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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경찰서에 있는 기자실. 수습기자들이 공동으로 쓰는 침대와 사물함, 책상이 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선배한테 보고할 때마다 가슴이 벌렁거려요. 전화하기 전 보고 내용을 머리 속에 정리하고 담배를 한 대 피워요. 전화 연결이 돼서 보고를 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또 한대 물게 돼요. 수습을 하기 전보다 흡연량이 4배 정도는 는 것 같아요."

타사보다 수습기자 훈련을 강하게 시키는 것으로 소문난 한 언론사의 수습 기자 A씨는 선배 기자에게 보고를 할 때마다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했다. 보고를 안하면 선배에게 엄청 혼나는 것은 물론이고, 전화를 끊을 때마다 사람 취급을 못받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보고'는 수시로 있다. '보고'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새벽에도 해야 한다. A씨는 "선배들은 '생각을 하고 움직이라'고 누누이 강조하지만, 도대체 생각을 하게 놔두질 않는다"고 말했다. 수습 기자의 모든 상황은 선배에게 보고돼야 하고, 보고된 뒤에야 움직일 수 있다.

A기자는 자기 관할 내 몇 개의 경찰서와 병원 등을 돌면서 기사거리를 건져내는 '경찰 기자'다. 기자들 사이에서 '사쓰마와리'라고 불리는 것으로 대부분의 통신사·공중파 방송사ㆍ중앙 일간지에 기자로 입사하면 3~6개월간 '경찰 기자'를 통해 기자의 기본을 습득하게 된다.

언론사 별로 차이는 있지만 '경찰 기자' 기간 중 초기 1~3개월간은 '붙박이 취재'를 하게 된다. 바로 '하리꼬미'라고 불리는 것인데, 사건 현장에서 이동하지 않고 며칠이고 지켜보며 취재하는 것을 이르는 이 말이 수습 기자들에게는 '귀가하지 않고 경찰서에서 잠을 해결하는 것'으로 통하게 됐다. '붙박이 취재' 기간에는 보통 1주 중 24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지난 6일 발생한 한 언론사의 '수습 기자-선배 기자' 간 폭행 사건에서 수습 기자는 교육과정에서 나눠준 '수습 교안'을 제시하며 강압적인 교육 방식을 문제 삼았다. 그렇다면 다른 언론사는 어떨까.

"힘든 훈련 당연하지만, 인격 모욕 견디는 건 고통"

A기자는 "문제의 '수습 교안'에서 나온 것과 같은 태도를 강요당하진 않는다"며 "'교안' 내용이 실제와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습 기간이 군대보다 3배는 힘들다"고 털어놨다.

입사 뒤 처음 기자 선배들을 대면할 때 군대 내무반에 갓 들어온 이병이 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각잡고' 앉아있다가 선배들이 들어오는 족족 일어나서 큰 소리로 '안녕하십니까 수습 ○○○입니다"를 외치면서 이젠 아득한 기억인 줄만 알았던 '이병 A' 시절이 생생하게 떠올랐던 것.

A기자도 기자가 되는 과정을 쉬운 일로 생각하진 않았다. 이미 기자가 된 선배들로부터도 '경찰기자' '붙박이 취재'에 대한 얘길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고, '수습 기자' 딱지를 달면서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러나 A기자는 "몸이 힘든 것은 잘 견뎌냈고, 앞으로도 잘 견뎌낼 수 있지만 정신적 고통이 너무 크다"며 "지금까지 버텨낸 것을 생각하면 내가 생각해도 참 용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수습 기자 교육의 가장 큰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짧은 시간 안에 한 사람의 기자를 길러낸다는 명목으로, 인간의 정신을 억압하고 있다"는 점이다.

