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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기자가 신희철씨의 집에 머물면서 직접 환자를 간병하며 겪은 과정을 기록한 르포르타주 두번째 이야기이다...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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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환자 간병기①] 치매를 '노망'이라 부르지 말라


▲ 집으로 가신다며 짐을 싸시는 할머니. 치매환자들은 예전에 살던 곳을 찾아 집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팔찌나 목걸이 등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 심은식
다른 가족들이 집을 비우자 할머니는 잠시 불안한 표정으로 앉아계시더니 곧 집안 정리를 시작하셨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할머니는 짐을 꾸리고 계셨다. 옷이며 수건, 책, 고지서, 리모콘은 물론 간식으로 드린 인절미와 오렌지까지 조심스레 수건에 싸서 짐을 꾸리셨다. 꼼꼼하게 끈으로 묶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그런데 할머니는 어디로 가시려는 걸까?

"할머니 어디 가시려고 이렇게 짐을 싸세요?"
"집에 가야지. 남의 집에 있으면 불안해."

"여기가 할머니 집이잖아요."
"여긴 우리 집이 아니야. 우리 집은 저기 김천이야. 그리고 왜 자꾸 날 할머니라고 불러요?"

순간 나는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났다.

"저기, 그럼 이름이 뭐예요?"
"월금이지 누구긴 누구예요."


열아홉 월금이가 된 할머니

▲ 책상 위의 놓여있는 신희철씨의 중학생 때 사진. 어머니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항상 애쓰는 그녀는 어머니를 간병하는 동안에는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사진 속의 소녀처럼 어려진다고 한다.
ⓒ 심은식
할머니는 예전에 시집오기 전 당신께서 사시던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신 거였다. 그 때 나이는 열아홉 살. 지금 할머니는 열아홉 살의 월금이가 되어계신 거였다.

할머니는 마치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강을 거슬러 올라가듯 과거의 시간으로 회귀 중이셨다. 치매는 노망이나 망령이 아니라 어쩌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다시 거둬들이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신희철씨는 치매를 병으로 인식하고 환자의 고통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다시 아이로 태어난 어머니가 보여주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변화를 알게 되었다고 얘기한다.

짐을 꾸리면서 덜 마른 빨래도 자꾸 걷어다 싸시는 할머니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화분에 물을 주자고 할머니를 설득했다. 집에 가기 전에 화분에 물을 주고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할머니가 물을 주고 계신동안 젖은 빨래를 잽싸게 옮겨 다시 널어놓았다. 그런데 발이 축축하다. 이런! 할머니가 어느 틈엔가 방에서 소변을 보신 거였다. 요실금이 있으셔서 시간에 맞춰 화장실을 모시고 가야했는데 정신이 없다보니 깜박했다.

옷을 갈아 입혀드려야 하는데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할머니가 요지부동이시다. 젖은 옷을 계속 입고 계시면 감기가 들 수도 있고 여기저기 묻을 텐데 큰일이었다.

▲ 손녀가 선물한 예쁜 옷으로 갈아입으신 할머니. 논리적인 설득보다는 감성적인 측면으로 상황을 인식시키는 것이 치매환자를 돌보는데 가장 중요한 요령임을 깨달았다.
ⓒ 심은식
그러나 의외의 원군이 나타났다. 오래간만에 할머니의 큰 따님이 오신 거였다. 할머니가 옷을 안 갈아입으시자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을 바꿔서 하셨다.

"엄마, 지금 입은 옷이 안 예쁘니까 다른 걸로 갈아입자. 응?"

할머니는 잠시 생각을 하시더니 이번에는 순순히 옷을 바꿔 입으셨다.

만일 내가 그런 요령을 모르고 계속 고집을 부렸다면 어땠을까? 아마 걱정은 걱정대로 하고 실랑이를 벌이느라 몹시 지쳐버렸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치매환자를 우리 상태를 기준으로 돌보지 말고 환자 자신이 인식하는 눈높이에 맞춰서 돌보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할머니는 지금 열아홉인데 오줌을 쌌다고 옷을 갈아입자고 하면 거부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이후로 할머니가 몇 번 더 옷을 갈아입어야 할 때마다 예쁜 옷 작전은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손을 잡아드리다

시간 맞춰 화장실로 모셔가고 식사와 약을 챙기다 보니 금방 하루가 갔다. 저녁때가 되자 할머니도 하루종일 움직이셔서 고단하셨는지 자주 침대에 누우셨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일이 십분만 지나면 일어나서 다시 거실로 나오셨다. 혹시 할머니가 혼자 계신 게 싫어서 그런가 싶어 거실에 자리를 깔아드렸다.

