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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노조 채용비리와 관련해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는 노동운동 간부가 취업비리에 연루됐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침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기업 노조를 향한 비난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더욱이 지난 1일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가 폭력으로 얼룩지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노조 내부에서는 "드디어 터질 일이 터졌다"는 반응과 함께 "대기업 노조운동의 뼈를 깎는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자성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대기업 노조의 문제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을 마련하는 기획을 세차례(①진단 ②해법 ③각계요구)에 걸쳐 소개한다. 이 기사는 그 마지막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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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노동운동 ①-진단] '식칼테러' 맞서던 진정성은 어디로 갔나

민주노총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이 지난 1일 임시 대의원대회 이후 들끓고 있다. 폭력으로 얼룩진 임시 대의원대회에 대해 "민주노총에 실망했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의견에서 부터 "사회적 교섭 기구의 문제점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다양한 입장들이 올라오고 있다.

"전태일 정신으로 돌아가자"

지난해 11월 말에서 12월 초 비정규직 노동자 4명이 비정규법 개정안 철회 및 권리보장을 촉구하며 국회도서관 증축공사장 타워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다.
지난해 11월 말에서 12월 초 비정규직 노동자 4명이 비정규법 개정안 철회 및 권리보장을 촉구하며 국회도서관 증축공사장 타워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노동계와 학계,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정부와 재계 등은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를 우려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입장은 다르지만, 정부와 재계는 민주노총이 내부 문제를 추스리고 속히 대화의 파트너로 나서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쪽에서는 노사관계 로드맵을 올해 안에 확정짓기 위해서 민주노총의 협조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재계 역시 민주노총이 대립적 노사 관계의 관행을 끊고 단위 노조에 리더십을 발휘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총 최재황 정책본부장은 "기업이 투명성을 제고하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던 만큼 노조도 과거 투쟁 방식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노사 관계를 법과 원칙 속에서 순리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도록 민주노총이 힘을 쏟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노동계나 학계, 시민사회단체가 민주노총과 대기업 노조를 바라보는 시선은 정부나 재계와는 차이가 있다. 이들은 민주노총과 대기업 노조가 원칙과 사회적 약자들과의 연대에 충실할 것을 주문한다.

전태일기념사업회 이광택(국민대 교수·법학) 이사장은 "민주노총이 합법화되는 과정에서 고생도 많이 했고 성과도 많았지만 제도화 됨으로써 방심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면서 "전태일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며, 민주성과 자주성, 도덕성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광택 이사장은 "민주노조 운동이 비정규직을 포섭하지 못한다면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며 "노조의 문을 열고 비정규직이나 실업자들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언적으로만 '비정규직 철폐'를 외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비정규직 차별 해소'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한국노동교육원 박태주 교수는 기아차 노조 채용 비리에 대해 대기업 노조나 민주노총이 근본적인 해법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사실 기아차 노조 채용 비리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에 있다. 기아차 노조나 민주노총이 진정으로 사과하고 반성하는 것은 단순히 고개를 숙이고 기자회견을 하는 데 있지 않다. 비정규직 사업을 위해 민주노총이 50억원 기금을 모으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겠지만, 대기업 노조가 단협을 수정해 비정규직도 조합원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아차 노조와 현대차 노조 등의 대기업 노조는 산별노조로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대공장 노조 이기주의를 벗어던지는 게 진정한 사과 아니겠느냐."

"교섭조차 할 수 없는 소외계층 위해 사회적 교섭력 보여줘야"

지난달 26일 민주노총이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채용비리에 노조간부가 관련된 것에 대해 대국민사과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달 26일 민주노총이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채용비리에 노조간부가 관련된 것에 대해 대국민사과 성명서를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1일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폭력사태까지 부른 '사회적 교섭'안건 처리를 놓고도 다양한 해석과 해법이 제시됐다. 민주노총 출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은 "민주노총 출범 10년을 자축해야 할 시점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져 유감스럽다"면서 "70만 민주노총 조합원의 의사가 소수의 힘에 의해서 왜곡되는 것은 바로잡아야 하며, 협상틀은 어떤 형식으로든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90년대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과 민주노총을 만들었던 과정을 소개하면서 "전노협 시절 내부의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했지만, 노동운동의 큰 대의 속에서 단결이 필요했기 때문에 민주노총을 건설했고 여기까지 왔다"면서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사회적 의제를 만들어, 외환 위기 이후 나타나는 조합 이誰聆퓔?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민주노총이 제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노동시장의 불평등 해소'를 꼽았다.

"노무현 정부가 분배구조의 악화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해법을 노동시장 밖에 있는 복지정책에서 찾다보니 제대로된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우선적으로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연대임금정책, 그리고 연대복지정책과 최저임금현실화를 적극적으로 의제화 해야한다."

또 한편에서는 민주노총이 노조에 포함돼 있지 않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교섭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해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사)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최상림 대표는 "교섭조차 할 수 없는 소외계층을 위해서 민주노총이 적극적으로 사회적 교섭력을 보여줘야 하는데 명분만을 앞세우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면서 "민주노총이 요구 조건을 모두 관철시키겠다는 생각보다는 유연성을 발휘해 정말 소외계층의 현실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29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여의도 국회 앞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 공무원 노동3권 보장 등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해 11월 29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여의도 국회 앞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 공무원 노동3권 보장 등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민주노총이 리더십을 회복하고, 기아차 노조 채용비리 문제나 대의원대회 폭력사건을 정공법으로 풀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 장상환 (경상대 교수) 소장은 "기아차 노조 채용 비리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폭력 사건 모두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발생한 문제"라면서 "민주노총과 대기업 노조는 고용안정과 비정규직 제도개선, 대기업내 납품업체와의 불평등 관행 등을 개선하는 노력을 통해 수세적이 아니라 공세적 대응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해법을 제기했다.

장 소장은 특히 노동자 내부의 갈등으로 격화된 대의원대회 폭력사건과 관련 "서로가 자신의 입장만을 주장하다보면 의견은 좁혀질 수 없다"면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각각의 입장을 조정하고 동의를 얻어낼 수 있도록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과 대기업 노조는 기아차 노조 채용비리와 대의원대회 폭력사태를 거치면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이들이 과연 정확한 원인진단과 적절한 처방을 내놓을 수 있을까? 위기의 노동운동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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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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