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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각종 언론 매체에서 신세대들의 문해력에 대한 언급이 많다. 그러나 이는 꼭 집어 신세대 뿐 아니라 어린 세대, 어른 세대를 망라해도 될 것 같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문해력 문제. 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이에 대한 예화도 여기에 다 적을 수도 없이 많으니 굳이 나열하지 않겠다. 그러나 애들이고 어른이고 흔하게 사용되는 어휘, 용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의 식자(識者)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한두 가지 원인이 아닐 터, 몇 가지 만이라도 생각을 해 보자.

먼저 스마트폰으로 인해 영상 매체가 두드러지게 늘어난 요즘에는 아이들이 활자로 된 정보를 찾아 스스로 정보의 중요성 등을 판단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영상 한 편 만으로도 정보 얻기가 가능하다는 데 하나의 이유가 있겠다. 짤막한 화면과 설명으로 원하는 내용을 얻을 수 있는데 뭐하러 힘들이고 시간 들여서 긴 문장의 내용을 접하려 하겠는가? 즉 문해력이라는 것은 정보를 찾는 과정에서 발달할 수 있는 능력인데, 이제는 이 과정 없이 영상 한 편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문해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급격하게 디지털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 또한 문해력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또 하나의 이유 중 하나인데 교사들은 문해력 저하의 원인으로 디지털 매체 과사용을 1순위로 꼽았고, 독서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답했단다. 그러나 이는 긴 시간 앉아서 특정 매체를 읽고 번역하여 얻을 수 있는 지식이라는 게, 쉽고 간단하고 눈으로 보고 들으면서 생생(?)하게 얻을 수 있는 것과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한 대답이고 분석되시겠다.

독서를 많이 하고 토론을 열심히 하게 되면 어느 정도 문해력 저하 현상은 막거나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되는바 학생들(초등, 중 고등, MZ를 망라한) 뿐이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문제가 되는 문해력 저하에 대한 해결책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까지 내가 여기저기 매체에 발표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써온 글에서 숱하게 주장(?)해 온 것처럼 우리 말에는 외국어 남용이 너무 심하고 일본이나 중국 측이 원산지로 생각되는 단어가 너무 많이 횡행하고 있는 것도 문해력 저하, 심하게는 짜증 유발의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내용이고 사업이고 건물이고 행사라도 영어를 사용하면 품격이 더 높아 보인다고 착각하기 때문일까? 세계인들이 감탄하고 우리나라의 문맹률이 낮은 이유가 한글 때문임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아름답고 독창적인 우리말을 도외시하는 문화 사대주의일까 아니면 자국 문화를 비하하는 문화 열등감에서 비롯된 현상일까?

가방끈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한자어를, 일본을 통해 듣고 배운 사람들은 일본어를, 미국물 좀 먹은 사람들은 영어를, 이도 저도 아닌 분들은 그저 꼬부라진 말을 많이 쓰는 것이 더 유식하고 고상하고 일깨나 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국민을 계도하고 이끌어야 할 정부나 기관, 언론 등이 오히려 우리말 무시하기에 앞장서고 있는 현상은 눈만 뜨면 보이는 판이다.

엊그제 접한 기사 가운데 한 토막.

'구거 기타 수류지의 소유자는 대안의 토지가 타인의 소유인 때에는 그 수로나 수류의 폭을 변경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민법 제229조 1항에 적힌 내용이다. '구거'(溝渠), '수류지'(水流地), '대안'(對岸) 등 평소 접하기 힘든 낯선 한자어가 열거돼 있어 그 뜻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시민은 많지 않다. 해당 조항은 일상적인 표현을 사용해 '도랑이나 기타 물이 흐르는 땅의 소유자는 건너편 언덕이나 기슭의 땅이 타인의 소유인 때에는 그 물의 흐름이나 폭을 바꾸지 못한다'고 바꿀 수 있다. '몽리자'(蒙利者), '포태'(胞胎), '후폐'(朽廢) 등과 같은 한자어도 민법에 자주 등장하는데, 각각 '이용자', '임신', '낡아서 쓸모없게 된'으로 바꿔 쓸 수 있는 말들이다. '수류지'를 비롯해 둑을 뜻하는 '언'(堰)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수록되지 않은 일본식 한자어다.

이는 학교 다닐 때 그다지 뒤떨어지지 않았고 대학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하고 40여 년을 아이들 가르치는 데 보낸 나로서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손으로 만져본 책이 적지 않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도 이 글 모두를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고 도무지 말을 할 수 없으니 젊은 세대, 학생 세대를 대상으로만 문해력을 언급할 때가 아니다. 옛날 한글 창제를 반대한 이유였던 큰 나라에 대한 사대(事大)와, 문자가 어려워야 군림할 수 있다고 여겼던 사상과 다를 게 무엔가? 이런 부분도 손대지 못하면서 백성들 문해력을 걱정한다고?

#문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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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선 - 영어 교육 학사 -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학 석사 - 도 교육청 문집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 녹조근정훈장 - 원광대학교 국제교류처 강사 - 샘터문학상 우수상 수상 - 한국문학상 특별작품상 수상 - 한용운 문학상 최우수상 수상 - 문학고을 최우수 작가상 수상 - 교원문인협회 회원. 한국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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