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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로스까스
'허수아비' 로스까스 ⓒ 김영주
돈가스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얇으면서도 넓게(A4 돈가스까지 있을 정도로!) 튀긴 돼지고기 위에 소스를 뿌린 이른바 옛날 돈가스와 두툼한 고기를 잘라 내놓는 일본식 돈가스.

옛날 돈가스는 칼로 썰어가며 먹고, 일본식 돈가스는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다. 옛날 돈가스는 나올 때 소스가 얹혀 있고, 일본식 돈가스는 소스가 따로 나온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형태 돈가스 중 어떤 것이 더 진정한(?) 돈가스라고 할 수 있을까? 어차피 토종 음식이 아닌 바에야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포크커틀릿이라는 서양 음식을 거의 그대로 수입해 김치와 풋고추를 먹으며 우리 방식과 결합한 옛날 돈가스도 좋고, 포크커틀릿을 자기 나라로 들여와 두툼한 고기로 변화를 주고 미리 썰어 젓가락으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게 변형한 일본식 돈가스도 좋다. 문제는 어떤 돈가스를 먹든 맛있는 돈가스를 먹으면 될 것이다.

<찾아라! 맛있는TV>에서는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돈가스 중에서 가장 맛있는 돈가스를 찾아보려 한 적이 있다. 음식 관련 교수들과 음식전문기자, 인터넷 식도락동호회의 의견을 구해 맛있는 돈가스 집을 추천받았는데 옛날식 돈가스에 비해서는 일본식 돈가스가 훨씬 많이 후보에 올랐다.

아마도 돈가스라는 음식 이름부터가 일본에서 지은 것이기에 돈가스 하면 일본식 돈가스를 정통으로 더 쳐준다는 뜻이리라. 그렇게 해서 가게 된 한 돈가스 전문점이 있다.

'허수아비'

아마 아시는 분들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하는데, 예술의 전당 앞에 난 도로변에 본점이 있다. 이곳에서 돈가스에 목숨을 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난 이미 허수아비 홍대점의 돈가스 맛을 봤기에 맛이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본점에서 맛을 본 돈가스 맛은 확실히 달랐다. 왜 지점과 본점의 맛이 다른 것일까?

<허수아비>는 1994년 9월에 문을 열어 이제 만 10년이 넘어 가는 곳이다. 원래는 도시락 관련 사업을 알아볼까 하고 일본에 갔는데 돈가스에 눈을 떠 일본 돈가스를 만드는 사람들과 기술 이전에 대해 논의하다가 감정 대립이 생기는 바람에 막판에 결렬됐다. 하지만 돈가스에 미련이 남아 결국엔 회의장에 숨어 들어가 스스로 꾸겨 던졌던 요리법을, 쓰레기통을 뒤져 찾아내 한국으로 가지고 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바로 돈가스를 만들기가 자신 없어, 일단 해장국으로 장사를 하다가 돈가스를 살짝 집어넣어 봤는데, 시간이 갈수록 돈가스를 찾는 손님들이 늘어나게 되어 결국 돈가스 전문점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물론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거쳐 한 3년 정도는 고전을 했으나 점차 안정을 찾게 되어 현재 약 100 개 정도 기술 이전 점(일반적인 프랜차이즈 가맹점 조직과는 차별성이 있다)이 생길 정도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돈가스를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돼지고기는 잡은 지 6일에서 7일 정도가 최고로 맛있다고 한다. 바로 잡으면 사후경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수아비는 도축한 지 3일째 되는 고기를 들여와 3일 정도 숙성한 뒤에 요리를 한다.

현재는 안성도축장에서 잡은 고기를 쓰는데, 고기를 잡을 때 스트레스를 받게 하면 고기 맛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죽는 줄 모르게 하는 기술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110kg이 되는 돼지와 규정된 사료를 주는 돼지만을 엄선하는데 이 조건에 맞춘 돼지가 고기맛을 좌우하는 마블링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주로 사용하는 부위는 안심과 등심인데, 사실 이 부위들은 맛이 떨어지는 부위라고 한다. 결국 돈가스의 포인트는 맛이 덜한 돼지고기의 부위를 기름에 튀겨서 얼마나 맛있게 만들어내는가에 있다. 그리고 다른 돈가스 맛 집들을 보면 고기를 두드리는데, 그런다고 부드러워지는 게 아니라고 한다.

