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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경찰서에 있는 기자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최근 불거진 수습기자 폭행 사건과 관련하여 여러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조중동'이 주도하는 기성 언론의 관행들이 어디까지 퍼져 나가는가로 보기도 하고, 그런 문화의 뿌리라 할 군사문화의 문제로 보기도 합니다. 학교나 회사 그리고 종교계를 비롯해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인권에 대한 자각이 언론계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고 기자의 특성을 설명해준 현직 언론인의 의견도 있었습니다.

수습기자 폭행 근본원인은 인력충원 구조

저는 언론사 인력 충원 구조에서 한 이유를 찾고 싶습니다. 흔히 '언론 고시'라 부르는 인력 충원 구조와 중앙 일간지 몇 종류가 전국 언론을 압도하는 현실이 혹독한 수습기자 제도를 유지시키고 있습니다. 사회부를 시작으로 수습기자를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구조가 이웃 나라 일본에는 유사하게 존재하고 미국이나 유럽에는 거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국이나 유럽의 기자들의 출세담을 들어 보면 고등학교나 대학 다니면서 교내 언론에서 맛을 보고 어느 지역 언론에 들어갔다가 특종을 내어 전국 네트워크에 몇 군데에 실렸고 그래서 (우리가 이름을 알 만한) 어느 언론으로 스카우트되었다는 식이 대부분입니다.

마치 그들의 프로 스포츠 리그처럼 아래부터 밟아 올라오면서 실력을 검증받아 메이저로 진입하는 구조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그동안 해온 경력, 굵직하게 터트린 특종 여부, 자기만의 전문 분야나 네트워크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나라나 일본의 경우는 이런 식의 이동은 거의 없습니다. 취업 초년생 나이에 시험을 봐서 언론사에 들어가면 그때 한 번 결정된 메이저와 마이너리그의 차이는 평생 갑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학벌과 시험 성적 그리고 면접으로 판단되는 자질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로 좋은 기자가 될 잠재력을 평가할 수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실제 뽑히는 기자들을 본다면 명문대 출신들이 유리하고 학업 성적이 좋은 쪽이 유리하고 유학 경험이 유리하다는 식으로 대기업 취업이나 다른 고시들과 그 기준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자로서 훈련이 거의 되지 않은 신입을 뽑아 빠른 시간 안에 기자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혹독한 수습기자 훈련을 거쳐야 합니다. 인권을 배제하고 효율로만 본다면 기존 언론사의 수습제도는 그 약발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사회부는 시시각각 기삿거리가 올라오기에 그걸 일일이 보고하는 과정에서 기사 선택의 기준을 배우게 됩니다. 기사 작성의 기본인 현장 취재와 육하원칙에 입각한 작성도 선배의 첨삭지도를 받아가며 다질 수 있습니다. 눈만 마주치면 인사시키는 것도 자기 상관만 알아서는 안 되고 네트워크가 중요한 기자들에게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모르는 영화담당기자?

언론사 입장에서는 닫힌 채용을 유지하는 한에는 지금과 같은 수습기자 교육을 빼고 갈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수습이라 해도 자기네 기자라면 다른 언론사들보다는 대우받아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갖고 있기에 빨리 일정 수준에 올리고자 더 혹독하게 다루게 됩니다.

안에서는 수습을 막 굴리지만 밖에서는 출입처에 우리 애들 수습이라 우습게 보지 마라는 식으로 압박을 가하거나 방송국 같은 경우엔 아직 정식 PD를 달지 못한 자기네 공채들인 경우 밖을 상대할 때는 PD로 명함을 파도록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옵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예전에 영화제에서 일을 할 때 새로 배치된 모 중앙 일간지 경력 2년차 담당 기자 기억이 납니다. 명문대를 나와 언론고시를 통과한 이 기자는 사람도 좋고 다 좋았는데 문제는 영화를 하나도 몰랐다는 점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그냥 봤을 법한 영화들도 보지 않고 공부만 했더군요.

