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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당시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김상균 부장판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대북송금 과정의 직권남용 및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지원 전 문광부장관에 대한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12년에 추징금 147억5200여만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한 유력한 근거는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과 전직 무기중개상 김영완씨의 진술이 일치하고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당시 "이 사건의 본질은 관련자들의 진술에 어느 정도의 신빙성과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 있느냐에 있다"면서 "쟁점은 과연 피고인이 현대에게 돈을 요구하도록 김씨에게 지시하고, 피고인이 실제 이씨로부터 돈을 받아 김씨에게 보관토록 했는지 여부인데, 관련자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유죄선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특검이 첫 단추를 잘못 꿴 수사의 '바통'을 이어받은 대검 중수부의 수사기록과 1심 재판부의 공판기록을 면밀히 검증하고 관련자들을 취재한 결과, 박지원 피고인은 무죄라는 강한 심증을 갖게 됐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박 피고인의 무죄 정황을 뒷받침하는 심층기사를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집중보도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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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7일 구속집행정지로 병원치료중인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현대 비자금 150억원 수수 혐의에 대한 결심공판에 출두하기 위해 병원을 나서고 있다.
지난 5월 17일 구속집행정지로 병원치료중인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현대 비자금 150억원 수수 혐의에 대한 결심공판에 출두하기 위해 병원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고(故)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과 전직 무기중개상 김영완씨를 통해 각각 박지원 전 문광부장관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게 각각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양도성예금증서(CD) 150억원과 200억원+미화 3천만 달러가 실제로는 정몽헌 회장이 김씨에게 관리를 맡긴 비자금이고, 그중 일부는 대북 통신사업 진출 대가 명목으로 북한측에 건네진 것이라는 신뢰할 만한 주장이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국가정보원의 전직 고위 관계자는 최근 "대북송금 5억 달러 가운데 4억 달러는 현대의 7대 경협사업 대가이고 1억 달러는 정부 몫을 현대가 대납한 것"이라는 특검수사 결과는 사실과 다르며, 실제로는 5억 달러 모두가 현대의 경협사업 대가라고 주장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또 이와 관련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현대는 우리(국정원)에게 알려주지 않은 채 북측과 비밀 쌍무계약을 맺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정몽헌 회장은 처음부터 북측에 경협사업 진출 대가로 5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합의해 놓고서, 정상회담을 '고리'로 정부의 '발목'을 잡아놓기 위해서 북측더러 '정부몫 1억 달러'를 대북특사였던 박 전 장관에게 요구토록 한 것이라는 가설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

이기호 "'정부몫 1억 달러', 협상력 높이려 책정한 명목상의 할당액"

또 그럴 경우 정몽헌 회장은 권노갑씨에게 비자금을 건넨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자 투신자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비자금과 대북 송금액이 추가로 드러남에 따라 양심의 가책을 느껴 투신한 것이라는 추정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

정상회담을 '고리'로 정부의 '발목'을 잡아놓기 위해서 북측더러 '정부 몫 1억 달러'를 박 전 장관에게 요구토록 한 것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진술은 <오마이뉴스>가 지난해 8월 보도한 'X 파일 : 대북송금 특검수사' 기사에서 처음 공개한 이기호 전 경제수석의 '진술서' 등을 통해서 제시된 바 있다. 이 수석은 특검에서 작성한 날짜 미상의 한 장짜리 진술서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먼저 현대의 대북송금 5억불은 전체 금액이 7대 대북사업의 사업권 대가로 생각합니다. 즉 지난번 진술이 이중 일부가 정부 몫일 것으로 진술한 뜻이 실제 정부가 부담할 몫이냐 아니면 현대가 전부 부담해야 할 것인가 하는 두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부와 현대가 남북정상회담을 보다 확실히 성사시키고 또 정부 몫이 일부 있다고 해야 북측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현대가 실제로 부담해야 할 전체 5억불 중 일부를 정부 몫으로 명목상 할당해서 북과 협상을 했을 것으로 생각이 많이 듭니다.

