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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미 대사관에 걸려있는 미국 성조기.
광화문 미 대사관에 걸려있는 미국 성조기. ⓒ 오마이뉴스 권우성
용산 미군기지에서 한미연합사와 유엔사가 한강 이남으로 완전히 이전하는 문제에 대해 한국 정치권 전체가 지극히 혼란스러운 행동을 벌이고 있다.

한미연합사와 유엔사를 오산·평택으로 옮기기로 한미 사이에 사실상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이를 숨기고 '여론 떠보기'로 일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여야 국회의원들은 주한 미군 지휘부의 한강 이남 이전을 막기위해 미국이 요구했던 용산기지 잔류면적 28만평을 그대로 수용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5일 김용갑(한나라당)·최명헌(민주당)·정대철(열린우리당)·김종호(자민련) 등 여야 국회의원 147명은 한미연합사령부와 유엔사령부의 한강 이남 이전을 막기위한 국회 결의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주한 미군 용산기지 이전 협상에서 미국이 잔류면적 28만평을 요구하는데 비해 한국 정부가 17만평을 주장하고 있다"며 "미국은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는 한미연합사령부와 유엔사령부까지 한강이남으로 이전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는 주한 미군의 수도권 방어 기능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며 해외 자본 철수와 투자 급감, 대외 신인도 하락 등 결국 용산땅 11만평의 수천·수만배에 달하는 막대한 피해로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말은 미국이 요구하는 용산기지 잔류면적 28만평을 수용해서라도 연합사와 유엔사의 한강 이남으로의 이전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용산기지 면적은 78만평으로 이들의 말대로라면 전체 36%를 그대로 미국에게 줘야 한다.

지난 3월 21일 경북 포항 앞바다 한미합동상륙작전에서 전방을 정조준하고 있는 미군.
지난 3월 21일 경북 포항 앞바다 한미합동상륙작전에서 전방을 정조준하고 있는 미군. ⓒ 오마이뉴스 권우성

용산기지 이전 협상 사실상 끝나

그러나 여야 국회의원들의 주장은 현실성도 없고 근거도 거의 없다. 일단 한미연합사와 유엔사가 용산기지에서 한강 이남인 오산·평택으로 이전하기로 한 것은 이미 한미간에 사실상 합의가 이뤄졌다.

지난달 20일 마크 밀튼 주한 미 부대사는 <오마이뉴스> 등 몇몇 인터넷 언론사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미간에 한미연합사와 유엔사를 완전히 오산·평택으로 이전하기로 11월 19일 합의가 이뤄졌다"며 "용산에는 '드레곤 힐'이라는 호텔 한 곳만 숙소용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마크 밀튼 부대사의 말은 '비보도'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바로 공개되지 않았을 뿐이다.

<오마이뉴스>가 취재한 결과 정부의 한 관계자도 "지난 11월 19일 한국 국방부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후속회담에서 한미간에 연합사와 유엔사를 완전 이전하기로 합의가 이뤄졌다"며 "사실상 용산미군 기지에는 미군이 단 한 명도 남지않게 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19일 후속회담에는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과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차관보가 참석했다.

그는 "최근 국방부가 '용산기지 이전 현상이 완전히 타결되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이는 한마디로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용산기지 이전과 관련된 포괄협정이 정식 문서로 작성되지 않았을 뿐 실제로는 완전히 타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애초부터 미국은 자신들의 군사전략에 따라 한미연합사와 유엔사를 모두 오산·평택으로 옮기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국민의 안보 불안감 때문에 잔류를 요청했던 것"이라며 "미국은 처음에 한미연합사와 유엔사가 잔류한다고 해도 10만평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요구 부지면적을 28만평까지 늘렸다"고 설명했다.

17만평으로 맞섰던 한국 정부는 최대 22만평까지는 양보할 수 있다는 타협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미국은 계속 28만평을 요구했고, 결국 한국 정부는 유엔사와 연합사를 한강 이남으로 완전 이전하는데 동의했다.

서울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용산구 미군부대.
서울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용산구 미군부대.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군 군사전략에 따른 재배치

한미연합사와 유엔사를 오산·평택 이남으로 이전하는 것은 한국이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애원'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는 조지 부시 미 행정부가 추진중인 미군의 군사혁신(RMA)과 이에따른 전 세계 주둔 미군의 재배치 계획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무겁고 중장비로 무장한 미군을 전 세계 어느곳이든 신속하게 전개할 수 있는 가볍고 기동성있는 부대로 바꾸고 있다. 주한 미 2사단이 휴전선 부근에 터를 잡고 이른바 '인계철선' 역할을 하는 것도 미군의 새 군사전략에 따라 폐기되는 것이다.

