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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기자가 신희철씨의 집에 머물면서 직접 환자를 간병하며 겪은 과정을 기록한 르포르타주 세 번째 이야기이다...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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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환자 간병기①] 치매를 '노망'이라 부르지 말라

▲ 아침 식사를 마친 식탁 위. 신희철씨의 아침은 여러 가지 일로 늘 분주하다.
ⓒ 심은식
늘 그렇지만 아침마다 신희철씨는 몹시 바쁘다. 식사 준비와 할머니 샤워 시켜드리기, 업무일정 챙기기 등등. 식탁에서도, 욕실에서도 전화벨이 계속 울려댄다.

옆에서 거든다고 거들지만 목욕 등은 남자인 내가 도움이 되지 못하는지라 마침 짬을 내 사진을 찍고 기사를 위한 메모를 한다.

"틀니 뺀 할머니 모습 너무 예뻐요"

잠시 후 할머니를 씻겨드리고 나온 신희철씨가 오늘은 어쩐 일인지 조심스럽게 따로 사진을 한 장 찍어줄 수 있는지 묻는다. 무슨 사진이냐고 물었더니 틀니를 뺀 할머니의 모습이 너무 예쁘다며 꼭 찍어두고 싶다는 거였다.

예전에는 당신 어머니 틀니가 창피하고 보기 싫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오히려 틀니가 어머니에게 음식을 골고루 드실 수 있게 도와준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고 한다.

▲ 틀니를 빼고 활짝 웃는 할머니의 모습이 이제 막 이가 나기 시작한 아이처럼 귀여웠다.
ⓒ 심은식
신희철씨가 출근한 뒤 할머니를 모시고 한 번 더 화장실에 다녀왔다. 정해진 시간 주기에 맞춰 화장실을 다녀오지만 어떤 행동이나 상황이 변할 때 화장실을 이용하면 거부감을 더 적게 느끼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들어가신지 한참 지나도 할머니께서 통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화장실에서 쓰러지신 적이 있다는 말이 떠오르며 불쑥 걱정이 되었다. 문틈으로 살며시 안을 들여다보니 할머니는 지난밤처럼 칫솔로 머리를 빗고 계셨다.

"와, 우리 할머니 머리 빗으시니까 정말 고우시다!"

칭찬을 해드리자 할머니는 수줍어 하시면서도 얼굴이 활짝 펴진다. 노인분들도 자신을 가꾸고 싶어 하시고 이 때 외모에 대해 칭찬을 해드리면 상당히 좋아하신다. 이런 칭찬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며 환자의 기분을 밝고 즐겁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 칫솔로 머리를 곱게 빗고 계신 할머니. 치매 환자들의 경우 종종 이런 아이 같은 행동을 하곤 하는데 그렇다고 무시하거나 짜증을 내서는 안 된다. 치매환자는 어린 아이와 마찬가지이다. 신희철씨는 자신의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한다고 화를 내는 사람이 있겠냐고 반문하다.
ⓒ 심은식
50년 전 사진이 보내온 메시지

할머니가 어제 젊은 시절로 돌아갔던 걸 기억한 나는 함께 사진첩을 꺼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못 알아보시는 경우도 있었지만 여러 사진을 보면서 차츰 기억이 돌아오셨는지 할머니는 자식들의 사진, 본인의 사진을 모두 알아보며 무척 흐뭇해 하셨다. 즐거웠던 추억을 자주 상기시키는 것이 좋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 예전 사진들을 보며 즐거워하시는 할머니. 치매환자는 예전의 기억 속에서 있었던 일을 현실로 여기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능한 즐겁고 좋았던 일들을 자꾸 상기시켜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 심은식
사진을 보던 나는 무척 흥미로운 사진을 한 장 발견했다. 처음에는 할머니의 젊은 시절 모습인가 싶었는데 뒷면의 내용으로 보아 예전에 할머니의 동무가 할머니에게 보내온 사진인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이미 50년도 더 된 사진을 보며 어제 일인 것처럼 기뻐하셨다.

▲ 할머니의 동무가 보내온 사진. 뒷면에 '청춘시대 이 때를 놓치지 마시오. 동무에게 사랑이 있음으로 변치 않는 사진을 보내니 반갑게 맞아주기를 바랍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 심은식
사진 뒷면에 적힌, 이때를 놓치지 말라는 말이 마치 부모님과 우리의 관계를 말하는 것과 같아 마음이 숙연해졌다. 아기가 된 부모님이야말로 우리가 사랑으로 반갑게 맞아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왜 사진기를 갖고 싶어 하셨을까?

끝으로 할머니와의 작은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며 이번 기사를 마칠까 한다.

할머니의 모습을 연신 찍다보니 할머니는 내게 그런 사진기가 얼마나 하냐고 물으신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는 종종 내가 사진을 찍을 때마다 값을 물으셨다. 그 때마다 그냥 웃음으로 넘겼는데 무슨 사연이 있나 싶어 왜 그러시냐고 다시 여쭤보았다.

"왜긴, 애들이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으니까 사진으로라도 찍어놓고 보려고 그러지."

▲ 출근하는 신희철씨를 배웅하는 할머니. 잠시 떨어져 있을 뿐인데도 할머니의 뒷모습에서는 간절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 심은식
너무나 뜻밖의 대답과 함께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직 부모가 아니라서 그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는 못하겠지만 보고 싶다는 그 말이 너무나 간절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어버이날에 많은 분들이 선물과 감사의 말들을 전했겠지만 부모님들의 그런 사랑을, 곁에 있어도 삭이지 못하는 그리움을 헤아린 자식들은 몇이나 되었을까.

이번 취재를 하면서, 또 기사를 정리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고민했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일을 단 며칠간의 경험으로 말할 수 있는지, 너무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키고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힘겨움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말이다.

실제로 기사에 포함시키지 않은 몇몇 어려운 상황들과 갈등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 안의 작은 기쁨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아주 작은 기쁨이지만 그것이 위로가 되고 살아가는 힘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끝으로 치매 환자를 둔 모든 가족분들에게 힘내시라는 말과 취재에 협조해 주신 신희철씨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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