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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이 처음으로 펴낸 동시모음으로, 1966년에 아인각에서 나왔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처음으로 펴낸 동시모음으로, 1966년에 아인각에서 나왔습니다. ⓒ 이오덕,이정우
1950년대부터 동시를 써 온 이오덕님은 1966년 <별들의 합창>, 1969년 <탱자나무 울타리>, 1974년 <까만 새>를 펴냅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하면서 살아온 이오덕님은 아이들이 자기 마음과 생각을 시원하게 털어놓는 한편, 아이들답게 맑고 깨끗한 눈으로 세상을 느끼고 바라보도록 하는 '글쓰기 교육'을 1950년대부터 해 왔습니다. 이 일은 자기 자신이 어린이문학을 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겪고 부대낀 대로 글을 쓰듯, 이오덕님 당신도 동시를 쓰고 동화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오덕님은 1974년에 동시모음 <까만 새>를 낸 뒤로 돌아가시는 날까지 동시모음을 내지 않습니다. 1981년에 <개구리 울던 마을>을 펴내기는 했지만, <개구리 울던 마음>은 그동안 쓴 시를 연대에 따라 다시 묶으며 낸 '선집'이지 '시집'이 아니거든요. 1987년에 <종달새 우는 아침>이란 동화책을 펴내기는 했지만, 이 책도 예전에 쓴 동화를 뒤늦게 묶은 책입니다.

이오덕님은 '어린이 글쓰기 교육'과 '자기 자신이 창작할 어린이문학'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함께 하려고 마음먹었고 이를 부지런히 실천해 왔는데, 왜 1970년대 중반부터 시쓰기를 끊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 나라에 참된 어린이문학 '비평'과 '평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문학을 비평하고 평론하는 텃밭도 없었지만 오랜 일제식민지와 독재정권으로 시달리고 짓눌린 교육문제를 바로보는 '교육비평' 또한 없었어요.

그래서 이오덕님은 당신이 참으로 좋아하던 '문학 창작'을 한동안 접기로 다짐합니다. 문학 창작을 할 만한 사람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고, 자기가 문학 창작을 못하더라도 제대로 된 문학비평 텃밭을 일굴 수 있다면, 나중에 얼마든지 새롭고 젊은 사람들이 좋은 뜻을 품으며 어린이문학을 열어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다음 책들을 엮어 내고 써 냅니다. 아이들이 쓴 글을 모은 <일하는 아이들>(1977),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1979)를 펴내는 한편, 교육비평인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1977), <삶과 믿음의 교실>(1978), 어린이문학 비평 <시정신과 유희정신>(1977)을 잇달아 펴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바쁜 가운데에도 밤잠도 자지 않고 여러 잡지와 신문에 쓴 글을 모아서 이렇게 봇물 터뜨리듯 '어린이문학 비평-교육비평'을 내놓은 것입니다.

이러는 가운데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읽힐 책이 너무 없다는 생각에서 전국 곳곳에 숨어 있는 '어린이문학 작가'를 찾아내고 알아보면서 서울에 있는 출판사로 원고를 들고 찾아가서 '이런 책을 내야 출판사도 살고 아이들도 산다'면서 어린이책 단행본이 제대로 묶여 나올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창비아동문고, 인간사 아동문고(인간사가 문닫은 뒤 산하아동문고로 옮김), 종로서적 아동문고, 사계절 아동문고들이 세상에 태어나게 힘을 씁니다.

이러면서 1980년대 후반에 일어난 교육운동(전교조)에도 숨은 큰힘이 되는 노릇을 하니 그야말로 '자기 자신 문학 창작'을 할 겨를이 있을 수 없습니다. 1980년대에 접어든 뒤로 펴낸 책도 <울면서 하는 숙제>(1983), <어린이 시 지도>(1984),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1984),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1984), <이 땅의 아이들 위해>(1986), <우리 언제쯤 참선생 노릇 한번 해볼까>(1986), <글쓰기 이 좋은 공부>(1986), <삶 문학 교육>(1987), <어린이는 시인이다>(1988), <이오덕 교육일기(1)(2)>(1989)인데, 이런 책에서도 살필 수 있듯 '어린이문학 비평-글쓰기 교육 이론서-교육비평'으로 모여 있습니다.

