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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국회에 '조약(협정)의 체결ㆍ비준에 대한 동의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회는 1차 본 협상은 말할 것도 없고 2차 본 협상에 이르기까지 한미FTA에 대해 거의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뒤늦게 지난 6월말 한미FTA특위 구성 결의안이 통과됐으나, 오히려 비판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오마이뉴스>는 국회 특위 위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한미FTA에 대한 입장 및 인식수준을 알아보았다. <편집자주>
ⓒ 오마이뉴스 고정미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협상 문제를 국회 차원에서 다룰 '한미FTA 특별위원회'가 특위구성 결의안이 통과된 지 한 달 가까이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한미FTA 국회특위의 활동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회특위는 정부가 졸속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여론이 광범위하게 퍼진 상황에서 이를 제어하고 보완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적 효력 기구이기 때문이다.

실제 '국회특위 구성결의안'을 살펴보면 '한미FTA 국회특위는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협정체결과 관련한 각 분야별 보완 또는 지원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구성'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2차 본협상이 끝날 때까지 국회는 특위구성조차 실패했다. 국회의 역할은 여전히 전무한 셈이다.

<오마이뉴스>는 한미FTA 국회특위 위원들의 한미FTA에 대한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특위 위원 20명(열린우리당 10명, 한나라당 8명, 민주노동당 1명, 민주당 1명) 전원을 대상으로 지난 21일부터 25일까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문항 선정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이해영 한신대 교수, 송기호 변호사(통상법 전문),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이 참여했다. 재보선 지원유세, 외유, 지역구 수해복구 현장 방문 등의 이유로 10명의 의원만이 설문에 참여했다.

열린우리당 소속 위원 83% "4대 선결조건 문제있다"

ⓒ 오마이뉴스 고정미
특위 위원들은 여야를 떠나 한미FTA 추진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 대해 공감했다. 의원들은 '한미FTA 협상 전에 쇠고기 재수입 결정, 스크린쿼터 축소 등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을 수용한 것이 문제가 있느냐'는 질문에 8명이 "대체로 문제가 있다", 1명이 "매우 문제가 있다"고 답해 문제가 있다는 응답은 모두 9명(90%)에 달했다. "별로 문제가 없다"는 응답은 1명에 불과했다.

특히 설문에 응한 열린우리당 위원 6명 가운데 5명(83%)이 "문제가 있다"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국정홍보처나 외교통상부에선 4대 선결조건을 약속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번 설문을 통해 여권 내에서조차 정부의 '4대 선결조건' 수용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결과는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4대 선결조건이란 해석을 수용하겠다"고 밝힌 것과 맞물려 협상단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을 것으로 보인다. 또 이는 곧 국회특위에서 풀어야 할 숙제와도 연관이 깊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전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선결조건 수용'과 같은 의혹을 먼저 밝히는 것이 국회특위에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특위 위원들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한 목소리로 정부를 질타했다. '미국과의 협상에 앞서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에 소홀했느냐'는 물음에 5명이 "대체로 그렇다", 4명이 "매우 그렇다"고 답해 전체의 90%가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소홀했다는 의견을 보였다.

10명 중 9명 "국민적 공감대 형성 못했다"

ⓒ 오마이뉴스 고정미
이 같은 조사 결과는 일반인들의 여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KDI와 <중앙일보>가 이달 초 수도권대학 대학원생 17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98.9%가 '미국과의 협상에 앞서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에 소홀했다"고 답했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위험이 큰 수술을 할 때는 반드시 이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가족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국가의 장래를 가를 중차대한 협상을 진행하면서 정부는 국민들의 의견조차 귀담아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위 위원들은 협상 추진방식의 문제로 꼽히는 '협상전 분과별 협상내용이 국회에 충분히 보고됐느냐'는 질문에 10명 모두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이는 곧 국회의 '직무유기'와도 관련이 깊다. 1, 2차 협상이 지나는 동안 국회에서 한 일이란 '한미FTA 국회특위 구성결의안'을 작성한 것뿐이라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정부는 한미FTA 협상의 가장 긍정적인 효과로 '고용 창출'과 '양극화 해소'를 꼽았으나 특위 위원들은 대체로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한미FTA 체결 이후 소득 양극화가 심화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5명이 "대체로 그렇다"고 답해 양극화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고용이 감소할 것이다'는 의견도 절반에 가까운 4명에 달했다.

10명 중 7명 "피해농민 보상방안 논의 안됐다"

ⓒ 오마이뉴스 고정미
특위 위원들은 한미FTA 체결 이후 피해를 보는 분야가 분명한데도 이에 대한 대비책이 소홀하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 했다. '구체적으로 어느 분야에서 피해가 심할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10명 모두 "농업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다"고 답했다. 이들 가운데 7명은 "피해 당사자들을 위한 공식적인 의견 수렴 창구가 없다"고 답해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에 대한 보상 방안이 논의되지 않고 있는 점을 우려했다.

졸속협상에 대한 우려도 높았다. '한미FTA 협상 및 체결은 가급적 빨리 진행하는 것이 좋은가'라는 물음에 과반수가 넘는 6명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이종구 한나라당 의원은 "한미FTA 체결은 전체 국익을 위해 필요하지만 지금처럼 단기간에 성과를 보려 해서는 안된다"며 정부의 졸속협상을 질타했다.

그러나 특위 위원들 대다수는 FTA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 의견을 보였다. "한미FTA 체결 이후 국내 일부산업에는 피해가 있으나 전체 국익에는 도움이 된다"고 답한 의원이 9명에 달해 대다수가 한미FTA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혔다. KDI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37.6%에 그쳐 특위 위원과 일반인들 간 인식의 차이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생각만 있고 구체적 행동없는 국회' 특위구성 뒷전

ⓒ 오마이뉴스 고정미
'구체적으로 어느 부문에서 도움이 되느냐'(복수응답)는 물음에 "우리의 대외신인도가 올라갈 것이다"(9명), "서비스 산업의 전반적인 경쟁력이 궁극적으로 향상될 것이다"(8명), "경제 및 사회 전반의 제도, 관행이 선진화할 것이다"(7명) 순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특위 위원들 대부분은 정부의 협상추진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특위 구성이 늦어지면서 '생각은 있되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상황이다. 1, 2차 협상이 끝났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제라도 국회특위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현재 '국회특위 구성결의안'이 명시하고 있는 것은 '위원수 20인'과 '활동기한 2007년 6월 30일까지' 단 두가지뿐이다. 이는 한미FTA를 바라보는 국회의 인식수준을 잘 드러내준다.

권영길 의원은 "한미FTA 협상은 사실상 국운이 걸린 총성없는 통상전쟁인 만큼 국회의원 전원이 특위에 참석해도 부족할 것이 없다"며 "국회특위가 균형있고 책임있는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에 걸맞는 규모로 재구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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