지난 17일 한·미 연례안보협의회 공동성명에서 한·미 양국은 "주한미군을 한강 이남 2개 권역으로 2단계에 걸쳐 재배치하고 통합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였다"며 "양쪽 국방장관은 1단계가 가능한한 조기에 착수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2단계 재배치 시기는 2003년 5월 14일 및 10월 20일의 한·미 정상 공동발표문에 포함된 원칙에 따라 양국 최고 지도부가 결정할 것이라는 점을 재확인하였다"라고 말했다.

이는 1단계로 용산의 미군을 오산·평택으로 이전하고, 한강 이북의 각 군소기지에 흩어져 있는 주한 미 2사단을 동두천과 의정부로 모은 뒤, 2단계로 오는 2006년 이후 한강 이북의 주한 미 2사단을 오산·평택으로 이전한다는 말이다.

주한 미군은 중화기로 무장한 현재의 '기계화 보병사단'에서 스트라이커 여단과 같은 가볍고 기동성있는 부대로 변모하게 된다. 지난 6월 폴 월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주한 미군의 전력 증강을 위해 110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는 말은 바로 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결국 주한미군은 이제까지 대북 억제전력에서 동북아 지역의 중국과 러시아 등 모든 위협세력에 대항하는 전력으로 바뀐다. 오산·평택은 당연히 미군의 동북아사령부가 된다.

한국이 왜 기지이전 비용 부담하나

이처럼 용산 기지에서 한미연합사와 유엔사가 이전하는 것은 미국의 군사전략에 따른 재배치일 뿐이다. 이런데도 국방부 공식 추산으로도 30억~50억달러에 이르는 기지 이전 비용 전액을 한국이 부담하는 것이 문제다.

애초 용산기지 이전 비용을 한국이 다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는 지난 1988년 노태우 정권이 먼저 미군기지 이전을 요구했다는 것에 근거를 뒀다. 대신 한강 이북의 주한 미 2사단 군소기지가 동두천과 의정부에 통합되는 것은 미군 자체의 계획에 따른 것이어서 미군이 비용을 부담했다.

그런데 오산·평택에 용산 미군들뿐 아니라 2006년 이후 한강 이북의 미 2사단까지 옮겨오게 된다면 한국 정부가 오산·평택으로의 기지 이전 비용을 전액 부담할 필요가 없다.

미군의 필요에 따라 주한 미군의 위상이 대북 억제전력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하고 필요할 경우 다른 지역으로 전개되는 '신속배치군'으로 바뀌는 만큼, 오히려 한국이 주한 미군 주둔 비용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런데 한국 여야 의원들은 유엔사와 연합사의 용산 잔류를 위해 미국이 주장한대로 기존 용산 기지 면적의 30%가 넘는 28만평을 그대로 주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혼란에는 노무현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도 한몫하고 있다.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지난 4일 국방부가 벌인 해프닝이다.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남대연 국방부 대변인은 4일 "최근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가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중장)에게 한미연합사와 유엔사의 한강 이남 이전방침을 전달해 왔다"고 브리핑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2시 차영국 국방부 정책실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지난달 17일과 18일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 이어 19일 리처드 롤리스 부차관보를 면담한 이후 미국으로부터 어떤 통보도 받지 않았고 추가 협의도 없었다"며 남 대변인 발표를 정면으로 부인했다. 남 대변인도 "롤리스 부차관보가 어떤 통보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국방부의 공식입장"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미 지난달 26일 토마스 허바드 주한 미 대사가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용산에서 유엔사와 한미연합사를 완전 이전하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국방부가 연합사와 유엔사의 오산·평택 이전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는 보도는 여러차례 나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날 국방부가 벌인 해프닝은 단순한 '실수'라고 보기 어렵다. 유엔사와 연합사의 한강 이남 이전이 합의된 마당에 그대로 발표하기에는 논란이 일 것으로 보여 '여론 떠보기용'으로 해프닝을 벌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덕수궁터에 미 대사관의 신축을 허용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한번도 공식적으로 이를 허용한다고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국내언론에는 정부나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덕수궁터에 미 대사관 신축을 허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것 역시 정부가 덕수궁터에 미 대사관 신축을 허용하기로 내부방침을 정하고 국민들의 반발을 의식해 전형적인 '여론 떠보기' 행동을 벌인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해 10월 1일 세종로 미대사관안으로 들어가 성조기를 불 태우려던 한 대학생이 경찰에 연행되면서 "살인미군 처벌하고 여중생의 한을 풀자"등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해 10월 1일 세종로 미대사관안으로 들어가 성조기를 불 태우려던 한 대학생이 경찰에 연행되면서 "살인미군 처벌하고 여중생의 한을 풀자"등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국 정부 태도 분명히 해야