이밖에도 창비아동문고에서 어린이 글모음을 다섯 권 펴내고, 지식산업사와 다른 출판사에서도 어린이 글모음과 학급문집 펴내는 일을 도맡아 했으니, 이런 모습을 살펴본다면 이오덕님은 '문학 창작'을 거의 못하면서 살았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실제로도 당신이 쓴 문학 작품은 거의 내놓지 않았습니다. 1986년에 군사독재정권 탄압에 못 이겨 억지로 학교를 떠나야 한 뒤로는, 우리 말 바로쓰기 운동에 몸담아 1990년대부터는 <우리글 바로쓰기> 세 권과 <우리 문장 쓰기>도 내놓지만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는 <이오덕 글 이야기> <어린이를 살리는 글쓰기> <우리 말로 지키는 민주주의>도 펴냅니다. 그런데 이렇게 펴낸 '우리 말 이야기' 책도 대체로 1994년쯤 뒤부터는 뜸하게 됩니다. 글은 꾸준히 쓰셨지만 책으로는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고 할까요?

선생님이 시를 죽 써서 모아 놓은 공책입니다. 이 공책에 시를 쓰기만 하셨지, 바깥에 내놓지는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시를 쓴 공책이 여러 권 됩니다.
선생님이 시를 죽 써서 모아 놓은 공책입니다. 이 공책에 시를 쓰기만 하셨지, 바깥에 내놓지는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시를 쓴 공책이 여러 권 됩니다. ⓒ 이오덕,이정우
학교 현장을 떠난 뒤로는 학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뒤에서 돕는 일을 더 많이 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오덕님 시 창작 공책"이 한 권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물론 이 "시 창작 공책"은 당신이 돌아가시기 앞서까지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도록 꽁꽁 숨겨 놓았지만요(돌아가신 뒤, 다른 원고를 갈무리하면서 비로소 한 권씩 찾아내고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 만든 <어린이문학>(지금은 폐간됨)이란 잡지에 가끔 '그동안 창작한 동시' 가운데 몇 편을 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뿐, 그 어느 잡지나 매체에도 동시고 동화고 내놓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남몰래 수첩이나 일기나 공책에 꾸준하게 '시 창작'을 했으나 문학 창작이 아닌 다른 일로 너무 바빠서 제대로 자기 작품을 갈무리하고 모을 겨를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비로소 자기 문학 창작에만 온 마음을 쏟을 수 있는 때를 맞이합니다. 이것은 바로 '바깥 일(교육 운동, 어린이문학 운동, 어린이문화 운동, 글쓰기 운동, 우리 말 운동…)'을 할 수 없이 몸이 나빠졌을 때입니다.

이오덕님 자신이 생각하기로도 몸이 나빠지면서 다른 일을 하기 어렵게 되어 마음이 아팠을 테고, 둘레에 있는 분들도 안타까이 생각했겠으나, 오히려 이렇게 몸이 아파서 여러 해 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과천 아파트 생활을 접고 시골(아들이 살고 있는 충북 충주시 무너미마을)로 내려오게 되면서는 한껏 자유롭게 '시 창작'에 온 마음을 쏟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오덕 님이 돌아가신 뒤 수많은 원고 뭉치 사이에 숨어 있던 '시 창작 공책'에 적힌 창작 년대를 보면 바로 이때, 병원 신세를 져야 한 때, 무너미마을로 내려와서 일을 쉬고 있을 때 쓴 시가 참 많습니다.

1970년대 중반을 고비로 문학 창작이 수그러들다가 1980년대를 넘어서부터는 거의 문학 창작이 보이지 않았고, 1990년대를 넘어서면서 얼핏얼핏 다시 나타나던 문학 창작은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차근차근 자리를 잡고 1990년대 후반을 넘고 2000년대를 지나면서 다시 봇물처럼 쏟아집니다. 마치 지난 20년 가까이 문학 창작을 거의 못하며 살던 아쉬움을 훌훌 털어내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내놓는 이오덕님 시모음을 보면 하루 동안 써 내려간 시도 여러 편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동안 시를 많이 쓸 수 있느냐 생각할 수도 있으나, 하루이틀이 아닌 스무 해 가까운 세월 동안 "문학 창작을 접어두고 바깥일에 자기 모든 것을 바치며 살아오며 묻어두고 밀어둔 문학 창작을 하고픈 마음"을 쏟아냈으니, 오히려 창작한 작품이 적다면 적다고 해야 옳습니다.

