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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청계천 복원공사가 시작된 지 한 달입니다. 아직 상판 철거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계획대로라면 2005년 9월경이면 서울 한복판에 물이 흐르는 하천이 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막상 공사가 시작되면서, 상인 이주 대책 등 그동안 지적되어 온 수많은 문제들의 경우 해결은커녕 수면 아래로 숨어 버렸습니다. 언론을 비롯한 일반인들의 관심사에서 뒤로 밀리게 되었습니다.

'서울 도심의 자연 하천 복원'이라는 모토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청계천 사람들. 공사 시작 전에는 그나마 관심을 갖기도 했던 언론의 포커스도 실제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보다는 청계천 복원 '사업'에만 맞춰져 있는 지금, 과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사람, 청계천 복원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나 이후에도 생계에 적잖은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영세 자영업자와 기술자, 노점상 등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비록 간접적이나마 지난 개발시대의 역사를 이해하는 코드가 될 것입니다. 또한 현재 우리 사회 안에서 인간 혹은 개인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며,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직접 청계천으로 들어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겠습니다...<필자 주>



근대화를 지탱해준 청계천 금속·기계·공구 상가

▲ 청계고가 철거 작업은 이미 시작되었다.
ⓒ 권기봉
비가 온다더니 날은 덥기만 하고 습도 또한 높았다. 짐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와 손수레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청계천. 특히 열기가 더하는 곳이 있었으니 청계천로와 세운상가가 만나는 곳.

지난 7월 1일 청계천 복원 공사가 시작된 이후 상판 철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상판 구조물을 작게 절단해 운송하는 광경이 자못 신기로운 듯 행인이나 주변 상인 할 것 없이 시선은 청계고가도로 상판에 꽂혀 있다. 그러나 순간 느껴지는 우수. 그랬다. 이 풍경을 보는 상인들로부터는 서울 도심에 하천이 생긴다는 데서 오는 기대감보다 앞날에 대한 걱정 섞인 표정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세운상가나 대림상가를 제외하고는 개발다운 개발의 손길이 아직 거쳐가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청계천 금속·공구 상가 일대는 좁기도 좁지만 구불구불한 나머지 두세 사람이 마주 걸어가지 못할 정도의 실핏줄 같은 골목들로 연결되어 있었다.

을지로3가를 중심으로 한 이 일대에는 판재를 유선형으로 만드는 이른바 '시보리' 공정이나 주물을 만들 때 미리 만들어 모델 역할로 쓰는 '금형' 공정, 재료에 힘을 가해 구부리거나 자르는 '프레스' 공정 등을 하는 기계와 공구, 금속 관련 작업장이 몰려 있는 곳이다.

▲ 청계천 골목의 풍경. 금속·기계·공구 상가가 밀집해 있는 이 곳은 실핏줄 같은 작은 골목들로 연결되어 있다. 골목과 야외 간이 소변기.
ⓒ 권기봉
서울 도심 안에 이런 작업장들이 있는 것이 의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때 '한강의 기적' 시대를 거치며 근대화를 지상 목표로 내걸었던 상황에서 이곳 청계천 일대의 기술자들은 대단위 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계나 부품, 사회에서 필요로 하던 각종 생활 용품을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낼 수 있던 몇 안 되는 집단이었다.

"사람은 유머러스한 면이 있어야지"

이제 서울에서는 보기 힘들어진 몇 채의 적산 가옥(일제가 패망하면서 남기고 간 당시의 집)과 70년대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듯한 간판과 작업장, 채 0.5평도 안 되는 야외 간이 소변기를 지나 다다른 곳은 중구 을지로3가 202-2번지에 위치한 한 금형 작업장. 이용진 대표(금천구 시흥동·52)가 운영하는 '대진정밀'이다.

▲ "요샌 그냥 장기나 두는 게 편해." 왼쪽이 이용진 대표.
ⓒ 권기봉
오후 3시 20분, 유리문을 열고 9평 남짓한 작업장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하얀 형광등 아래 멈춰선 기계들과 장기 삼매경에 빠져있는 이 대표와 그의 친구.

"요샌 장기 두는 게 일이지 뭐. 일감도 많지 않고. 그렇다고 내기 장기는 안 둬. 여기(청계천)서 망해나간 사람들 대부분이 도박 때문이거든."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일단 기다리란다. 한 20분쯤 흘렀을까. 장기에서 이긴 이 대표는 뭐라 먼저 말을 건네기도 전에 대뜸 "이번엔 뭐야?"라고 묻는다. 그동안 청계천 복원 공사와 관련해 이들을 취재하려는 기자나 사진작가 등에게 적잖게 시달린 듯한 모습이다.

