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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최상의 올리브 나무 https://omn.kr/2ajws에서 이어집니다.

"내년에 다 뽑을 겁니다."

어허... 이 무슨 말인가요? 들어보니 북쪽 지역에서 처음으로 한 번 석류 재배를 시도해 봤단다(포르투에서 같이 올 때부터 점심 식사때까지 6시간 동안 집중대화해 본 결과, 주아큉은 호기심 대왕에 '해 봅시다!' 마인드에, 활동성과 에너지 갑인 캐릭터였다. 북쪽에 석류 돼? 왜 안돼? 해보자, 대충 이런 전개였던 것이다...).

사전 조사도 하고, 자문도 구하고, 공부도 하고 한 번 해보기로 해서 9헥타르를 일단 심어 봤다고. 묘목을 스페인 기업에게서 샀는데, non-GMO 종에 이베리아 토종으로 이쪽 기후에 적합한 종이라고 추천받아서 나름 거액을 지출했단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 스페인 묘목 기업이 사기 쳤다고 말하면서 약간 목소리가 올라가는 듯하다가 금세 어깨를 으쓱하며 웃는다.

"Well, it's farming. You always learn."
(농사가 그렇죠. 항상 (그렇게) 배우는 겁니다.)

아쿠실라 농장 한가운데 선 주아큉 CEO "Well, it's farming. You always learn." 농사가 그렇죠. 항상 (그렇게) 배우는 겁니다.
아쿠실라 농장 한가운데 선 주아큉 CEO"Well, it's farming. You always learn." 농사가 그렇죠. 항상 (그렇게) 배우는 겁니다. ⓒ 라정진

그리고 막상 해보니, 석류가 생각보다 물을 많이 먹기도 했단다. 안 그래도 척박한 땅, 젊은 올리브 나무들에게 갈 물이 모자랄 판이니 석류는 과감히 포기할 거라고.
그래요, 농사도 인생도 다 그렇게 시행착오하면서 배우는 거네요.

석류 나무들에게 마음속으로 안녕을 고하고, 양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지금 북부에 산불이 난리고 매년 산불이 문제인데, 아쿠실라 농장은 어떠냐라고 했더니, 2018년에 산불이 크게 나서 18 헥타르가 탔단다. 5만 5천 평에 달하는 면적이다. 화재보험은 들지 않았냐고 하니, 너무 비싸고 옵션이 거의 없었단다. 겨우 물색해서, 프랑스 보험회사 하나에 연락했더니 터무니없는 보험료를 제시하기에 포기했다고.

"보다시피 우리 농장은 인증받은 오가닉 농장이에요. 유럽 인증 기준에 따라 농장에서의 순환과 주변 환경요소와의 모든 조화, 지속가능성까지 고려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제초제는 당연히 쓸 수 없으니, 풀은 베거나 양들이 먹죠. 그렇게 관리하니 풀이 많고, 보험회사 입장에서 보면 '탈 수 있는 것들'이 많은 셈이죠. '위험성'이 높으니 보험료를 높게 책정했고요."

정부가 제공하는 보조금이나 공공차원에서 단체 특별 보험 상품 같은 것이 있어야 되지 않나라고 했더니, 동의한단다. 하지만... 나 역시 포르투갈 관료주의를 소규모로나마 사무치게 경험한 바, 알겠습니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알겠네요. 주아큉이 말을 이어간다.

"그때 산불로 탄 자리는 정리하고 다시 새 올리브나무를 식재하지 않았어요. 너무 큰 작업이라 엄두가 나지 않았고, 뿌리는 다 살아있었거든요. 자연스럽게 다시 가지가 돋아나길래 자라도록 놔두었습니다. 동네 농부들이 가지도 나고, 열매도 잘 열릴 것이다, 하지만 추수할 때가 문제다, 나무를 털면 충분히 강하지 않은 가지들이 부러질 거라고 했는데... 모르죠, 한 번 두고 봐야죠. 자연은 위대한 회복력을 가지고 있으니..."

동네 농부 아저씨들의 합리적 예상도 맞는 것 같고, 주아큉의 자연 회복력에 대한 기대도 맞는 것 같다. 아무쪼록 환경적 요소가 잘 갖춰져서 건강하게 무사히 추수를 견뎌내고, 다시 튼튼하고 굵게 가지가 자라면 좋겠다.
슈라 트란스몬타나 Churra Transmontana 포르투갈 북쪽 산악지역의 양들. 올리브 새순들을 싹 먹어치운다.
슈라 트란스몬타나 Churra Transmontana포르투갈 북쪽 산악지역의 양들. 올리브 새순들을 싹 먹어치운다. ⓒ 라정진

한참 걸어 드디어 양떼가 있는 곳에 도착. 엇! 남쪽 알란테주 우리 동네에서 보던 양들과는 생김새가 많이 다르다. 거칠어 보이는 털이 좀 더 길고, 뿔도 길게 나 있는 것이 산양 생김새다. 남쪽 양들과는 많이 다르네요라고 했더니 그렇단다.

