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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종로는 좁고 오래된 골목이 문화유산 그 자체인 동네다. 4대 궁궐 외에도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 송강 정철과 겸재 정선의 생가터, 관청의 옛터, 궁녀들이 빨래를 하던 빨래터, 유관순이 빨래를 했다는 우물터, 윤동주 시인이 하숙을 하던 집이 아무렇지 않게 슥슥 나타나는 이곳을 나는 오래 전부터 좋아했다.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숨결에 북악산과 인왕산, 북한산의 변함없는 호쾌한 기운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취향저격'이다. 그렇기에 드디어 종로주민이 되었을 때의 감회는 남달랐다.

현재 거주 중인 곳은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의 배경이 되었던 계곡과 가까워 집에 도착하기까지는 좁은 골목을 지나 흡사 작은 등산과 같은 언덕 오르기가 필수코스다. 이 좁은 골목을 마을버스와 자동차, 택시, 택배트럭 등의 차량과 보행자, 그리고 아주 가끔 보이는 자전거 이용자들이 공유하고 있다. 이 동네에 처음 들어오는 택시기사님들은 놀라움과 경악을 섞어 말씀하시곤 한다.

"아니, 인도가 따로 없네요?!" 
"그래도 서로 양보하면서 큰 불편함 없이 살아요."


동네주민으로서, 종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좁은 골목을 옹호하고 만다. 그렇지만 사실 통행이 불편하긴 하다. 보행자 입장에서도, 운전자 입장에서도 말이다. 특히 아이와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는 양쪽으로 오가는 차량을 경계하며 이동 내내 아이를 단속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운전자로서는 산재한 보행자들과 마주 오는 차량을 피하기 위해 신경을 늘 곤두세워야 한다.  

그렇지만 좁은 골목을 터전으로 삼고 있기에 불편함은 어느덧 익숙해졌고, 그것을 감수하는 일은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따뜻해진 날씨에 많은 등산객과 이곳의 문화를 즐기러 온 방문객들, 그리고 주민들과 차량들이 뒤섞여 그야말로 골목이 포화상태였던 어느 주말. 우리도 날씨를 만끽하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외출 중이었다. 창밖을 내다보던 아이가 말했다.

"사람이랑 자동차랑 같은 길로 다니네?"

아이의 질문을 듣는 순간 아이가 서울과 얼마 전 다녀온 암스테르담의 거리풍경을 비교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렇지? 네덜란드에서는 사람이 다니는 길, 자전거가 길,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따로 있었잖아. 서울에서는 다 같은 길로 다니지?"
"응, 그리고 자전거도 별로 없어."
"맞아. 네덜란드에서는 자전거가 엄청 많았잖아. "
"왜 그런 거야?"
"음. 서울에는 작고 큰 언덕이 많아서 자전거로 언덕을 오르내리려면 힘이 많이 들어. 네덜란드에서는 어땠지?"
"안 그랬지."
"맞아, 네덜란드는 평평했지. 그래서 자전거들이 다니기 쉬워서 많은 거야."


여기까지만 말하고서는 조금 생각 후 나머지 답도 같이 얘기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아이는 유치원에서 배웠는지 '쓰레기를 버리면 지구가 아프다'는 말을 종종 하던 터였다.

"그리고 자동차가 다닐 때엔 나쁜 가스가 많이 나오는데 자전거에서는 그런 게 안 나와. 자전거를 많이 타면 지구가 아프지 않거든. 그래서 아마 네덜란드에서는 자전거를 많이 탈 거야."

내 말을 들은 아이는 생각에 잠기는 듯 보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목격했던 자전거 부대를 떠올리는 중이었을까.

아이와 네덜란드로 떠나기 전에 미리 검색해본 정보에 따르면 네덜란드 도로에서 우선순위는 자전거>보행자>자동차일 정도로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많은 편의가 보장된다고 했다. 자전거 도로로 다니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후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운하와 자전거. 암스테르담의 인상으로 남았다.
▲ 암스테르담 풍경 운하와 자전거. 암스테르담의 인상으로 남았다.
ⓒ 아멜리에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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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암스테르담은 자전거 천국이었다. 여러 의미로 그러했는데, 일단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보행자보다 많게 느껴질 정도였고, 자전거 도로가 아주 잘 갖춰져 있으며 그 도로의 폭은 인도보다 보통 넓었다. 또한 유아차를 끌고 다니며 느낀 사실인데, 보도블럭의 턱이 낮아 유아차 뿐만 아니라 자전거, 휠체어 등이 부드럽게 이동하는 게 가능했다.