▲ 이용진 <대진정밀> 대표와 그의 작업장.
ⓒ 권기봉
"아, 그거? 철기시대를 쓸 때 그릇 '기(器)'자를 쓰잖아요. 근데 난 기계를 다루는 사람이니까 기계 '기(機)'자로 바꿨지. 어때, 괜찮지?"

출입문에 '철기시대(鐵機時代).com'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무어냐는 물음에 답하는 이 대표. 엄숙함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말 한 마디마다 위트와 재치가 묻어 나오는, 그는 그랬다.

경북 문경 출신인 이 대표는 71년 상경해 관수동 평화은행 자리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형의 중매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한 것이 79년.

"내가 결혼을 79년 10월 28일에 했거든. 그때가 언젠 줄 알지? 박정희가 26일에 죽었으니 계엄령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지. 그래서 결혼식을 신촌에서 집회 신고를 하고 했다네."

그는 현재 스스로 "무섭다"고 평하는 아내와 금천구 시흥동에 살고 있는데, 슬하에 숙명여대 미대 졸업반인 큰딸과 고3수험생인 작은딸을 두었다. 그런데 딸들이 다 남자친구가 있고 똑똑한 것은 좋은데 아내가 유머를 모른다고 불만이다. 사람이 유머러스하면 좀 좋겠느냐면서. 그래서일까? 앞으로 사위가 될 사내라면 술도 좀 하고 얘기도 통해야겠지만, 일단 유머는 기본이란다. 그래도 신혼 때를 생각하면 아내에게 참 고맙다는 이용진 대표.

"일하다 보면 내 몸에서 녹 냄새가 나는지 잘 몰라. 동료들도 잘 모르고. 그런데 하루는 집에 가서 포옹 신고를 하는데 아내가 녹 냄새를 맡더군. 고마웠어. 내 존재를 알아주니 말이야."

동생에게 버니어 캘리퍼스로 꼬집혀가며 배운 금형

▲ “그래도 내가 금형 일을 시작했는데, 이왕 하는 거 한번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지.”
ⓒ 권기봉
그가 대진정밀이라는 개인 사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82년이다. 71년 상경해 월급쟁이 생활을 하다 77년 지금의 금형 일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마침내 82년 창업한 이 대표. 네 명의 직원을 데리고 있었을 때도 있지만 지금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솔로 오너'다. 실제로 금속·기계·공구 상가가 발달되어 있는 이 근방에는 적잖은 작업장들이 1인 기업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근데 이 일 배우는 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막내 동생이 일찍이 이 일을 하고 있던 터라 그 애한테 배웠어. 참 많이 애먹었지."

"버니어 캘리퍼스(원형으로 된 물체의 안과 바깥 지름을 재는 기구)를 다 쓴 뒤에 프레스 기계 위에 올려놨는데, 갑자기 그걸 집어서 날 막 꼬집는 거야."


듣자 하니 버니어 캘리퍼스의 날이 예리해 괜히 기계 위에 두었다가 떨어뜨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끝이 부러져 못쓰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생담을 기대했지만 에피소드로 맞받은 그는 그러나 기구도 부족하고 별다른 교육 시설도 없던 상황이어서 기술을 배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기억한다.

"그래도 내가 금형 일을 시작했는데, 이왕 하는 거 한번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지."

▲ IMF 이후 불황에 시달리다가 지금은 청계천 복원 사업 때문에 일감이 많이 줄었다.
ⓒ 권기봉
쇠가 쇠를 깎는다는 게 너무 신기해 금형 일을 시작했다는 이 대표. 수더분한 인상과는 달리 독한 면이 있었던 것일까? 주변에서 6명이 함께 공부하며 도전했는데 유독 그 혼자만 선반기능사 1급 자격증을 획득했다. 1982년의 일이다.

이후 아무리 한가해도 주 50시간 이상 일하면서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곡면을 깎을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는 등 독창성 있는 일 처리로 많은 일거리를 따올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경기가 안 좋아 거래처가 4개로 줄었지만 잘 나갈 때는 17개 업체와 거래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 한 가지 일에 몰두해 오면서 그에게도 아쉬웠던 순간이 있었을 터.