스무 해 동안 쌓아 두고 담아 둔 작품 숫자가 적다고 했는데(시 창작 공책은 다섯 권이 넘습니다), 이것은 이오덕님 몸이 좋지 않기 때문에 한 편 쓰고 쉬고, 또 쉬고, 하룻밤 쉬었다가 다시 쓰고 했기 때문입니다. 몸만 더 좋았더라면 그동안 쓰고팠던 시를 더 많이 썼겠지만, 한편으로는 몸이 더 좋았더라면 문학 창작을 안 하고 다른 바깥일에 더 매달리며 교육 비평과 어린이문학 비평과 우리 말 운동과 글쓰기 운동에 더 힘을 기울였으리라 봅니다.

이오덕님은 당신이 아이들을 가르치며 글쓰기를 시킬 때 '숙제'나 '무거운 짐덩이'처럼 시키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느낀 대로 거짓 생각을 덧붙이지 말고 단출하게 쓰도록 했습니다. 이오덕님이 쓴 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 마음이 되어서 사물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차분하고 단출하게 써 내려 갑니다. 때로는 무척 긴 시도 있는데, 길이가 길다 뿐이지 이야기 짜임새나 줄거리는 참 단출하며 쉽고 재미있다고 할 만합니다.

어떤 틀에 박힌 정형이나 율격을 맞추느라 자기 속마음을 제대로 털어놓고 담아내지 못하기보다는, 떠오르는 대로 느끼는 대로 보고 겪어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펼쳐낸 시가 이번에 세상에 처음으로 내놓는 <이오덕 시모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시를 쉽게 쓸 수 있다는 것을 자기 문학 창작으로 보여주면서, 이 시를 읽는 분들도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어려움'을 느끼지 말고 손쉽게 부드럽게 단출하게 알맞게 펼쳐 내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어야 하고, 세상일을 더 많이 겪고 부대끼며 '땀흘리고 애써서 살아온 보통사람들', 이 나라를 이끌어온 밑바탕이 된 백성들이 자기가 겪고 느껴 온 이야기야말로 가장 재미있고 아름다운 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길잡이책이 바로 〈이오덕 시모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 사진입니다.
이오덕 선생님 사진입니다. ⓒ 이오덕,이정우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온 이오덕님은 당신이 죽는 날까지 '부끄러워서 차마 내놓을 수 없었다'는 이 시모음으로 "사람들이 시를 어렵게 느끼지 말고 쉽게 느끼면서 자기 이야기를 찬찬히 펼치고, 이렇게 펼친 시를 서로서로 즐겁고 재미있게 나누면서 참다운 문학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글쟁이들(문학가)만이 쓰는 시가 아니라, 누구나 오붓하고 신나게 즐기는 시 세상을 만들자"는 가르침을 베푼다고도 하겠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떠났지만, 그 사람이 남긴 것으로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밑거름이 되고 길잡이가 된다고 할까요?

이오덕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가장 바탕이 되는 마음은 "아이들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하라"입니다. 〈이오덕 시모음〉도 "아이들이 되어 아이들처럼 말하고 이야기하듯 시를 쓰라"는 것 그대로 담아냅니다. 돌아가신 이오덕님은 당신이 해 온 일을 어떤 '유물'이나 '유적'처럼 여기기보다는 우리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에서 알맞게 받아들이고 새롭게 이루어나갈 밑돌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오덕 시모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갑게 즐길 문학작품이 되는 〈이오덕 시모음〉인 한편, "우리도 이만한 시는 쓸 수 있어!" 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저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껍데기만 들씌우는 꾸밈과 거짓이 아니라, 속으로 살갑고 깨끗한 마음을 다스리는 오붓한 이야기로 갈무리하는 밑돌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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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오덕 선생님을 기리는 인터넷 누리집 <이오덕 학교(http://25duk.cyworld.com)> 게시판에도 함께 올려놓겠습니다.


고든박골 가는 길

이오덕 지음, 실천문학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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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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