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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이 확장공사 중인 파주 스토리사격장 내 신라 경순왕 직계 후손 묘소 등 문화재가 있는 것이 확인된 가운데, 국방부가 토지 수용 과정에서 자국민과 체결한 '지상권'을 이용, 주한미군에게는 사실상 면책특권을 준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될 전망이다.

국방부는 지난 73년 스토리사격장 부지를 주한미군에 공여하면서 지역주민들에게 토지매입 내지 강제수용조차 하지 않았다가 이 문제가 여론화된 2002년경에야 토지 수용 절차를 밟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뒤늦게 사격장 내 묘소 등에 대해 토지 매입후 이장 조치를 하기도 했으나 '지상권'을 설정한 묘소의 경우 한미SOFA 규정상 보호 받기가 어려워 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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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사격장서 신라 경순왕 후손 묘 확인


▲ 원주 김씨 종친회 김장성 부회장
ⓒ 박신용철
'스토리사격장 내 경순왕의 후손 묘'를 관리하고 있는 김장성(원주 김씨 28대손, 68. 서초구 반포동)씨를 서울시 양천구 신정동에 위치한 원주 김씨 종친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원주 김씨 종친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기자가 방문했을 때만 해도 사격장 확장 공사 완료 이후에도 조상의 분묘가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기자는 그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국방부가 스토리사격장 토지수용을 하면서 벌인 또 다른 문제점을 확인했다. 그것은 국방부와 체결된 '지상권' 설정 문제였다.

지상권이란 '건물 기타 공작물(지상 및 지하공작물)이나 수목(식림의 대상이 되는 식물)을 소유하기 위하여 타인의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물권(物權)'을 말한다. 소유자가 토지 등을 팔지 않고 일정기간 사용료를 받고 빌려주는 것으로, 당사자간의 계약에 의해 설정되며 토지사용의 대가인 지료는 지상권의 요소는 아니지만 그 약정을 등기하면 물권적 효력이 발생한다.

원주 김씨 종친회에 따르면 국방부에서 스토리사격장 확장공사를 하기 전인 2002년경 영농인들에게 토지 수용을 공고하는 과정에서 신라 경순왕 직계 후손의 묘소도 포함되었는데 종친회측은 여러 차례에 걸친 국방부의 토지매매 압력에도 "조상의 묘를 팔 수가 없다"고 버텼다. 그런데도 국방부가 주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수용'하려 하자 종친회측은 "폭격이 없는 때에 조상의 묘를 찾아가 벌초도 하며 관리만 할 수 있게 해달라"며 지상권 설정을 요청했다.

"산소에 대한 지상권 설정만 했지 내주지는 않았어. 30년동안 군부대에서 사용한다는 것이지 판다는 게 아니었어. 강제수용 통지를 해와서 조상의 묘를 돈을 받고 팔 수는 없고 산소를 보호해야 하니 지상권을 설정해 보호해달라고 한 거지."

"이장은 못해. 이장할 거였으면 보상이 들어올 때 했지. 옛날부터 내려오는 산소인데 그러면 안되지. 영구히 보존해서 후손들에 물려주도록 해야지."

김장성씨의 말은 당시 국방부가 토지수용 조건으로 제시한 6억9천만원의 보상비를 거부하며 굳이 '지상권'이라도 설정하려 한 속내를 말해주고 있다.

▲ 25사단 스토리매수팀에서 공고했다는 이장통보문
ⓒ 박신용철
더 큰 문제점은 국방부가 지난해 8월 22일∼9월 16일까지 스토리사격장 내 분묘 이장신청을 받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주한 미군에 공여된 스토리사격장내 편입된 분묘에 대하여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8조·제23조 및 동법 시행규칙 제2조·제14조의 규정에 의거 이장신청 분묘에 대하여 이장하고자 하오니…신고가 없는 분묘에 대하여는 이장을 원치 않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장 신청 분묘에 한하여 관련 절차에 의거 이행할 것을 알려드립니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는 '지상권'을 설정한 분묘에 대해서도 이장공고를 했으며 '이장 신고를 하지 않으면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 관련 절차에 따라 이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장성씨에게 스토리사격장으로 들어가는 리비교(일면 북진교)를 관리하는 25사단 초소에서 가지고 온 이장 공고문을 보여주며 통보 여부를 재차 묻자 파평군 초리 산213번지가 조상의 묘역임을 확인하고 "이런 통보문은 받지 못했어. 분명히 이전에 보존해 주었다고 했어"라고 말했다.