식지 않는 학구열, 그는 만물박사였다

학창시절, 그의 꿈은 원래 화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가정을 잘 돌보지 않는 등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그 꿈을 펴기에는 힘들었다고 회상한다. 아쉬움 탓일까? 일하면서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었을 것 같지만, 영어와 한자는 물론 일본어와 러시아어까지도 공부해 왔다. 조선 후기의 서화가 소치 허유(1809~1892)와 동양화가 의재 허백련(1891 ~ 1977)도 그의 관심사 목록에 들어 있다.

▲ 영어와 한자는 물론 일본어와 러시아어까지도 공부하는 이용진 대표. 조선 후기의 서화가 소치 허유와 동양화가 의재 허백련도 그의 관심사 목록에 들어있다.
ⓒ 권기봉
"어렸을 때 하고 싶은 공부를 충분히 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예전에 관수동에서 일할 때 한강에서 잉어잡이 하던 노인을 알았거든. 한번은 그 노인이 죽다 살아난 적이 있었는데, 그러더군. 죽을 때 죽더라도 정말 하고 싶은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이야."

그 학구열을 증명이라도 하듯 작업장 한쪽에 놓여 있는 탁자 위에는 글씨 연습을 한 듯한 공책들이 널려 있다. 사자성어 쓰기 연습을 한 흔적도 공책에 그득하고, 신문에 난 칼럼이나 기사 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스크랩해 놓기도 했다. 책을 읽다 발견한 멋진 구절을 옮겨두기도 했고, 영화를 보다가 마음에 두는 대사를 적어놓기도 했다. 특히 작업장 벽면에 걸려 있는 작은 칠판에 쓰여 있는 한 마디.

▲ "난 자신을 동정하는 야생동물을 보지 못했다. 추위에 얼어서 떨어지는 새조차도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다. - G. I. 제인”
ⓒ 권기봉
"난 자신을 동정하는 야생동물을 보지 못했다. 추위에 얼어서 떨어지는 새조차도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다. - G. I. 제인"

동네 사람들 청첩장이나 탄원서 같은 것을 도맡아 써준다는 그는 운동에도 관심이 많단다. 청계천 상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축구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비단 축구뿐만 아니라 테니스와 탁구, 스킨스쿠버까지 가리는 운동이 없다. 앞으로 초경량 비행기도 운전하고 싶지만 아내가 반대하는 탓에 아직 초경량 비행기를 타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탈 것이라는 게 그의 다짐.

언뜻 보아도 만물박사에 운동 마니아 같아 보이는 이 대표. '한마음회'라는 자선단체에도 힘을 보태는 등 여러 방면으로 관심이 많고 마음 씀씀이가 넓은데, 특히 요즘에는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에도 한번 나가 보고 싶단다.

"장기계획? 확실한 건 없어"

식지 않는 호기심과 유머가 그의 표정을 밝게 해주지만,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기색이 엿보이기도 한다.

"IMF 때 경기가 왕창 나빠지더니 이후에도 복구가 잘 안 되더라고. 87년도에만 해도 잘 나갈 때는 월 순이익이 800만원 정도 할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200만원에 많이 못 미쳐. 중국에서 만들면 단가가 우리의 7분의 1이나 10분의 1 밖에 안 되니 경쟁력도 점점 사라지고. 지금은 일거리도 많이 줄어서 소량 다품종 거래밖에 못해. 게다가 수입이 일정한 것도 아니고. 하긴 다 힘들다지만.”

▲ "서로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거지.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옮기라고 하면 인맥이나 네트워크가 와해될 수밖에 없잖아.”
ⓒ 권기봉
그러나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청계천 복원하면서 더 안 좋아진 것도 사실이지. 이 동네 사람 아니면 지금도 청계천에서 이런 사업하는 줄 몰라. 전화해서는 요새도 일 하냐고 묻는 경우도 있고."

청계천 복원 공사가 시작되면서, 아니 시작되기 전부터도 영세 자영업자나 청계천에서 일하는 기술자, 노점상들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자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막상 복원 공사가 시작되면서 상인들이 조직한 단체는 하나된 힘을 내지 못하고 목소리를 통일시키지 못하는 듯한 양상까지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나도 몇 번 데모 나가고 그랬어. 당장 먹고 살 생계가 걸려 있는 문제잖아. 당장 여기 떠나면 먹고 살 기가 힘든데."

"장기 계획? 확실한 건 없어. 청계천에 들어온 지 26년째인데 솔직히 다른 데(서울시에서 이전 장소로 물색중인 송파구 장지동을 말하는 듯했다)로 옮긴다는 게 쉽나? 우리 같은 금형이나 기계 산업은 옮기면 망하기 십상이야."