한국 정부나 국회 등 정치권이 주한 미군의 위상 변화와 기지 이전에 대해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큰 문제다. 주한 미군은 남한에 들어온 후 지금까지 최소한 5번 이상 한국 정부의 동의없이 그들의 필요에 따라 일부 철수하거나 감군됐다.(아래 박스기사) 이 때마다 한국 정치권은 미국에 애원하는 것 이상의 행동을 취한 적이 없다.

주한 미군은 앞으로 '스트라이커 형 부대'로 바뀔 것이며 감축도 불가피하다. 이미 지난 10월 18일 미 AP통신은 미 행정부 관계자와 안보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미 행정부가 기존 3만7000명의 주한 미군의 3분의1 가량인 1만2000명을 감축할 계획"이라며 "한국 정부와 세부사항을 협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협상이 성사될 경우 잔류 병력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어느 곳이든 파견될 수 있는 '원정군' 성격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대해 지난 10월 20일 태국에서 열린 아펙 회의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하급관리들이 자신들 생각을 함부로 얘기하는 것이지 미국정부의 공식결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미 행정부의 일시적인 변명에 불과했다. 또 다른 한국 정부의 한 관계자는 "AP통신 보도가 정확하게 맞다"며 "오히려 최근 미국은 원래 계획했던 1만2000명보다 더 많은 병력을 감축하겠다는 뜻을 한국에 전달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폴 월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도 지난 여름 미 의회 증언에서 "더 이상 미군이 정치적인 '인계철선'으로 비무장 지대 인근에 배치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17일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 참석했던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주한 미군의 유연성"을 강조했고, 이에대해 외신들은 "미군은 더 이상 비무장지대 인근에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주한 미군의 병력 감축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국은 이미 지난 1992년 동북아시아전략구상(EASI)을 발표하고, 2단계로 한국에서 7000명 등 1만5000명을 감축하고, 3단계에서 '한국주도의 방위'를 확립하고, 한미 연합사령부를 해체하고 소규모의 미군만 잔류시킨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북핵위기 때문에 1단계만 실행되고 중단됐을 뿐이다.

용산기지에서 한미연합사와 유엔사 등 주한미군 지휘부 전체가 오산·평택으로 이전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주한 미군이 동북아 기동군으로 변화하면 이들은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하게 되고, 현 한미 군사동맹상 한국 역시 이들 나라를 불필요하게 군사적 적대세력으로 설정하게 된다.

오히려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주장하듯, 한미연합사령부와 유엔사령부가 한강 이남으로 이전한다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자기들 필요에 따라 왔다가 갔다가... '멋대로' 주한미군
주한미군 주둔-철군 58년사

▲ 지난 8월 7일 한총련 소속 대학생 12명이 미군들이 훈련중인 경기도 포천 미8군 종합사격장(영평사격장)에서 기습시위를 벌이자 미군들이 학생들의 재진입을 막기 위해 훈련장 입구를 지키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군 철수를 반미 감정 탓으로 돌리거나, 반대로 한국이 애원하면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반미시위가 없는 나라'라는 말을 듣던 1980년대 이전에도 주한 미군은 한국과 아무 상의없이 최소한 5번이나 철수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재임중에는 두 번이나 미군이 철수했다. 보수 인사들의 논리대로라면 박 전 대통령은 "월남전에서 한국군 5000명이 전사하는 피를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미군 수만명이 갑자기 빠져나갈 정도로 한·미 관계를 잘못 풀었다"는 비판을 받아야한다. 당시는 촛불시위도, 전투기 도입을 둘러싼 논쟁도 없었다.