아무튼 이번 진술은 앞서 진술을 번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다만 정부 몫의 의미가 실질적으로 정부가 부담할 몫이 아니고 현대가 이미 전체 5억불을 사업권 대가로 설정해 놓았는데 이중 일부를 정부 몫으로 간주하게끔 해서 북한당국과 남한당국간의 긴밀성을 높이기 위하여 명목상으로 정부 몫으로 했다는 생각이 크게 들기 때문에 이와 같은 가능성을 보충진술하오니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요컨대 이 진술서의 요지는, 이씨가 전회에 진술할 당시에는 대북송금액 중에 '정부 몫'이 있다고 진술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정부가 부담하기로 한 부분인 것(A)인지, 아니면 현대가 이미 5억불을 사업대가로 설정해 놓고서 북한 당국과의 정부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그중 일부를 북한당국이 정부 몫으로 여기게끔 한 명목상의 할당액(B)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익치측이 대북송금 특검에 제출한 문제의 '변론요지보충서'

이기호 전 경제수석이 특검에서 조사받으며 작성한 날짜 미상의 한장짜리 '진술서'.
이기호 전 경제수석이 특검에서 조사받으며 작성한 날짜 미상의 한장짜리 '진술서'.
그런데 이와 같은 가설(B)은 뜻밖에도 이익치씨가 변호인을 통해 대북송금 특검에 제출한 '변론요지보충서'(2003. 6. 12자)에서 뒷받침된다. 같은 해 5월 12일에 1차로 제출한 변론요지서에 이어 2차로 이익치씨의 진술을 토대로 법무법인 화우에서 작성해 6월 12일 제출한 '변론요지 보충서'에서 이씨는 자신이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로 석방된 99년 9월부터 2000년 6월까지 사건을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이씨는 변론요지보충서에 기재한 '이 사건 전후로 피조사자 이익치가 처했던 사건일지'에서 이렇게 기술해 놓고 있다.

"* 2000. 3. 24
- 업무집행정지기간 도과로 회사 출근 시작
- 정몽헌 회장의 지시로 정 회장을 수행하여 가회동 정주영 명예회장 방문 - 이 자리에서 정몽헌 회장은 직접 자신의 노력·결단에 따라 북한의 10억불 요구를 5억불을 깎고 많은 SOC사업 독점권을 땄다고 자랑스레 보고하였고, 피조사자 이익치도 이때에야 구체적인 내용을 알게 됨."


당시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은 99년 주가조작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아 증권사 회장직에 대해 업무집행정지 상태였다. 따라서 3월 24일은 이익치 회장이 정몽헌 회장을 수행해 2차 예비회담에 참석하자마자 귀국해 현대증권에 첫 출근한 날이다. 그러니 그 기억에 착오가 있을 리 없다.

그런데 이씨의 진술은 2000년 4월 8일 마지막(3차) 예비회담에서 현대와 남측 당국이 북측에 5억(4억+1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는 특검의 수사결과 및 1심 재판부가 밝힌 '유죄 인정의 이유로 인정된 사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남북한 예비접촉·회담 일정 및 내용을 정리하면 ▶예비접촉(3월∼. 싱가포르) 현대의 소개로 남북한 박지원-송호경 대표 상견례 ▶1차 회담(3월 17∼18일. 상하이) 현대측에 10억 달러 요구 ▶2차 회담(3월 23일. 베이징) 현대와 정부측에 각각 10억, 5억 달러씩 요구해 결렬 ▶현대-북측 비밀접촉(3월 29∼30일. 베이징) 비밀계약(추정) ▶3차 회담(4월 8일. 베이징) 정상회담 개최 합의 등이다).

