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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노조 채용비리와 관련해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는 노동운동 간부가 취업비리에 연루됐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26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침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기업 노조를 향한 비난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더욱이 1일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가 폭력으로 얼룩지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노조 내부에서는 "드디어 터질 일이 터졌다"는 반응과 함께 "대기업 노조운동의 뼈를 깎는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자성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대기업 노조의 문제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을 마련하는 기획을 3차례(①진단 ②해법 ③각계요구)에 걸쳐 소개한다. 이 기사는 그 두번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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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노동운동 ①-진단] '식칼테러' 맞서던 진정성은 어디로 갔나

1일 오후 영등포 구민회관에서 열린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일부 조합원들이 회의진행 방식을 놓고 이수호 위원장에게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1일 오후 영등포 구민회관에서 열린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일부 조합원들이 회의진행 방식을 놓고 이수호 위원장에게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진욱
"대기업 노조들이 왜 욕을 먹느냐… 아무래도 가진 게 많고, 그러다 보니 싸우지 않아도 되고, 회사와 타협하는 거 아니겠느냐."

파업으로 인해 해고를 당했다가 어렵게 복직한 한 노조 전임간부는 '대기업 노조가 비판 받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제대로 운동하는 노조 간부들은 노동운동의 주도권이 이미 대기업 노조에서 비정규직 노동 운동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투적 노동운동이 원칙을 훼손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싸워야 할 이유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본다. 비정규직들은 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여전히 희생당하고 있다. 대기업 노조가 최저임금제 등 약자와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기아차 노조의 '취업 장사'를 보는 민주노조 운동 진영의 좌절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정부와 보수언론이 '대기업 노조 죽이기'에 나섰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민주노조 운동이 변화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울림을 얻고 있다.

폭력으로 얼룩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사회적 교섭안은 폐기돼야 한다. 정리해고 때 이미 당하지 않았나"
"어떤 일이 있어도 임시 대의원 대회는 사수돼야 한다."


2월 1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는 민주노조 운동 내부의 갈등이 얼마나 첨예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사회적 교섭 안건 처리를 둘러싸고,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에서 신나와 소화기가 동원되고 폭력과 욕설이 오가는 난투극이 벌어졌다.

2월 비정규 법안 통과에 맞서 총파업을 조직해야 한다는 의견과 사회적 교섭을 통해 산적한 현안을 풀어야 한다는 의견 사이에 거리는 너무 멀었다.

일부 대의원은 "민주노총 지도부가 정부와 어떤 뒷거래가 있었길래 사회적 교섭 안건에 그토록 목을 메느냐"면서 노골적으로 불신을 드러냈다.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이 "우리가 제안한 교섭틀과 의제를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참여하지 않으면 된다"고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대회에 참석한 한 대의원은 "사회적 교섭 안건이 설령 통과된다 하더라도 이런 상태로 과연 사회적 교섭이 제대로 힘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표시했다. 또 다른 대의원은 "모든 것이 신뢰의 문제인데... 현 지도부를 믿지 못해서 저렇게 반발하는 것 아니냐"고 안타까워했다.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이 사퇴 의사까지 밝히면서, 사회적 교섭 안건에 대해 표결 의지를 밝혔지만 임시대의원대회는 정족수 미달로 유회됐다. 폭력으로 얼룩진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는 민주노조 운동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노조 운동이 살기 위해서는 내부의 불신부터 걷어내야 한다"는 한 대의원의 설명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한 노동운동가의 죽음과 줄세우기 문화

지난 1월 1일 오후 3시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숙연한 분위기에서 한 노동운동가의 영결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영결식에는 유가족,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과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 등 200여명의 조문객이 참석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박상윤 사무처장은 지난해 12월 30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학습지, 방송사 비정규직, 덤프 연대를 비롯해 수많은 미조직과 비정규 노동자 투쟁에 헌신했던 그의 죽음 앞에서 동료들은 가슴 울음을 토해냈다.

고 박상윤 사무처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원인은 '격무와 노동운동 내부 상황에 대한 깊은 고뇌'로 알려져있다. 주변 동료들은 "그가 분파의 이해관계를 위해서라면 운동의 원칙과 대의도 없어지는 노동운동 내부의 줄세우기를 두고 크게 실망하고 고민했다"고 말한다.