짧은 기간 동안 제대로 된 기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힘든 과정을 거치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자로서의 훈련은 당연히 받아야되겠지만, 인격적인 모욕을 줄 필요까지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

A기자의 경우, 선배 기자가 수습 기자에게 쓰는 말은 기본적으로 '막말'이다. 각종 막말이 동원되는 선배의 '지적'에 수치심을 느낄 때도 있다. 그는 "'수습이 끝나고 년차가 쌓인 뒤에도 다시는 저 선배와 같이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털어놓는 동기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A기자도 자신의 교육을 맡은 선배 기자를 심정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도 수습 기자 교육방식에 대해 많은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도 결국은 후배를 억압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만다는 얘길 들었다"며 "결국 시스템 문제로 귀결되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봉건적 방식이지만 단기간에 많이 배우는 효율도"

▲ 서울의 한 경찰서 화장실 옆에 있는 사워 및 세탁실. 전·의경들이 이용하는 곳이지만, '붙박이 취재'를 하는 '경찰 기자'들도 이곳에서 샤워를 한다고 한다.
ⓒ 오마이뉴스
A기자와 마찬가지로 '경찰 기자'를 하고 있는 다른 언론사 수습 기자 B씨는 현재의 교육 방식에 대해 이렇다 할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B기자는 수습 기자 교육 방식에 대해 "도제식 방법이 봉건적인 방식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반대로 단기에 엄청나게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효율적인 면도 있다고 본다"며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니냐"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또 "경찰서에 있거나 취재를 다니다 보면 중간중간 짬이 생기고, 이 짬을 수습 기자가 알아서 활용하는 것 정도는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예를 들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허용되지 않았던 '대중 목욕탕에서 목욕하기'도 대부분 허용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B기자는 "단지 업무가 힘들고 많을 뿐, 인격적으로 모욕감을 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며 "선배가 뭘 알아보라고 자꾸 다그치긴 하지만 업무에 관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경찰기자', '붙박이 취재'로 대표되는 수습 기자 교육에 대한 수습 기자들의 평가가 소속 언론사마다 다른 상황. 이것은 각 사별로 수습교육 기간도 다르고, 수습 교육에 대한 회사 분위기도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예를 들어 한 중앙 일간지의 경우, 수습 기자 교육 과정이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평가를 자사 뿐 아니라 타사 기자들로부터도 받고 있었다.

'경찰 1진'은 "'지적' 못 견디면 그만 두는 게 낫다"

A기자, B기자와는 다른 언론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C기자는 "한 언론사의 수습 기자 폭행 사건으로 인해 다른 언론사들까지 싸잡아 비난받고 있다"며 "수습 교육 과정이 정상적이지 않은 한 곳 때문에 기자 집단이 깡패집단처럼 보이게 된 것이 너무 아쉽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C기자는 '경찰 1진' 기자로, 몇 개의 관할 경찰서의 뉴스를 맡아 뉴스를 생산하는 역할 뿐 아니라 수습 기자들을 교육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그는 "수습 기자 교육의 강도는 언론사마다 다르다"라고 전제한 뒤 "'경찰 기자' 시작 1주일 정도는 어느 언론사나 강하게 훈련시키고 있지만, 그 이후에는 짬짬이 잠도 재우고 나름의 배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도 수습 시절에 워낙 일을 못한 적이 있어 선배로부터 '야, 이 새끼야'라는 호통을 들은 적이 있다"는 C기자는 "이제는 선배의 입장에서 일을 못하거나 의욕이 없는 수습 기자에겐 내가 생각해도 가혹하다고 생각될 만큼의 지적을 한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수습 기자에게 '너는 이러이러하니까 기자 일이 맞지 않다, 하기 싫으면 나가라'는 식의 지적을 종종 한다는 것. C기자는 "자극이 되라는 의미도 있고, 한편으로는 그것이 진실이기도 하다"며 "그러나 자극을 받고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기자, 특히 사회부 기자라면 영업직처럼 누구에게나 말을 붙이고 원하는 정보를 얻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성격' '근성' '호기심'이 중요하다는 것이 C 기자의 생각이다. 따라서 냉정해보일지도 모르나 선배의 '지적'을 견뎌 내지 못하고 자신의 성격과도 맞지 않으면 차라리 그만두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수습 기자들을 '경찰 기자'부터 시키는 것도 훈련 과정으로서 성과가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며 "다만 기술적인 면에서 수면시간을 보장해준다든지 하는 개선의 여지는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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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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