따라서 이씨의 진술이 날짜를 착오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씨는 이 변론요지보충서에서 시간과 장소를 정확히 기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대북자금의 마련·송금에 관여할 수 없었던 구체적 사정'과 관련해서도 이렇게 진술하고 있어 착오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익치씨 진술은 특검 수사결과 및 1심 재판부의 '유죄 인정 사실'과 정면 배치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변호인을 통해 특검에 제출한 변론요지보충서(2003. 6. 12).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변호인을 통해 특검에 제출한 변론요지보충서(2003. 6. 12).
"피조사자 이익치가 북한측의 금전 요구를 상세히 알게 된 것은 2000년 3월 24일 정몽헌 회장의 지시로 그와 함께 가회동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가서 대북접촉의 결과를 보고할 때였는데, 그 자리에서 정몽헌 회장은 대북접촉, 북한의 10억 달러 요구 및 자신의 5억 달러 제공 결정과 그 대가로 북한의 많은 SOC사업 독점권을 확보한 사실 등을 자신의 공적으로 자랑스레 보고하였고, 이때에야 피조사 이익치는 5억 달러 제공 약정에 대해 상세히 듣게 되었다."

3월 24일은 이씨가 정몽헌 회장과 함께 3월 23일 중국 북경에서 2차 예비접촉을 갖고 귀국한 당일이다. 따라서 그로부터 불과 열흘 전인 3월 14일 당시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이익치씨를 현대증권 회장직에서 해임하고 고려산업개발로 전보시킴으로써 시작된 이른바 '왕자의 난' 이후 경영권 장악을 위해 '왕 회장'(정주영)의 신임을 얻으려던 정몽헌 회장과 이씨가 이날 정 명예회장에게 '귀국보고차' 가회동에 들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변론요지보충서에서 이어지는 이씨의 진술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정몽헌 회장은 남북정상회담·대북사업 등에 대해 많은 얘기를 꺼냈었는데, '박지원 장관도 내가 정부측 대표로 뽑았다. 북측에서 국정원 관련자는 싫다고 해서 대통령과 가깝고 현대상선의 금강산관광사업의 주무장관으로 그동안 관광선 카지노 및 면세점 허가와 관련하여 접촉한 적이 있던 박지원 장관에게 상의했더니 박장관이 대표 역할을 맡겠다고 해서 예비접촉이 성사됐는데, 잘한 것 같다…이번 일은 송호경 부위원장과 여러차례 단독회담을 통해 100% 나의 결단으로 성사가 된 것이다'는 자랑도 하였다."

이씨는 이어 "이처럼 당시 정몽헌 회장은 그룹 대권을 승계받은 후 첫번째 작품으로 큰 업적을 이룬 것에 대해 스스로 몹시 만족하고 있었고 이를 자랑스레 명예회장에게 보고하였으며, 이 보고를 들은 명예회장께서도 아주 흡족하여 아들을 매우 대견스러워 하였는데, 이런 장면을 보면 이 사건 대북송금과 자금 마련 등이 누구의 결단에 의해 어떻게 결정·추진되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3차 예비접촉 이전에 이미 현대가 북측에 5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는 증언은 지난해 2월 7일자 <내일신문>에 의해서도 제기된 바 있다. 이 신문은 당시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평소 절친하게 지냈던 경제계의 한 원로의 증언을 빌어 "정 회장은 북한 개발을 대가로 5억 달러를 주기로 최종 합의한 것은 2000년 3월 17일이라고 말해줬다"고 인용해 보도했다.

이 경제계 원로는 또 정 회장의 말을 빌어 "북측에서 최초 요구한 금액이 10억 달러였다"며 "밤새 조율한 끝에 5억 달러로 합의했다"고 덧붙였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 기사를 쓴 기자에 따르면, 이 경제계 원로는 당시 3월 17일이라는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으며, 간접증언이긴 하지만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뜻까지 비쳤다. 이 기자에 따르면, 이 경제계 원로가 메모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메모에 근거해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정몽헌 회장 죽기 전 마지막 3차 공판에서 진술 변화 조짐

2000년 3월 17∼18일은 3월 8일 당시 싱가포르에서 박지원 대북특사-송호경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 첫 상견례를 한 뒤에 처음 가진 예비 접촉(1차)일이다. 물론 정 명예회장이 고령이었음을 감안하면, 그가 기억하는 날짜가 틀릴 수도 있겠다. 이를테면 1차 예비접촉(3월 17∼18일)과 2차 예비접촉(3월 23일)을 헷갈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1·2차 예비접촉일을 헷갈렸다고 해도 적어도 3차 예비접촉(4월 8일) 이전에 합의한 점이 중요하다. 또 중요한 것은 평생 사업을 해온 기업인들이 5억 달러를 10억 달러로 틀리게 기억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점이다.