그와 함께 활동을 했던 민주노총 한 간부는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세계> 추모글을 통해 "그는 노동운동 한쪽에서 '행세주의' 풍토가 통용되는 것에 대해서도 걱정했다. 투쟁의 성과를 조직으로 돌리지 않고 모두가 자신의 것인양 행세하고, 상급조직 진출의 발판으로 삼거나, 현장의 대중적 검증도 없이 분파구도 속에서 주요한 지위를 자임하는, 나아가 그것이 통용되는 운동기풍을 슬퍼했다"면서 "어려움을 함께 해왔던 동지들이 어느새 이런 풍토에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애정이 컸기에 더욱 상처를 받고 힘이 들었던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노조 운동 진영에서는 '줄세우기 풍토'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대기업 노조 내부에서는 수많은 현장 조직이 존재한다. 문제가 되고있는 기아차노조도 외부로 알려진 현장 조직만 해도 모두 5개다. 기아차 노조 '취업장사'를 두고 여전히 내부에서 "○○파가 ○○파를 죽이려고 비리 내용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은 현장 조직내의 갈등을 방증하고 있다.

사실 기아차 노조 문제가 터졌을 때 민주노총 주변에서는 "아마 (취업 장사로) 받은 돈을 가지고 지부장 선거자금으로 썼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리고 이 말은 현실로 확인됐다.

광주지검은 지난달 30일 노조 대의원들에게서 "지난해 9월 노조 선거를 위해 취업 알선 대가로 받은 금품을 모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자신의 사람을 노조 지부장에 당선시키기 위해서 취업 알선 대가로 받은 뇌물을 사용하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빚어진 셈이다.

"고민도 부족하고 실험도 부족하다"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노동법 개악저지·파견법 철폐·권리입법 쟁취를 위한 비정규직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노조 간부 20여명이 삭발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노동법 개악저지·파견법 철폐·권리입법 쟁취를 위한 비정규직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노조 간부 20여명이 삭발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대기업 노조와 정규직 노조가 산별로 덩치를 키워 교섭력만 높이려고 했지 현장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다. 고민도 부족하고 실험도 부족하다. 산업 내 노동자들의 동질성을 높이고, 전략 사업을 조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윤애림 정책국장은 "기아차 노조 사태가 민주노조 운동의 시스템을 바꾸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별 혹은 기업을 산별이란 이름으로 묶어놓고, 관성화된 사업만 해서는 비정규직 문제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일례로 한 산별노조는 단협에 사용자와 비정규직 인원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랬더니 회사는 이 단협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을 자르고, 파견업체를 통해 비정규직을 늘리는 편법을 사용했다. 이 산별노조는 비정규직 증가를 막았다고 선전할지 모르지만,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산별노조가 비정규직 문제를 생색내기식으로 해결하려고 한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박병규 전 기아차 노조 광주지부장 겸 금속연맹 부위원장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이제는 솔직해져야 한다"며 "고립된 상황에서 우선 벗어날 욕심에, 책임회피용의 대응책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면서, 구체적인 반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아차 노조 사태를 계기로 민주노조 운동은 새로운 틀을 요구받고 있다. 자정 노력과 내부 감사 강화 뿐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사업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민주노조 운동 진영은 비정규 노조와 정규직 노조의 대등한 연대를 위한 일상활동, 산업별 노동자 조직화, 최저임금제, 세제 개편 등 사회적 약자나 빈곤층을 위한 사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면서 "민주노조 운동이 관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고립된 섬에서 영원히 탈출하기 힘들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비정규 운동 5년의 고민과 실천
[비정규운동 대토론회] 300명 참석 열띤 토론

ⓒ오마이뉴스 박수원

"비정규직은 사실 전임자 얻기가 쉽지 않은데,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회사가 사실 노조전임자가 뭔지도 모르고 인정을 해줬습니다. (웃음) 그랬다가 나중에 왜 회사에 출근하지 않느냐고 물어서, 전임은 출근을 하지 않는 거라고 했더니 결국 잘렸습니다." (부산지하철 청소용역 노조 천연옥 사무국장)


지난 1월 29일 오후 5시 고려대학교 경영대 학우강당. 청소용역직, 학습지 비정규직, 화물연대 비정규직, 은행 비정규직 등 비정규직 운동을 고민하는 30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이들은 정규직 노조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으며, 정규직 노조와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갈등을 줄여나가는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1박2일 동안 진행된 '비정규운동대토론회 - 비정규운동의 평가와 과제를 중심으로'는 어려움 가운데 이어온 지난 5년간의 비정규직 운동을 총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국학습지산업노조를 비롯한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직노조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민주노동당, 사회당, 노동자의 힘 등 35개의 비정규직 노조와 단체들이 비정규운동대토론회 조직위원회를 꾸려 6개월 동안의 준비를 거쳤다.

이번 행사는 전체토론 '비정규운동의 평가와 과제'를 비롯해 △비정규직 현장투쟁△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 △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 3개의 토론마당이 이어졌으며, 비정규직 발언대가 마련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 어떻게 할것인가의 주제토론에서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은 "힘이 조금이라도 더 있는 연맹이 비정규직을 '위해서' 뭔가를 '해주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동투쟁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일정하게 실리를 챙겨주면서 유지되는 노조운동에서는 절대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 구도가 극복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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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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