채소는 2시간 지난 건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샤워는 20분마다 한다. 고기를 찍어먹는 소스는 열을 가하지 않고 생과일(사과, 바나나, 파인애플, 배 등), 땅콩, 케첩, 간장, 양파을 넣어 7일 정도 숙성한다. 기름과 채소가 분리되면 안 되기 때문에 고속믹서기로 돌린다. 채소 소스는 식용유와 참기름을 사용한다.

손님에게 깨를 빻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맛과는 별 관련이 없다. 다만 튀기고 나서 기름이 빠지려면 30초 정도 걸리는데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해 재미로 마련한 것이다.

문제는 빵가루다. 최고 빵가루를 구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우연히 회사 옆 빵집의 식빵이 좋아 알아보니 빵집 주인이 동경에서 30년 간 빵을 공부한 분이었다. 그러나 유지방이 다소 적어 팍팍해진다는 단점이 드러나게 되었고, 결국 2년 정도 연구해 현재는 안산의 자체 빵 공장에서 빵가루를 조달하고 있다.

빵은 업소 위치에 따라 보관 방법도 달라진다고 하는데 나는 여기서 돈가스를 먹어보고 나서야 돈가스에서 빵가루가 차지하는 위대함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물론 돈가스에서 마무리 단계라고 할 수 있는 튀기기가 빠질 수 없다. 항상 160도를 유지하는 가마가 2개가 있는데, 한 개를 넣고 튀기다가 다음 손님이 주문해서 다른 돈가스를 넣게 되면 순간적으로 온도가 저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튀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육즙을 가둬야 하는 순간인데 집개로 집으면 감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3분의 2가 익지 않은 순간에 꺼내야 하는데 이 순간을 느끼기에는 무수한 수련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앞에서 제기한 의문인 왜 같은 회사 돈가스인데 지점보다 본점 돈가스가 더 맛있는 것일까. 홍대점은 넓고 화려한 인테리어를 했는데 비해 본점은 테이블이 고작해야 8개가 될까 말까 하는 비좁고 허름한 곳이다. 그래서 주방과 테이블 거리는 본점이 당연히 가깝다. 바로 이 점이 본점의 돈가스 맛을 우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육즙을 가둬야 하는 찰나의 순간에 집어내서 기름을 뺀 후 칼로 썰고 나서 채소를 놓고 곧바로 손님 테이블에 올려야 최고 돈가스 맛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방과 손님 테이블 사이 거리가 멀면 멀수록 초를 다투는 승부에서 차이가 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본점과 지점의 돈가스 맛 차이는 주방과 손님 테이블 간 거리 차이에서 발생하는 불과 시간 몇 초인 것이다.

이 곳 돈가스는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바스락'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삶은 돼지고기의 육즙 맛과 빵가루의 바삭함과 고기의 부드러움이 합쳐지는 데서 오는 맛이 몸서리쳐지게 한다.

이렇게 맛있는 돈가스를 먹기 위해 알아 두면 좋은 게 있다. 돼지고기는 바싹 익혀야 먹을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모든 균은 76도만 되면 없어진다. 육질을 즐기려면 어느 정도 익었을 때 돼지고기를 먹는 게 더 맛이 있다.

그래서일까. 간혹 어떤 손님들은 돼지고기 썰린 단면에서 육즙이 배어나오는 것을 보고 아직 안 익었다며 다시 튀겨오라고 한다. 그럴 땐 가지고 주방에 들어갔다 잠깐 한 호흡 쉬고 그대로 들고 나오면 어느새 익어 있다는 것이다. 또 접시에 놓을 때 고기만 판 위에 올리는 이유는 샐러드하고 고기 온도가 다른 것에서 나온 배려다.

돈가스만 놓고도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 허수아비 본점 돈가스 맛을 알게 되면 다른 곳 돈가스 맛이 초라해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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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관심이 많습니다. 진심이 담긴 글쓰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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