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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2002년 3월 2일을 디데이로 잡았다. 나에게는 니코틴과 결별하는 게 전투나 다름이 없기에 디데이라는 말을 썼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내가 담배를 입에 댄지 꼭 만 37년이 되는 날이었다. 약국에서 판매하는 금연 보조제는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무모하게 결심 하나로 금연에 도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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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초 오상순 시인이 돌아가시기 직전, 입원 중이었던 적십자병원 병상으로 찾아뵌 일이 있었다. 그때 오 시인은 탈진한 상태로 거의 의식을 잃고 계셨다. 그런데도 평생을 태워온 흡연의 습관으로 금붕어가 호흡하듯 계속 입술을 오므려 공기를 빨아들인 후 내뿜으셨다.

나는 그 기억을 되살리면서 흡연은 습관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도 37년간 담배를 빨아들이던 입버릇을 달래기 위해 껌과 사탕 그리고 은단을 준비했다.

2002년 3월 2일 날이 밝았다. 잠에서 깨면 맨 먼저 하는 일이 담배를 찾아 현관 밖으로 가서 막 배달된 신문의 머리기사를 훑는 일이다. 그렇게 기분 좋게 태우고 들어와서 세수하고 등교 준비해서 버스정류장으로 가면서 또 한 대 입에 물었다.

그런데 그런 수십 년간 일상화된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자니 아침부터 짜증이 나고, 생활리듬이 흐트러진 실타래처럼 꼬이기 시작했다. 습관적으로 담배를 넣었던 주머니로 가방으로 손이 갔다.

동네 들머리 단골 담배 가게를 애써 외면하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출근길에 도로가 쓰레기 통으로, 남이 버린 담배공초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눈길이 갔다.

학교에 도착한 후 휴게실 근처는 얼씬도 안 했다. 개학식을 마치자 니코틴 마귀가 심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흥! 골초 박도 너 이놈, 30년 친구인 네가 나를 하루아침에 배반하겠다고? 의리 없는 놈!!!”
“잘못했습니다. 곧 한 대 빨겠습니다.”
담배를 태우는 동료에게 가서 ‘한 대만’ 하고 구걸하려다가 꾹 참았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자 드디어 니코틴 마귀의 본격적인 심술(금단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황사현상에 학기 초라 빡빡한 업무 스트레스까지 겹쳐서 가슴이 빠개지듯이 아팠다. 그러면서 정신이 몽롱한 채로 아무에게나 짜증부리고 화를 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한방 병원을 찾았다. 금단 현상이라고 침을 주었다.

침을 맞고 나오면서 담배 가게를 지날 때 딱 한 갑만 사서 태울까 하는 생각이 굴뚝 같이 일었지만 여기서 지면 나란 놈은 참 한심한 놈으로 내 인생은 끝장이다. 담배한테도 지는 놈이 무슨 문학을 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약한 의지로 무엇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담배가게를 그냥 지나칠 수 있었다. 누구와 싸우는 게 아니라 나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었다. 깨어 있는 한 50분마다 정확하게 일정량의 니코틴이 37년간 내 몸에 투여됐다.

그런데 37년 만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단칼에 니코틴 공급이 한 순간에 끊어져 버렸다. 그동안 내 몸의 말초 신경은 담배 연기에 매우 익숙해 있었고, 일정한 량의 니코틴이 공급되어야 내 몸의 각 기관은 정상 가동을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무식하게 공급되지 않자 내 몸의 각 기관은 뒤죽박죽이 됐다.

삼수 갑산을 가더라고 금연을 포기하고픈 생각과 이번이 금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요, 나 스스로에 대한 시험이라는 생각이 하루 종일 다투었다. 그때마다 금연 의지가 흡연 의지를 억눌렀다.

한 달이 지났다. 휴게실도 가지 않고, 퇴근할 때 교사(校舍)만 빠져나오면 물던 담배도 보이지 않자, 동료 교사들로부터 축하 겸 확인 인사를 자주 받게 되고, 소문을 들은 졸업생들까지 ‘선생님, 정말입니까? 참말로 끊으신 겁니까?’라는 전화도 받게 되자, 이제 다시 담배를 태우면 웃음거리가 되고 나이 값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달이 지나자 가슴 아픈 금단 현상이 조금씩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밥맛이 더 살아나고 체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심심한 입을 달래기 위해 껌을 자주 씹고 군것질도 많이 했다. 너무 껌을 많이 씹어서 이빨이 아플 정도였다.

마침내 껌도 은단도 사탕도 입에 넣지 않고도 견딜 수 있었다. 금연 3개월 후 목욕탕에서 체중을 달아보자 4킬로그램이나 늘었다. 체중이 늘어나는 것은 안 좋은 현상이지만 체중을 줄이기 위해 다시 흡연을 할 수는 없었다.

금연 6개월이 지나자 만나는 사람마다 안색이 좋아졌다는 말과 함께 이제는 내 몸에서 담배 냄새가 사라졌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금연을 성공했다고 장담은 금물이었다. 한 금연에 성공한 사람은 2년은 지나야 장담할 수 있다고도 했고, 어느 누구는 눈 감을 때까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는데, 나도 후자의 주장에 동조하고 싶다.

솔직히 금연한 지 18개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때때로 담배 연기의 향수를 몹시 느끼고 있고, 누군가 맛있게 담배 태우는 모습을 보면 그에게로 가서 한 대 달라고 손을 내밀고 싶은 충동을 여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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