잠든 할머니를 보다가 주무시면서 오른손을 심하게 떠시고 그 때마다 깨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손을 잡아드리자 이번에는 두 시간 가까이 푹 주무셨다. 내 손을 꼭 잡은 채 잠든 할머니를 보니 어째서인지 가슴 한구석이 뭉클했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준다는 작은 일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스스로에게도 얼마나 따뜻한 경험인지 알게 되었다.

▲ 할머니와 같이 잠자는 복순이. 할머니는 복순이를 아이로 생각하셔서 자는 동안에는 이불을 덮어주시고 집에 간다고 하실 때는 업혀달라고 하신다.
ⓒ 심은식
오늘도 자정이 넘어 신희철씨가 돌아오고 하루 일과가 끝났다. 다시 집안 정리 등으로 만보걷기를 끝낸 후 할머니와 함께 맥주를 한잔씩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다. 할머니의 개그맨 뺨치는 말솜씨, 간병시의 요령 등 많은 주제들이 오갔다.

얘기를 나누는 내내 신희철씨는 할머니에게 불편하다 싶을 정도로 바짝 붙어 앉아있었는데 처음에는 할머니의 귀가 잘 안 들리시기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대답은 의외였다. 그런 이유뿐만이 아니라 할머니의 허리가 안 좋으시기 때문에 한쪽 무릎으로 등을 받쳐 드리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얼마나 환자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노력과 정성이 치매 5년차인 할머니의 상태를 저렇게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비결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 인간의 힘.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노력이 신희철씨 모녀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 심은식
치매 증상의 경중에 따라 차이가 많을 거란 것을 알기 때문에 언급하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할머니를 돌보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물론 쉽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못 견딜 만큼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치 아이를 돌보는 상황과 비슷했다.

치매환자를 아기라고 생각하면 좀 더 수월하겠다고 여겨졌다. 부모님이 우리가 아기일 때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기저귀를 갈아준 것처럼 말이다. 자신에게 효도할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한다는 신희철씨의 말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오래 생각했다. 인간의 힘은 아마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더 많이 포옹하고 맞장구 쳐줘야
신희철씨가 말하는 치매 부모와 재미있게 사는 법

▲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어머니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는 신희철씨는 그 과정에서 평소 무뚝뚝하던 자신의 성격 또한 밝고 명랑해졌다고 말한다.
ⓒ심은식
치매는 치료가 되는 병이 아니다. 승부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게임과도 같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 할 때 그것이 절망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시각을 달리한다는 것은 변화를 받아들이고 치매를 긍정적으로 대하는 마음자세를 갖는 것을 말한다.

병든 부모를 짐으로 생각하고 고통으로 받아들인다면 가족 모두가 불행해질 뿐이다. 특히 장남이나 며느리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우고 희생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듯 가족구성원 모두가 작은 부분이라도 먼저 나서서 돕고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

치매환자가 비록 어린아이처럼 행동한다고 해도 분명 자존심이 있고 의식이 온전할 때가 있다. 실수를 하거나 돌발적인 행동을 한다고 무시하거나 수치심을 주는 것은 환자의 상태를 더 나쁘게 할 뿐이다. 아무데서나 옷을 갈아입히거나 야단을 치면 환자는 심한 모욕감을 느낀다. 오히려 어른에 대한 예를 갖출 때 환자 자신도 어른으로 행동하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

또한 환자와 가족 모두 심리적 안정감과 애정을 유지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더 많이 포옹하고 더 많이 접촉할수록 좋다. 환자에게도 금지와 부정적인 말보다는 눈높이를 맞춰 맞장구를 쳐주고 달래주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환자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환영, 환청을 느낄 때에도 치매라는 질환의 특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슬픔과 한탄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변화를 인정하고 그에 따라 대처하는 것이 현명하다. / 심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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