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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한국인 23명 가운데 인솔자 격인 배형규 목사가 희생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상당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정부는 배 목사의 사망이 공식 확인된 직후인 26일 오전 5시부터 청와대에서 안보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아프간 현지에 고위급 대통령 특사를 파견키로 방침을 정했다. 이어 특사로는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이 결정됐다고 천호선 대변인이 발표했다.

대통령 특사 파견에 담긴 뜻

천 대변인은 특사의 역할과 관련 "사안의 성격과 중요성을 감안해 대통령을 직접 보좌하는 안보실장을 파견하는 것"이라며 "안보실장은 한-아프간 정상간 협의내용을 잘 알고 있으며 아프간 정부와 포괄적으로 협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프간 현지에는 현재 조중표 외교통상부 제1차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협상대책반이 파견돼 있다. 대책반은 아프간 정부의 대책회의와 가즈니주 현지 협상대책회의에 직접 참여해 아프간 정부와 협상대책을 조율해왔다.

그럼에도 더 고위층인 청와대 안보실장을 파견하는 것은 탈레반 측의 '수감자 석방' 요구 등 아프간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부분에서 한국정부의 의사를 보다 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외교통상부 주도의 협상 전략이 일단 실패로 귀결된 만큼 이후 아프간 정부와의 협력은 청와대가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정부로서는 피랍자 중에서 결국 희생자가 나온 상황에서 지금까지와 똑같은 대응 방식을 답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인을 납치한 무장세력이 언제든지 인질을 해칠 수 있는 잔인무도한 집단이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두 갈래 길- '강공'이냐 더 이상의 희생 막기 위한 '협상'이냐

길은 두 갈래다. 어차피 인질들을 순순히 풀어줄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협상의 실효성이 의심스럽다고 판단되면 군사작전 등을 병행, 강한 압박으로 나가는 방법이 있다. 반대로 추가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협상조건을 빠르게 좁혀 한 명의 인질이라도 더 구해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백종천 실장은 이날 안보정책조정회의가 끝난 뒤 발표한 성명에서 "납치단체가 우리 국민을 희생시킨 데 대한 모든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 둔다"며 "무고한 민간인을 해치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 될 수 없으며, 우리는 그와 같은 비인도적인 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납치단체에게 처음으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사건 발생 뒤 줄곧 '협상의지'를 강조하는 메시지만 발표해왔던 것과 비교하면 모종의 입장 변화가 감지되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지금 정부가 자세를 180도 바꿔 '강공'으로 나갈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상황이 아직 유동적이고, 협상을 통한 해결의 길이 완전히 닫혔다고 판단하기는 이르기 때문이다. 천호선 대변인은 '군사작전이 검토되고 있다'는 외신보도에 대한 확인을 요구 받고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잘라 말했다.

아프간 정부 본격 '설득' 시점?

결국 정부는 희생자가 나온 데 대한 '분노'와 함께 강경 방침으로 선회할 가능성을 언급, 납치세력을 압박하면서도 동시에 조속한 협상타결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천 대변인이 이날 "백종천 실장은 협상을 지휘하러 가는 협상특사가 아니라 아프간 정부와의 협력을 위한 특사"라고 설명한 것은 그런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이제부터는 탈레반 무장세력과의 협상대책도 중요하지만, 무장세력이 제시하는 석방조건에 대해 아프간 정부가 성의를 보이도록 본격적으로 '설득'할 시점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배형규 목사의 희생이 협상 결렬의 서곡이 될지, 아니면 본격적인 협상의 출발점이 될지는 백종천 특사가 현지에 도착하면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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