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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 나라에서 영업하고 있는 식당 수는 대략 62만개 정도라고 한다. 내가 <찾아라! 맛있는TV>의 구성작가를 하는 3년 동안, '맛있다'며 소개한 맛집이 무려 천여 곳을 웃돈다.

이제는 더 이상 소개할 수 있는 곳이 없지 않냐는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아직 1%의 맛집도 소개하지 못한 것이다. '삼천리 금수밥상'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나라에 아직도 맛있는 집이 많음을 확심하며 그동안 취재했던 정말 맛있는 맛집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맛있는 음식은 사람을 끈다

음식 프로그램의 작가를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맛있는 집 좀 없나요?"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OO을 추천하긴 하는데, 기대하고 가지는 마세요. 맛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음식 잘하는 맛있는 집의 기준은 무엇일까? 상황과 사람의 미각에 따라 제각각 다른 맛에 의해? 아니면 가격 대비 만족도? 분위기? 서비스? 위생?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맛있지만 다른 사람은 맛이 없다는 집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개인의 주관에 맡기면 음식 프로그램을 하는 의미가 없을 터. 맛이 '작품성'이고 손님들을 '대중성'이라고 한다면, 나는 일단 대중성에 방점을 찍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면, 맛있는 집이란 무엇보다 손님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정말로 음식을 맛있게 하는데 손님이 많이 오지 않는다면 그 집은 맛이 없는 것이다. 최소한의 대중적인 맛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운이든 노력이든, 언론에 노출되어 손님이 많이 몰렸다고 해도 그집의 음식이 맛이 없다면 손님들은 계속 오지 않는다.

결국 맛이건 맛 이외의 요소이건 간에 손님이 지속적으로 몰린다면 그집 음식은 맛있다고 볼 수 있다. 맛은 별로 없는데 서비스나 교통이 좋아서 가는 경우는 한두 번이면 족하다. 그래서 나의 관심은 늘 손님으로 북적대는 맛집이다. 도대체 저 집은 어떤 까닭에 손님들이 많이 찾는 것일까가 궁금한 것이다.

김치 항아리 구입에만 3년

오늘은 그 첫번째로 김치찌개집 한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오모가리 김치찌개'. 잠실대교 남단에서 성남 방향으로 가다가 롯데월드를 지나 석촌호수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의 주 메뉴는 김치찌개. 특이하게도 1층엔 자장면을, 2층과 3층에서는 김치찌개를 팔고 있다.

오모가리 김치찌개가 맛있다는 얘기는 예전부터 들어 왔기 때문에 적어도 10년 이상 된 줄 알았다. 그런데 고작 2002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불과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집의 어떤 점이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것일까.

이 음식점의 대표인 문인술씨가 오모가리 김치찌개를 만들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한번 살펴 보자. 전화기 제조업, 호출기 사업 등을 하다가 세꼬시집, 설렁탕집을 운영했던 문인술씨. 한계를 느낀 문 대표는 자신이 직접 음식을 배우겠다는 결심을 하고 전국으로 음식 스승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음식 아이템은 '온고지신'의 정신에서 착안, 김치찌개로 결정한다.

우선 젓갈 만드는 법을 배우고 전국의 김치찌개 잘한다는 집들을 찾아다니며 맛을 보고 배우고 나서야 문 대표는 1996년부터 비로소 김치찌개집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문 대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식당 부지를 물색하거나 인테리어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지하 10m 깊이에 김치를 저장할 항아리들을 모으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닌 것이다.

커다란 항아리 5백개 정도를 사는 데만 자그마치 3년이 걸렸다. 그리고 젓갈(갈치, 멸치, 새우, 황새기 등)을 담그고 소금을 숙성시키기 시작했다. 2001년경에 문 대표가 구상했던 김치찌개집과 흡사한 집이 오픈하는 바람에 2002년 서둘러 개업했다. 결국 김치찌개 집을 오픈하는 데 자그마치 7년이 걸렸다. 하지만 6개월이 흐르자 오모가리 김치찌개집은 하루 평균 1500그릇이 팔리는, 줄 서는 맛집이 되기에 이르렀다.

3년 숙성 김치 사용, 두부는 넣지 않아

이 집 김치찌개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지하 10m 깊이의 항아리에 김치를 보관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3년 숙성시킨 김치를 기본으로 한다. 육수는 물로 하되 지하 159m의 암반수를 사용한다. 돼지고기는 목살 부위의 생고기를 쓰는데 두부는 절대 넣지 않는다. 김치찌개의 맛을 훼손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연휴라면 여유있게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지난 추석 처갓집 어른들과 함께 그곳을 찾았다. 그런데 웬걸. 추석 연휴에도 1층까지 길게 줄을 서고 있는 게 아닌가. 20여 분을 줄을 서서 2층으로 올라가면 입구에서부터 숙성된 김치 향을 맡을 수 있다.

김치찌개는 1인분씩이 아니라 커다란 가마솥에 50인분을 만들어 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1인용 뚝배기에 담아 다시 한번 끓여서 제공한다. 24시간 영업하기 때문에 김치찌개 생각이 간절한 사람이면 언제라도 갈 수 있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그럼 1층의 자장면집은 어떻게 함께 자리잡은 걸까? 자장면집은 96년에 일찌감치 오픈했는데, 바로 김치찌개집을 세우기 위한 자금줄 역할을 했다. 아마도 우리 나라에서 자장면을 가장 많이 판매하는 곳 중 하나일 텐데, 기계가 아닌 수타로 면을 뽑는다. 문 대표는 당시 자장면을 잘한다는 <만리장성>과 <중국성>의 기라성 같은 주방장을 찾아가 핵심 기술을 전수 받았다고 한다.

지금 이 시간도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을 오모가리 김치찌개. 물론 그게 무슨 김치찌개냐, 김칫국에 가깝다, 난 그냥 그렇던데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김치찌개 식당 하나를 만들기 위해 미친 놈 소리를 들어가며 7년을 한 우물을 팠다는 점, 무엇보다 손님들로 북적거리고 있다는 점, 이 두 가지 정도면 맛있는 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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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관심이 많습니다. 진심이 담긴 글쓰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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