주한 미군이 주둔하는 것은 무엇보다 동북아지역에서의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다. '한국 지키기'가 여기에 포함되는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미 행정부의 동북아전략에 달려있다. 따라서 주한 미군 철수에 한국의 뜻이 반영될 여지는 거의 없다.

미군은 한국민의 뜻과 상관없이 이땅에 들어왔고, 역시 한국민 뜻과 상관없이 나갔다. 첫번째는 한국전쟁 직전이다. 미군은 1945년 9월 8일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한반도에 첫발을 디뎠고 그해 11월에는 7만여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낮게 봤다.

이승만 대통령은 조병옥 특사를 미국에 파견하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미국은 1949년 3월 22일, 그 해 6월 30일까지 500명의 군사고문단(KMAG)만 남기고 완전 철군하기로 결정했다. 이 방침을 한국에 통보한 날은 철군을 불과 한달보름 앞둔 5월 17일이었다.

두번째는 한국전쟁 휴전과 미군 철수다. 한국전이 터지자 미군은 돌아왔고 1953년 32만5000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한국전쟁 종결을 원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북진통일론'으로 맞섰지만, 7월 27일 휴전은 이뤄졌다. 1954년 3월부터 미군은 철수를 시작했고 1957년에는 2사단과 7사단 7만명만 남았다.

세번째는 리처드 닉슨 행정부 때의 미군 철수다. 1969년 7월 월남전이라는 수렁에서 허덕이던 미국은 '아시아는 아시안의 손으로'라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닉슨은 이미 1969년 3월 주한 미군 2만명 철수계획을 세웠지만 이를 한국에 공식 통보한 것은 1970년 7월 6일이었다.

극심한 충격을 받은 박 대통령은 "한국군 5만명이 베트남에 있는데 미군 2만명을 빼가면 북한이 오판한다"고 강력하게 반대했다. '미군 철수 반대 국회결의', '내각 총사퇴'라는 배수진까지 쳤지만 소용없었다. 미국은 1970년 후반기부터 1971년 3월까지 10개월만에 미 7사단과 3개 공군비행대대를 빼내갔다. 비무장지대에 있던 미 2사단은 후방으로 이동했고 총 병력수는 4만3000명 안팎으로 줄었다.

남베트남은 패망 직전인데 미국은 이를 돌보지않았고 주한 미 7사단도 철수시켰다. 미국은 '빨갱이'수괴이자 한국 전쟁 때 유엔군의 승리를 좌절시킨 '중공'과 수교를 추진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은 "언제 미국이 한국을 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돈 오버도퍼가 쓴 <두개의 한국>에는 "(당시 한국 핵무기 개발 책임자인) 오원철은 박 대통령은 주변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핵카드를 원했던 것 뿐이라고 밝혔다"는 내용이 있다. 남한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이유가 똑같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네번째는 지미 카터 행정부 때의 미군 철수다. 1977년 카터 행정부는 1980년까지 주한 미군 주요 전투 병력을, 1982년까지 모든 병력 및 핵무기의 완전 철수를 추진했다. 이같은 결정은 한국 정부에 1978년 7월 26일 통보됐다.

한국 정부는 역시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카터는 "미군 철수는 한국 정부와의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1978년 북한 전력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는 CIA의 보고서가 나온 뒤 1개 여단(3000명)만 나가고 1979년 2월 철군은 중단됐다. 이후 주한 미군은 3만9000~4만3000명 수준을 유지했다.

다섯번째는 1990년 4월 미 국방부가 내놓은 '동아시아 전략구상'에 따른 철수다. 1단계(1~3년차)로 주한 미 지상군 5000명과 공군 2000명을 감축하고, 2단계(3~5년차)로 평시작전통제권을 한국에 반환하며, 3단계(5~10년차)로 미군은 최소 부대를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군 7000명을 철수하고 2단계 감축과정에서 북핵문제로 추가 철수는 중단됐다.

여섯번째는 최근의 주한미군 재배치다. 한·미 양국은 '재배치'라는 형태를 강조하지만, 이미 1만2000명 정도의 주한 미군이 감축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주한 미군 감축 소문이 나돌고 해외 언론에서 기사화된다. 한국 정부는 "사실이 아니다"며 겉으로 부인하고 뒤에서는 미국에게 애걸복걸한다. 그러다 몇 달도 안돼 미군 감축이 발표되는 '공식'은 지난 55년간 전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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