"슈라 트란스몬타나 Churra Transmontana에요. 울은 의류용으로 적합지 않습니다. 얘네들은 올리브나무의 싹을 부지런히 먹어치우는 역할을 하죠."

아하! 알겠다. 사업상 포르투갈과 한국을 왔다갔다 하는 나는 포르투갈 남쪽에도 집이 있다. 그곳에 올리브 나무가 한 200그루 정도 있는데, 올리브 나무 아래에서 항상 새로운 싹이 튼다. 보기엔 무척 예쁘고 상큼해 보인다. 하지만 올리브 열매와 나아가 본체에는 좋지 않다. 새로운 싹을 틔우고 크는데 많은 영양과 물이 필요하기 때문.

제때 새순을 제거해 주지 않으면 열매가 제대로 맺지 않을 뿐더러, 본체 나무도 서서히 마른다. 새 순은 야금야금 왕성하게 자라는지라, 이를 잘라주는 것도 일이다. 이 때문에 우리 집에서도 항상 양을 몇십 마리 놓아길렀다. 양들은 이 올리브 새순을 무척 좋아하기에 몇십 마리 정도를 풀어놓으면 알아서 맛있게 잘 먹는다. 잘 먹고 나선 당연히 똥오줌을 잘 싸고, 이는 고스란히 천연비료로 돌아온다. 그야말로 자연의 순환.

215헥타르의 아쿠실라 농장에선 몇십 마리가 아닌 300여 마리가 이 역할을 한다. 밤이 되면 양들이 머무는 축사 역시 무척 큰데, 바닥에 깔아놓은 짚들은 수시로 바꿔준다. 양들의 똥오줌이 진득하게 베인 짚은 베어낸 풀, 가지치기에서 나온 잔여물들과 함께 천연퇴비가 된다.

아름답고 완결되는 순환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아이고야... 실제로 그 일들을 꾸준히 유지하고 관리하려면 보통 일은 아니겠다 싶었다. 단순히 제초제며 농약을 쓰지 않는다와 같은 차원을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농장의 생태계 순환과 지속가능성을 이루려는 주아큉의 노력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양을 만져보고 싶다는 루이지냐를 만류한 후 mill(착유 시설)로 향했다. 올리브는 보통 10월 초순부터 추수할 수 있는데, 정확한 시기는 과육의 상태를 점검한 후 결정한다. 너무 설익지도, 과하게 익지도 않은 상태를 확인한 후 적절한 시점에야 추수할 수 있다. 최상의 과육 상태가 아니면 당연히 최종 오일의 품질에 영향을 주기 때문.

수확한 올리브는 세척하고, 잎이나 불순물을 1차로 제거한다. 이후 품종과 크기에 따라 분류가 이루어지고, 바로 올리브를 압착하여, 약 30분 정도 셰이커shaker를 통과시켜 불순물을 여과한다. 이후 디캔터 원심분리기를 통과시켜, 3,000회 정도의 회전을 통해 페이스트(아래쪽)와 오일 성분(위쪽)으로 분리시킨다.

이 단계에서 비로소 순수한 오일 성분이 추출되는데,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또 다른 종류의 원심분리기를 통과시켜 좀 더 깨끗한(clarified/purified) 오일을 뽑아낸 후, 24시간 동안 실린더 탱크에 머무는데, 이를 통해 미세한 오일 외 액체 성분이 분리되면서 정말 순수한 오일이 얻어진다.

"재래식 올리브 착유는 당연히 이렇게 하질 않았죠. 압착이니, 원심분리기니 다 없었고, 그저 올리브를 으깨는(mashed) 식으로 오일을 짰는데, 당연히 별로 좋은 품질이 아니었습니다."

이 모든 기계화 과정에서 공기와의 접촉은 철저히 차단된다. 산화 방지를 위해서다. 추수와 동시에 바로 착유 과정이 이루어지는데, 밀mill이 바로 올리브 과수원 한가운데 있으니 산화가 될 시간이 없겠다.

또 하나는 온도 조절. 고온에서는 더 빨리 더 많은 오일이 추출되지만, 오일의 풍미와 산화에도 영향을 받는다. 아쿠실라 착유 시설에는 온도조절장치가 있어 이를 세심하게 항상 조절하는데, 18~23도에서 작업이 이루어진다고(흔히 말하는 '저온 압착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은 보통 27도 이하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특유의 아로마와 유효성분을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https://www.oliveoiltimes.com/basics/what-does-cold-pressed-really-mean/84235).

착유 시설 옆에는 저장 창고가 있다. 여기는 아쿠실라에서 생산한 오일뿐만 아니라, 근처 소규모 오일 생산자들의 탱크도 같이 저장되어 있는데, 5헥타르, 5000 리터 등 소규모 지역 생산자들에게 저장 장소를 빌려주고 있다고. 커뮤니티에 대한 일종의 기여란다.