▲ 확인결과, 스토리사격장내 경순왕 직계후손의 무덤 이외에도 고분으로 추정되는 곳에 '지상권'이 설정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 박신용철
등기부 등본 확인 결과, 원주 김씨 종친회의 땅은 2002년 8월 1일부터 만 30년간 '벽돌조 건물 및 수목의 소유'를 목적으로 지상권이 설정되어 있다. 당시 국방부는 사격장 내(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초리·용산리·하포리·서곡리/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반정리 일대) 총 91기 분묘 이장을 공고했다.

이들 대상 분묘 일부에 대한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눈에 띄는 사실을 발견했다. '경주이씨 통덕랑공파 삼일종회' 소유 분묘(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산1번지/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용산리 산66번지)도 1998년 2월 6일부터 만 30년간 '벽돌조 건물 및 수목의 소유'를 목적으로 지상권이 설정되어 있으며, '이천 서씨 현조참판 연공파 종문회' 소유 분묘(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초리 산21번지)도 1998년 9월 30일부터 만 30년간 '벽돌조 건물 및 임야의 소유'를 목적으로 지상권이 설정되어 있다.

논란의 핵심은 국방부와 지역주민간에 '지상권'을 설정했다 하더라도 스토리사격장은 미군전용으로 한미SOFA협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법은 무용지물이 된다는데 있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지상권을 설정할 당시 지역주민들에게 이런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고 지상권 설정에 따른 사용료도 지불한 적이 없다.

한미SOFA협정 제4조(시설과 구역- 시설의 반환)에는 '합중국 정부는 본 협정의 종료시나 그 이전에 대한민국 정부에 시설과 구역을 반환할 때에, 이들 시설과 구역이 합중국 군대에 제공되었던 당시의 상태로 동 시설과 구역을 원상 복구하여야 할 의무를 지지 않으며, 또한 이러한 원상복구 대신 대한민국정부에 보상하여야 할 의무도 지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에 국방부 관계자는 "주민들과 협의서대로 시행이 되었다"며 "지상권 자체가 보호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소유자의 요청이 있으면 이장, 보장도 해주는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그에게 '73년도에 주한미군에게 공여된 토지 등에 대해 국방부가 지상권을 설정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 아닌가?'를 묻자 "(사실) 확인이 어려울 것 같다. 관련 부서가 정확히 없어서 확인이 안된다"면서 "답을 정확히 해주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또 "스토리사격장 관련 업무를 하기가 어렵다. 국방부 관련 부서 대여섯 곳에 가서 확인해도 나오지 않는 내용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주한미8군 공보과 관계자는 "지역민들이 불법영농을 한 것이지 스토리사격장을 확장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답변을 회피했다.

김판태 불평등한소파개정국민행동 국장은 "(주한미군과 국방부는) 한국법을 지켜야 한다"면서 "지상권을 설정한다는 것은 종친회 땅에 대한 사용권을 준 것이지 문화재가 되는 것을 파괴해도 좋다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고 비난했다.

김 국장은 "종친회 등에서 관련법 근거로 지상권에 대한 일정한 제한을 할 수 있도록 법률적 권리확보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권리확보를 위한 사전적인 법적 조치 이외에도 이후에 파괴가 있을 때에 법적 권리를 찾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한미SOFA 4조에 따르면 주한미군이) 공여지를 맘대로 사용할 수 있고 원상 회복할 의무도 없게 돼 있지만, 한국법을 준수한다는 전제 위에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재환(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도 "공여는 한국정부가 공여권리를 취득해서 하게 되어있다"며 "스토리사격장은 무권리자인 정부가 불법행위를 저질러 미군에게 공여한 것으로 수십년간 사용해오다 최근 문제가 되니 지상권을 설정해 공여 권리를 획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 변호사에게 '2006년 스토리사격장 완공 이후 폭격으로 인해 분묘가 사라지는 경우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질의하자 "당연히 주한미군이 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방부의 책임회피 속에서 원주 김씨 종친회 김장성 부회장은 "스토리사격장 내에서 원주 김씨 직계 고분 이외에도 30여기의 묘소를 직접 확인했다"고 말해 스토리사격장에 대한 전면적인 문화재 재조사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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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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