결국 이익치씨 본인과 정주영 명예회장과 절친한 경제계 원로, 두 사람은 "2000년 4월 8일 3차 예비접촉 때에 비로소 북측과 10억 달러에서 5억(4억+1억) 달러로 합의했다"는 특검 수사결과 및 1심 재판부의 유죄 인정 사실에 반하는 진술을 하고 있다. 또 두 사람의 진술은 정몽헌 회장의 특검 진술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지난해 8월4일 투신자살한 고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영정.
지난해 8월4일 투신자살한 고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영정.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정 회장이 죽기 전에 마지막 3차 공판(2003년 8월 1일)에서 진술 변화의 조짐을 보인 점이다. 정 회장은 그리고 나서 사흘 뒤인 8월 4일 투신자살했다.

다음은 8월 1일 3차공판에서 이뤄진 재판장과 정 회장의 법정 신문 및 답변이다.

"북측 인사가 정부 부담분 1억불 지급과 관련하여 현대에게 보증을 요구한 것에 대해서 상피고인 박지원에게 그 사실을 전달했는가요."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에서 정부 부담분 1억불을 대신 지급하게 되면 북측에서 통신사업과 전체사업에 대한 독점권을 추가로 주기로 했기 때문에 반드시 전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몽헌 회장은 북측에 정부 몫 1억 달러를 지불보증한 사실을 박지원 장관에게 알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정몽헌 회장은 처음부터 북측과 합의한 총 5억 달러를 현대의 대북사업 대가로 계산하고 지급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 1억 달러를 지불보증한 사실을 박지원에게 알렸을 경우, 정부가 아무런 부담 없이 정부 몫을 부담하지 않을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박지원 CD 150억원과 권노갑 3000만 달러는 '김영완씨가 관리한 정몽헌 비자금'"

즉, 남북한 당국이 4월 8일 3차회담에서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기 이전에 2차회담 당시 이미 정몽헌 회장의 머리 속에서는 '정부 몫 1억 달러'가 계수상으로 잡힌 허수(虛數)일 뿐 이미 현대가 지불할 사업대가는 5억 달러라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 정몽헌 회장은 2000년 3월 23일 베이징 2차 예비회담이 결렬된 직후에 자신의 숙소인 차이나월드 호텔 스위트룸에서 송호경과 가진 비밀접촉에서 이미 '정부 몫 1억 달러'를 포함한 5억 달러를 사업대가로 지불하기로 합의했던 것이다.

앞서의 고위 관계자는 "돌이켜보면 북한측은 현대의 주선으로 남측과 정상회담 개최협상을 하면서 현대측에 경협사업의 대가로 10억 달러를 요구하는 한편으로 정부측에는 별도로 5억 달러를 요구했었다"면서 "그런데 당초 현대가 북측에 주기로 한 5억 달러 가운데 1억 달러를 정부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입장이 정리되자 상당액의 비자금을 마련할 것을 지시해 미국 시민권자인 김영완씨 계좌를 통해 관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정 회장이 박지원씨에게 건넸다는 CD 150억원과 권노갑씨에게 줬다는 200억원+3천만 달러(실제로는 2500만 달러)는 '김영완씨가 관리한 박지원-권노갑 비자금'이 아니라 실제로는 '김영완씨가 관리한 정몽헌 비자금'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1심 재판부(김상균 부장판사)는 박지원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는 핵심근거로 정몽헌과 이익치, 그리고 김영완 3자의 진술이 '일치'하기 때문임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150억 CD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대북 경협사업 대가 5억 달러 건에서 보듯 정 회장과 이씨의 진술은 일치하지도 않거니와 정 회장은 자신의 범죄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거짓진술을 한 혐의가 짙다.

그리고 설령 거짓이 아니더라도 정 회장과 이익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몽헌과 이익치, 그리고 김영완 3자의 진술이 '일치'하고 '신빙성'이 있다는 1심 재판부의 유력한 유죄 인정논리는 별로 근거가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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