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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학교가 가난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를 한 것이 학생들의 등록금에서 22억원을 남기려고 그랬다는 것을 알고 분노했다"

지난 10일 Y여고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들을 더 이상 거리에서 떨게 할 수 없다"며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시위를 벌인 데 이어 오늘(13일) Y여고 졸업생 30여 명이 오전 11시 Y여고 학교 본관 앞에 모여 학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는 재학생들과 함께 행동할 것을 결의했다. 졸업생들이 학교 문제로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우리 후배들 더 이상 울게 할 수 없습니다" 졸업생들의 외침.
ⓒ 성낙선
졸업생들은 오늘 학교 방문 시위에서 재단 이사장과 교장, 교감을 면담하고 학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답변을 들을 예정이었으나 3인이 모두 자리를 비웠다는 이유로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다. 이에 졸업생들은 "어떻게 세 사람이 한꺼번에 자리를 비울 수 있냐"며 학교 관계자들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Y여고 총동문회장 조숙현(1기)씨는 재단 이사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기에 앞서 과거 학교를 다닐 때를 기억하며 "학교 생활을 돌이켜보면 우울하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사물함비, 에어컨비, 심지어 탁자 덮개를 사들이는 일에까지 돈을 냈다. 그때는 그저 학교가 가난해서 그러려니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알고 보니 22억원을 모으려고 우리에게 돈을 제대로 쓰지 않은 것"이라며 수십년 동안 특별한 사용 목적 없이 학생 등록금을 남겨 22억원을 적립한 학교를 질타했다. 조 회장은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어떻게 충분히 교육을 받을 수 있었겠냐"며 한탄했다.

▲ 재단 이사장과 교장 면담을 요구하기 위해 교무실로 들어서는 졸업생들
ⓒ 성낙선
졸업생들은 오늘 시위에서 재학생과 교사들에게 전하는 2통의 편지를 낭독했다. 졸업생들은 재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랑하는 후배들아, 미안하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위해 싸우고 있을 때, 학교 위해 울고 있을 때 후배들 곁에서 함께 싸우고 함께 우는 것이 당연했는데 현실을 외면했다"고 말했다.

졸업생들은 "(후배들이) 친구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선생님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용기를 냈을 것"이라며 "더 이상 후배들을 외롭게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교사들에게 전하는 편지에서는 "정의를 생각하며 살라고 하신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잘 실천하며 살고 있는지 되새기게 된다. 후배들의 용기를 보며 당당한 목소리가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며 "선생님, 후배들이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졸업생들은 또 편지를 통해 "(선생님들이) 후배들에게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양심에 맞게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조숙현 회장은 시위를 마친 뒤 "(내가) 학교 다닐 때에도 문제 많았다. 그런데도 졸업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지냈다. 그렇게 해서 이렇게 문제가 곪아터졌다"며 "후배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오늘 시위를 시작으로 교육부와 서울시 교육청, 재단 이사장과 학교장을 상대로 Y여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엽서보내기 운동' 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늘 시위에서 졸업생들은 "우리(졸업생)들이 이렇게 나와준 것으로 후배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졸업생들은 오늘 학교에 졸업장을 반납할 예정이었으나 2월 13일로 예정되어 있는 졸업식날 2004년 졸업생들과 함께 졸업장을 반납하는 것으로 일정을 미뤘다고 말했다. 6기 졸업생 김선진씨는 졸업장을 반납하기로 한 것에 대해 "졸업생 신분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이런 상태에서는 더 이상 Y여고 졸업생임을 내세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졸업생들의 학교 항의 방문 시위에 재학생들은 기습시위로 응답했다. 졸업생들이 이사장, 교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는 사이 재학생 300여 명은 본관 건물 1층에서 노란색 막대풍선을 들고 "진웅용 교사 파면 철회"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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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학생들에게 학교를 방문하게 된 사유를 밝힌 뒤 교사 안으로 들어서는 졸업생들
ⓒ 성낙선
▲ 졸업생들이 재단이사장 등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는 사이, 학교 본관 1층에서 불시에 전개된 재학생들의 시위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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