영화를 모르는 영화 담당 기자라니! 그렇다고 기자 구박할 수는 없으니 우리가 친절하게 하나하나 가르쳐 드리면서 지냈는데 나중에는 영화 전문 주간지까지 진출하더군요. 전문성이 있는 사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뽑은 다음 전문성을 넣어주는 것이 우리나라 메이저 언론들의 방식입니다.

▲ 취재원을 에워싸고 취재 경쟁 중인 기자들(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수습기자 제도 피해자는 언론 소비자

수습기자 제도의 피해자는 굴림을 당하는 수습기자들이나 굴려야 하는 선배 기자보다는 언론 소비자들입니다. 최고의 기사를 받아 볼 권리가 있는 소비자들로서는 여전히 가내 수공업으로 기자를 키운다는 사실이 당혹스럽습니다.

수습기자 제도의 또 다른 피해자는 언론인을 지망하는 예비 인력들입니다. 여전히 기자로 가는 길이 기자로서 경력이나 능력보다는 학벌이나 성적으로 좌우된다면 난감한 일입니다. 이상주의로 들리겠지만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먼저 기회가 주어져야겠지요.

소극적인 대안은 수습기자 제도를 개선하는 것입니다. 단기 집중 교육 자체를 없애기는 어려울 것 같고 모든 기자가 사회부를 거치는 관행도 현재로선 나름 의미가 있기 때문에 유지한다고는 해도 시대 흐름에 맞게 세련된 형태로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엄하게 가르치는 것과 군대식으로 굴리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최근 보도되었던 대학 신고식처럼 언론사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인권이 보장되는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극복해야 할 과제일 것입니다.

근본적인 대안으로 언론 고시 방식이 아닌 '열린 채용'이 가능할까요? 현재로서는 밝게 내다보기는 어렵습니다. <한겨레신문>의 경우 의욕적으로 학력이나 나이를 철폐하고 기자를 뽑았지만 그 결과로 충원된 인력들은 다른 언론사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우리나라 중앙 일간지의 뉴스 구조가 지역 언론이나 다른 전문지와 협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 생산을 고집하기 때문에 지역이나 다른 곳에서 검증된 기자가 발탁되는 사례를 기대하기 어렵고 현실적으로 아직은 중앙 언론과 지역 언론의 격차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변화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조중동'이 아닌 중앙 일간지들의 경우 생존 차원에서 일반적인 기사들은 통신사 것을 쓰고 자체 취재 역량은 탐사 보도나 전문 분야로 돌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통신사 기사를 받아쓰는 영역에 지역 언론이나 다른 전문지 참여를 유도하는 것입니다.

'뉴스와이어' 같은 보도자료 대행사에서 초보적이지만 칼럼을 올리고 각 언론사가 게재하도록 하는 일종의 신디케이트를 시도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볼만 합니다. 아직은 그 수준이 천차만별이지만 인터넷 언론 활성화 덕에 기자 예비군이 늘어난 점도 하나의 바탕이 될 것입니다.

대학언론 산학협동으로 지역언론 활성화

지역 언론 활성화를 위해 산학협동을 고민해 봅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대학언론들은 학내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를 대상으로 하고 일반인 직원들이 같이 근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지역 언론의 문제인 영세성이나 특정 개인에게 속한다는 단점을 해소하기 위해 대학과 지역 언론 몇을 묶어서 산학협동 방식으로 운영한다면 지역에는 양질의 언론을 제공하고 지방 학생들에게는 언론계로 나아가는 작은 발판을 마련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오마이뉴스>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요? 닫힌 언론 구조에 대응하는 가장 성공한 모델이 <오마이뉴스>이기에 분명 책임도 있고 능력도 있습니다. 자기 생업을 유지하되 전문성 높은 기사를 생산하는 시민기자의 경우 그 기사가 다른 언론에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 공급되도록 중개할 수 있습니다.

시민기자로 단련된 사람이 전업기자가 되고자 할 때 그에 따른 교육과 취업 알선을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수동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포털 송고나 중복 게재 문제도 <오마이뉴스>가 앞장서서 한국형 뉴스 신디케이트를 만드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장익준 기자는 토클(TOKL, 국어능력인증시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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