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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맞춤법이 어렵다는 사람이 제법 많다. 고등학교에서 우리말 문법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말 맞춤법이 어렵다는 사람이 제법 많다. 고등학교에서 우리말 문법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 이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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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과 수업을 할 때면 으레 "우리말에 불규칙 동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라고 묻곤 했다. 학생들 대다수가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퇴직한 다음, 주위 사람들에게 똑같이 물어보았더니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다.

영어에 불규칙 동사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는데 우리말에 불규칙 동사가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었다.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 우리말 문법을 가르칠 과목이 개설되어 있기는 하나, 그 과목이 선택 과목인지라 그 과목을 수강하지 않으면 우리말 문법을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어 생기는 일인 듯하다.

우리말에는 '불규칙 용언'이 있다. 형용사와 동사를 아울러 용언이라고 부른다. 우리말에서 규칙 용언과 불규칙 용언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용언을 활용할 때, 어간 또는 어미가 변하지 않으면 규칙 용언, 변하면 불규칙 용언이다. 

용어를 개념 정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깨끗하다'라는 단어에서 '-다'를 제외한 '깨끗하-'가 어간, '-다'가 어미이다. 마찬가지로 '맑다'라는 단어에서는 '맑-'이 어간, '-다'가 어미이다. 용언의 어간에 다양한 어미를 붙이는 일을 '활용'이라고 한다. 즉 '깨끗하다'를 활용하려면 '깨끗하고, 깨끗하니, 깨끗하면, 깨끗한데'와 같이 '깨끗하-'라는 어간에 여러 가지 어미를 붙이면 된다.

불규칙 용언의 활용 양상을 잘 알아 두면 헷갈리는 단어를 맞춤법에 딱 들어맞게 쓸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글을 쓰다 보면 '가까와'가 맞는지 '가까워'가 맞는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단어들의 기본형은 '가깝다'인데 '가깝다'는 'ㅂ' 불규칙 용언이다. 또 다른 예로 '곱다', '맵다', '아름답다' 등을 들 수 있다.

이 단어들이 어미 '-아/-어'와 결합하는 양상을 살펴보자. 한글맞춤법 제16항에 '어간의 끝 음절 모음이 'ㅏ, ㅗ'일 적에는 어미를 '-아'로 적고, 그 밖의 모음일 적에는 '-어'로 적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ㅂ'을 어간의 끝 음으로 가지고 있는 단어 중, 뒤에 양성 모음이 오면 'ㅂ'이 '오'로, 음성 모음이 오면 'ㅂ'이 '우'로 바뀌는 용언을 'ㅂ' 불규칙 용언이라고 한다. 

'곱다'의 경우, 한글맞춤법 제16항 규정에 따라, 어간 끝 음절 모음이 'ㅗ'이므로 어미 '-아/-어' 중, '-아'로 적어야 한다. 즉 '곱아'의 형태가 된다. 그런데 '곱다'는 불규칙 용언이다. 그러므로 '곱아'의 'ㅂ'이 '-아'라는 양성 모음 앞에서 '오'로 바뀐다. 즉 '고오아'의 형태가 되었다가, '오아'가 축약되어 최종적으로 '고와'의 형태로 문장 속에서 쓰이게 된다. '맵다'의 경우는 제16항 규정에 따라, '맵어'--> '매우어'--> '매워'의 과정을 거쳐 문장 속에서 쓰이게 된다.

그런데 'ㅂ' 불규칙 용언의 경우에 있어서는 주의할 점이 하나 더 있다. 'ㅂ' 불규칙 용언의 어간이 2음절 이상일 경우에는 무조건 '-어'로 적는다는 사실이다. '아름답다'가 여기에 해당한다. 즉 '아름답어' --> '아름다우어' --> '아름다워'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가깝다'의 경우도 어간이 2음절 이상인 'ㅂ' 불규칙 용언이므로 어미 '-아/-어' 중 '-어'로 적게 된다. 즉 '가깝어' --> '가까우어' --> '가까워'의 과정을 거쳐 문장 속에서 쓰이는 것이다. 그래서 '가까와'가 아니라 '가까워'가 맞춤법에 맞는 표기이다. 

무언가 매우 복잡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터이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이런 수업을 하면, "와 우리말 문법 너무 어려워요.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문법 규정을 잘 몰라도 우리가 언어생활을 하는 데 크게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우리가 문법을 먼저 만들어 놓고 문법에 맞게 언어생활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양상을 잘 살펴보고 그것을 규칙화해 놓은 것이 문법이다. 문법이 먼저 생기고 말이 나중에 생긴 게 아니니, 일반적인 한국어 화자라면 문법이 너무 복잡하다고 푸념할 일은 아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양상이 하도 복잡하니, 그 복잡한 것을 글로 정리하려면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ㅂ' 불규칙 용언 뒤에 관형사형 어미 '-은'이 결합하는 양상을 살펴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관형사형 어미 '-은'은  용언에 결합하여, 그 용언이 뒤에 오는 명사를 꾸밀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밝다'라는 용언이 '집'이라는 명사를 꾸미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밝다 집'이라는 표현은 우리말에 없다. 용언의 기본형이 곧바로 명사를 꾸미는 경우는 우리말 표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의 자리에 관형사형 어미 '-은'을 결합하여 '밝은 집'이라고 표현한다. 

자, 그럼 '아름답다'라는 용언으로 '사람'이라는 명사를 꾸미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우리말 문법을 단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일곱 살배기 아이도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좁다' 뒤에 '문'이 오면 '좁은 문'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아름답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 텐데, 어찌 된 일일까?

'좁다'는 규칙 용언이고 '아름답다'는 'ㅂ' 불규칙 용언이기 때문에 그렇다. 'ㅂ' 불규칙 용언은 뒤에 양성 모음이 결합하면 'ㅂ'이 '오'로, 음성 모음이 결합하면 'ㅂ'이 '우' 변하는 용언이다. 그래서 '아름답은' --> '아름다우은' --> '아름다운'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가깝다', '맵다', '춥다' 등은 불규칙 용언이고 '잡다', '굽다', '뽑다' 등은 규칙 용언이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 '매운 갈비', '추운 계절', '잡은 고기', '굽은 허리', '뽑은 칼' 등의 표현이 나타나게 된다. 한 가지 더. '허리가 굽다'의 '굽다'는 규칙 용언이고, '고기를 굽다'의 '굽다'는 불규칙 용언이다. 그러므로 '굽은 고기'가 아니라 '구운 고기'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다시 한번 강조해서 이야기하면, 이 단어는 규칙 용언이고 저 단어는 불규칙 용언이라고 누군가 먼저 정한 게 아니다. 사람들이 어떤 단어는 어떤 경우에도 원형을 변형시키지 않고 말하고, 다른 단어는 어떤 경우에 원형을 변형시켜 말하는 현상을 토대로 학자들이 규칙화한 것이 문법이다. 문법이 먼저가 아니라 말이 먼저다.

우리말을 제대로 말하고 쓰는 데 최소한의 우리말 문법 지식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려면 고등학교에서 체계적인 우리말 문법 교육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고등학생 모두가 우리말 문법을 최소 한 학기라도 공부할 수 있다면 지금 인터넷에 난무하고 있는 얼토당토않은 우리말 표현들은 자취를 감추지 않겠는가. 그 어느 누구도 우리말 문법 교육의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 매우 안타깝다. 말이 그 나라의 정체성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태그:#우리말, #맞춤법, #문법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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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교사로 재직 중. 2년을 제외하고 고등학교에서 근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몹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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