아쿠실라 착유시설 mill 내 소 저장고 지역 커뮤니티의 소규모 생산자들이 저장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아쿠실라 착유시설 mill 내 소 저장고지역 커뮤니티의 소규모 생산자들이 저장할 수 있도록 해 준다. ⓒ 라정진

건물 내에는 1차 분석과 검사를 위한 랩도 따로 있다. 바로 옆 사무실과 회의공간에는 아쿠실라의 기다란 수상 기록도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는데, 주아큉의 말마따나 자랑스러운 '빅 챌린지'(Big Challenge)가 아닐 수 없다. 사실 규모 면에서는 이웃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 밀리는 것이 사실인데, 포르투갈 올리브유의 강점은 무엇일까라고 물으니 바로 답이 돌아온다.

"포르투갈 올리브오일요? 고유성과 독특성이죠. 이탈리아는 가장 올리브오일을 많이 수출하는 나라인 동시에, 올리브오일을 많이 사들이는 나라라는 걸 아나요? 이게 의미하는 바가 뭘까요? 좋은 올리브오일들을 여기저기서 사서 이탈리아에서 가공해서 메이드 인 이탈리로 팔려가는 거죠. 물론 그들은 마케팅하는 방법을 잘 압니다.

스페인 흑돼지 가공육, 하몽 유명한 거 알죠? 스페인 회사들이 포르투갈 흑돼지들을 정말 많이 사 가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는 상업시설이나 처리공장 규모가 크고, 상업화가 더 발달되어 있어요. 포르투갈의 저렴하고 좋은 재료들을 사다가 부가가치화를 하는 거죠. 비난이 아닙니다. 그들은 실력 있는 기업가라는 이야기에요. 포르투갈은 그렇지 못해요. 대신 정말 품질이 좋고 소규모 다양성이 살아있어요."

그 답을 듣자니, 남쪽 우리 집 근처의 올리브 플랜테이션이 떠올랐다. 5년 전인가... 스페인 회사에서 매입한 땅으로 올리브 나무들이 빼곡히 심어져 있다. 농사를 전혀 모르는 자의 눈으로 봐도, 저렇게 심어서 나무들이 숨이라도 제대로 쉬겠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나무들이 빼곡하게 열을 지어 심어져 있다. 크기도 높이도 모두 일정해서, 추수도 쉽다. 커다란 기계 추수기가 한 번 훑어내면 추수가 다 된다.

처음에 거대한 기계 추수기를 봤을 때, 와, 저 변신로봇 같은 바퀴차는 뭔가 싶었는데, 올리브 추수 차라고. 거대 바퀴 사이로 추수 차가 훑으면서 지나가면 올리브가 슈욱하고 빨려들어간다. 그 올리브들은 스페인으로 실려가, 스페인산 올리브유로 세계 곳곳에 팔려나갈 것이다. 스페인산 올리브유가 나쁘다거나 정직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스페인산 올리브유, 좋은 거 무척 많아요! 저 스페인 올리브유, 스페인 음식 좋아합니다!

다만 원물의 추수부터 가공까지 이어지는 동선이 길어질수록, 국경을 넘을수록, 가격은 낮아질지언정, 탄소발자국도 늘어가고, '원물'이 지닌 순수한 고유성이 흐려지는 정도도 높아진다는 것.

아쿠실라 농장 215헥타르 (약 65만평)에 올리브 나무가 가득하다.
아쿠실라 농장215헥타르 (약 65만평)에 올리브 나무가 가득하다. ⓒ 라정진

215헥타르는 무척 넓다. 가운데를 중심으로 조금씩만 돌았는데, 2시간이 걸렸다. 살짝 높은 언덕배기에서 주아큉이 올리브나무들을 사랑스럽게 내려다본다.

"여기요. 밤에는 별이 그야말로 쏟아져 내리죠. 여름엔 아이들과 함께 와서 바닥에 그냥 드러누워 별을 보면서 있죠. 그야말로 star shower에요."

이전에 올리브 타임스와 한 인터뷰 영상을 봤다고, 거기서 '포르투에 있으면 일 년이 그냥 날아가는 것 같고, 아쿠실라 농장에 오면 일 년이 더 새롭게 충전되는 기분이에요'라고 말하지 않았느냐라고 했더니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변함없습니다. 정말 그래요."

'내 심장의 박동' (켈트어로 Acushla는 beat of my heart) 이라는 아쿠실라의 의미대로 열정적으로 농장을 꾸려나가는 주아큉. 멋지고 아름다운 농장을 보여주고, 영감을 나누어주어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포르투갈#포르투갈올리브#유기농#순환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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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포르투갈을 오고 가며 살고 있습니다. 좋은 글, 좋은 사람, 좋은 장소가 가진 힘을 경험해 왔기에,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나 역시 그렇게 자리매김하기위해 애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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