우리나라에서처럼 자전거 도로를 인도처럼 여겨 보행하다가는 욕을 먹는 것은 둘째치고 일단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인도로 다니고 있는지 단단히 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처럼 산책용 혹은 취미용 자전거 타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의 자전거는 이동수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서 우리나라의 자전거보다 훨씬 목적지향적이다.

암스테르담의 교통요금은 서울에 비해 높아서 자전거를 이용하도록 만드는 유인으로 작동하고, 도시는 서울의 3분의 1크기라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거나 통학하는 일이 실질적으로 가능하다. 시간 내에 도착해야 하는 목적을 가진 자전거들이 쌩쌩 달린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던 자전거보다 높이도 바퀴도 훨씬 크다. 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자전거 도로와 인도의 구분은 필수인 것이다. 

자전거를 타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아이를 앞이나 뒤에 태우고 달리는 자전거, 일행과 대화하며 나란히 달리는 자전거, 한 손 운전은 기본이고 두 손을 놓고 달리는 사람도 심심찮게 있다. 비가 와도 달린다. 한 두 해 단련한 솜씨가 아니다. 분명 소싯적부터 자전거 타기를 생활화한 결과일 것이다. 집집마다 문 앞에 자전거들이 주차되어 있고 도시 곳곳에 자전거가 무더기로 주차되어 있는 광경도 쉽게 볼 수 있다. 운하보트투어의 진행자가 말하길 자전거를 도둑맞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고 한다.
 
집집마다 문 앞에 자전거가 즐비하다.
▲ 아마도 1인 1자전거 집집마다 문 앞에 자전거가 즐비하다.
ⓒ 아멜리에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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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들으니 나의 첫 자전거가 생각난다. 11살이었고 태어나고 자란 서울을 떠나 아빠의 직장이 위치한 지방의 소도시에 막 이사왔던 참이었다. 이사를 간 집은 가장 높은 층이 5층인 아담한 아파트였다. 우리는 그곳에 약 1년간 머물렀다.

그곳에서 아빠는 내게 초록색 두발 자전거를 사주었고 타는 법을 알려주었다. 한 방향으로 넘어질 것 같으면 반대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같은 방향으로 핸들을 돌려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배운 것도 그 때였다. 두발 자전거 타기에 성공하면서부터는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쏘다녔다. 두발 자전거 위에서 처음으로 안정감을 느꼈을 때의 성취감이란! 두발자전거는 걷는 인간이었던 나를 처음으로 달리는 인간으로 변신시켰다. 공중에 떠 있는 페달을 밟는 느낌, 온 몸에 쏟아지는 바람,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은 두발 자전거를 타기 전에는 모르던 새로운 감각이었다.

자전거와 함께 했던 그 1년을 찬란했던 유소년 시절로 기억하고 있다.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거나 동네 놀이터로 향했고 그곳엔 약속하지 않아도 늘 아이들이 있었다. 모래로 밥과 국을 짓고 술래잡기를 하고 뛰어 놀다 보면 금세 해가 졌다. 

OECD 가입 서구국가들 중 아동청소년 행복지수 1위, 자전거의 천국 네덜란드. 자연스럽게 자전거와 행복의 관계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 자전거를 이동수단으로 삼을 수 있을 정도의 도시 규모
- 더 많은 신체활동과 더 많은 야외활동
- 속도나 효율보다는 다른 가치의 추구

이런 요소들이 행복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학교에서 학원으로, 폐쇄된 공간에서 폐쇄된 공간으로 옮겨 다니는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보다 바깥에서 충분히 뛰어노는 아이들이 행복할 것임은 자명해 보인다. 내가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게재 예정 @ameliechoi


태그:#암스테르담, #네덜란드, #아이친화도시, #자전거친화도시,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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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다닌 지 10년, 아이를 키운 지는 3년이 되었고요,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와 더불어 살기 좋은 세상에 대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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