우스개 같지만 이런 말이 있다. '청계천에서는 탱크도 만든다.' 그에 질세라 "청계천에는 부품만 갖다 주면 잠수함도 만든다'는 말도 있다. 물론 실제 탱크 혹은 잠수함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 대표가 말하는 "금형이나 기계 산업은 옮기면 망하기 십상이야"라는 말의 의미는 여기 있을 것이다. 서로간의 연계를 통해 재료와 부품만 준비되면 무엇이든지 완성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청계천의 구조와 기술자들의 자부심과 능력. 그러나 그 체계가 흐트러질 때에는 말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기계나 금형 같은 산업은 서로 맞물려서 돌아가거든. 주문 받아서 재료 구해서 만들고 납품하는 게 이 동네 안에서 완벽하게 돌아가거든. 서로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거지.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옮기라고 하면 인맥이나 일하는 네트워크가 와해될 수밖에 없잖아. 시간이 지나면 적응을 하겠지만 어디 그 공백을 서울시나 정부에서 메워주나?"

"물론 도심 안에 이런 산업이 들어와 있다는 거, 우리 스스로도 지금 같은 청계상가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봐. 지금 분위기야 그냥 될 대로 되라, 자포자기지 뭐."

"요샌 그냥 장기나 두는 게 편해. 뭐 사람들도 복원 공사나 이전 문제에 대해서 별 말도 없고. 공동 피해자들이니 서로 말을 피하는 건지도 모르지."


그것은 희망이었을까?

자신의 귀로 들어온 적은 없지만 오토바이 헬멧이 노란색이니 '옐로 캡'으로 불러달라던 이용진 대진정밀 대표. 그는 앉아서 쉴 만한 의자 하나 작업장에 두지 않고 근 26년을 청계천에서 살아왔다. 지금도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내리 10시간을 일하고 있다는 이 대표는 그동안 힘들었던 순간도 참 많았고 정말 기뻤던 순간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지금처럼 앞일이 캄캄해 작은 계획조차 하기 힘든 상황은 처음이란다.

▲ 허름한 식당 한 켠에서 소주 잔을 앞에 두고 그가 했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 권기봉
청계고가도로 상판 철거 작업을 지켜보던 상인들의 눈에서 보았던 우수. 자신의 일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자신감 있고 또 그렇게 살아왔던 이용진 대표의 털털한 웃음 속에 가려져 있던 그 알듯 모를 듯한 표정도 어쩌면 앞서의 상인들로부터 느꼈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간다.

"우리야 어차피 장지동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지만 의욕은 상당히 줄어들 거야"라며 "이제는 그저 서울시의 처분을 기다릴 뿐"이라고 말하는 이용진 대표.

그러나 언뜻 지나가는 말로 "앞으로 지장수(해독작용이 있는 황토물의 일종) 사업을 해보고 싶다"던 그의 말은 무슨 의미였을까. 희망? 의욕? 허름한 식당 한 켠에서 소주잔을 앞에 두고 그가 했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앞으로 2년 동안 내가 어떻게 소멸해가는지 봐 두게. 그게 청계천의 역사일 거야."

세운상가 일대 4만여평 헐릴 듯
‘대진정밀’ 역시 포함 돼

▲ 파란색 부분이 재개발될 지역이다. 붉은점이 대진정밀 위치.
ⓒ네이버

서울시가 세운상가 일대 지주들을 대상으로 비공개 사업설명회를 갖고 세운상가 일대에 대한 재개발 의사를 지난 7월 29일(화) 밝혔다.

빠르면 2008년 하반기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이는 이번 사업은 지난 1967년 들어선 세운상가 및 대림상가를 대체하고 그 주변에 퍼져 있는 작은 규모의 상가를 대규모화하는 것으로, 이미 지난 82년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바 있지만, 지주와 임차인 사이에 이해관계가 얽혀 추진되지 못하고 있었다.

세운상가와 대림상가 주변 4개 블록 4만4천여 평을 정보통신(IT) 단지와 귀금속단지, 도심공항터미널 및 주거단지, 녹지로 재편하겠다는 이번 사업은, 사업 진행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경우 이르면 내년 하반기 착공될 전망이다.

도심 고밀도화를 막기 위해 25층 이하, 용적률 500~600%로 제한할 계획으로 알려진 이번 사업의 대상지 안에는 금속, 기계, 공구 산업체 및 귀금속 상가들이 밀집해 있으며, 대진정밀 역시 이 지역 내에 위치하고 있다.
/ 권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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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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