동, 그리고 개도국 간에는 지적재산권 영역 등을 FTA 대상에서 제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외에 특히 EU가 맺는 FTA의 경우를 보면 서비스산업이나 투자 영역 등이 FTA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도 여럿 존재한다.

한편, FTA의 수준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있는 바, 그것은 자유화의 이행기간이다. 세계의 FTA를 들여다보면 완전 무관세화까지 걸리는 기간이 짧은 것은 1년에서부터 긴 것은 28년까지 그 이행기간이 매우 다양함을 알 수 있다.

결국 FTA는 협정의 대상과 범주, 그리고 그 이행 기간이 천차만별이란 것이다. 단순한 상품교역자유화에서부터 경제통합 협정까지, 그리고 1~2년 이내와 같이 초단기간에 완성되는 것에서부터 20~30년 후까지 보는 장기협정까지 그 내용과 수준은 다채롭다는 것이다. FTA에는 정형이 없다는 것이며, 그것은 협정국 간 사정에 따라 그 수준이 결정되는 소위 '맞춤형 FTA'도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같이 FTA에 포함되는 산업, 영역, 사안 등이 다채로운 가운데, 그리고 그 이행기간 설정이 신축적인 가운데 주요국의 FTA 체결 패턴이 나름대로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세계은행은 소위 미국식, EU식, 그리고 남-남식(개도국식) FTA 등의 패턴을 제시하고 있다. 각각의 특색을 살펴보면, 미국식은 신자유주의적 성격이 뚜렷한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 EU식은 상대국 사정이 고려되는 맞춤형에 가까운 신축형 FTA, 그리고 남-남식은 주로 상품교역의 자유화에 치중하는 FTA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식 FTA는 상대적 약소국에 가혹한 FTA

미국식 FTA의 특징은 좀 더 상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한 마디로 철저한 시장개방, 민영화, 정부개입 축소 등을 요구하는 소위 '시장 근본주의' 이념에 충실한, 그리하여 특히 상대적 약소국에 가혹한 FTA라 할 수 있다. 미국식 FTA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서비스 산업과 투자시장의 완전 자유화이다. 이 영역에서 미국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미국은 FTA를 통해 매우 강력하고 공격적으로 상대국 서비스시장의 개방을 요구한다. 대표적인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서비스시장의 개방은 열거한 것 외에는 모두 개방해야 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채택(EU식과 남-남식은 열거한 것만 개방하면 되는 포지티브 방식이 기본), 현지 법인이나 지점의 설립 없이도 서비스를 수출할 수 있는 '국경 간 거래'의 허용(EU식과 남-남식은 모두 불허), 그리고 한 번 개방한 서비스시장은 번복할 수 없도록 하는 미국식 특유의 '제동 기제(ratchet mechanism)' 조항의 삽입 등이다.

한편, 미국식 FTA의 투자 자유화 및 투자자 보호의 강조 또한 유난스럽다. 미국식에서는 투기성 단기자금과 지적재산권까지도 모두 투자로 간주하는 넓은 의미의 투자조항이 삽입된다. 또한 투자유치국 정부가 투자기업에게 자국인 고용, 원자재나 중간재의 자국산 사용, 기술 이전, 일정 이득분의 재투자, 환경보호 등의 이행의무를 부과할 수 없도록 하는 의무부과 금지 조항 역시 미국식의 특색이다.

투자자에게 의무 없는 권리와 활동의 '자유'를 보장키 위함이다. EU식이나 남-남식에는 이러한 의무부과가 대부분 허용된다. 가장 뚜렷하게 미국식 FTA의 특성을 보여주는 투자 조항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nvestor-state claims)'이다. 투자자가 현지 정부를 상대로 제3의 기관에 직접 중재를 요청할 수 있는 이 제도는 투자 유치국 정부가 마땅히 행사해야 할 투자 활동에 대한 관리 감독 권한을 크게 위축시킨다. 미국과의 FTA 체결국 중 호주만이 이 조항을 제외시키는 데 성공했다. EU식이나 남-남식 FTA에서는 당연히 이러한 불법적 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미 FTA의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

▲ 지난 6월 7일 한·미 FTA 원정시위대의 집회에 미국 노조에서 나온 참석자들이 "다운, 다운, 다운, FTA"를 연호하고 있다.
ⓒ 강인규
정부가 내용 공개를 하지 않으므로 한·미 FTA 1차 협상의 결과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제한적으로 알려진 몇 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우리 정부가 지금 정확히 미국식 FTA, 아니 미국식 경제통합으로 가고 있음을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다.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를 추진함은 물론, 국경 간 거래, 넓은 의미의 투자 개념, 이행의무 부과 금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등 상기한 미국식 FTA의 핵심요소들에 대하여 대부분 합의해준 것으로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알려진 합의사항들은 우리 경제에 약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독이 될 만한 것들이다. 국경 간 거래는 고용창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우리 소비자들을 보호할 수도 없다. 미국의 금융 및 서비스 기업들은 국경 건너편에서 우리 소비자들과 직거래를 하기 때문이다. 이행의무 부과 금지 조항 역시 투자 확대에 의한 고용창출, 기술전수, 국산품 소비 증대 전망 등을 어둡게 한다. 해외투자 유치의 실익이 의문시되는 대목이다.

가장 큰 문제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이다. 이 제도는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처음으로 등장한 순수 미국식 제도이며, 조약 당사자를 국가로 보는 정통 국제법의 입장에서 보면 불법적 제도이다. FTA란 국가 간 협정이며 따라서 민간인인 투자자가 현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게다가 국내에서 발생하는 법적 분규에 대한 관할권은 당연히 국내 법원에 있음에도 투자자가 직접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나 세계은행의 국제투자분쟁처리기구(ICSID) 등 제3의 기관에 유치국 정부를 제소하는 것은 위헌적 행위에 해당한다. 우리 정부는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는 우리도 가입하고 있는 ICSID 협약에 규정돼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협약은 제42조 3항에서 협약 체결국의 동의가 없으면 ICSID의 관할권이 발생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치국 국내법에 의해 먼저 구제 절차가 진행되고, 그것으로 미진한 경우 관련 당사국 정부가 합의하면 그때 비로소 ICSID의 중재 기능이 가동한다는 것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가 한·미 FTA에 들어가면 미국의 개인 투자자나 기업은 (그리고 심지어 '넓은 의미의 투자'자에 포함되는 투기꾼들조차) 한국의 규제나 공공정책 등이 자신들의 투자 이익을 침해한다는 명분으로 우리 정부를 제소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NAFTA 체결 이후의 멕시코와 캐나다 정부가 그런 것과 같이 우리 정부의 정책 자율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환경, 노동, 건강, 삶의 질 등과 관련된 우리나라의 공익성 정책들이 미국의 민간 투자자들에 의해 변화를 강요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명백히 주권 침해의 문제이며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 최태욱 교수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 그것도 제도와 공공정책의 변화까지 요구하는 미국식 FTA는 한마디로 경제통합을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이러한 요구까지 수용하려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정말 51번째 주로 들어가길 원하는 것인가? FTA를 하려면 EU식으로 갈 일이다. 우리 사정에 맞는 맞춤형 FTA를 추진하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도 우리식의 FTA를 만들겠다는 창조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당장 그것이 어렵다면 역내 국가들과의 공동 노력을 통해 '동아시아식 FTA'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참여정부여, 우리들의 참여 없이 그대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