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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주 작가가 책의 유서 대목을 읽고 있다.
김은주 작가가 책의 유서 대목을 읽고 있다. ⓒ 이혁진

"북한인권은 통일보다 더 시급한 과제입니다. "

지난 5일 통일부 남북통합문화센터 '벽을 넘은 인(人)터뷰' 토크쇼에서 '열한 살의 유서'를 쓴 탈북민 김은주(38) 작가가 북한 인권의 참상을 전하며 이같이 말했다.

남북통합문화센터는 남북한 공감대를 확대하려는 취지에서 한국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다양한 분야의 북한이탈주민을 초대해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김 작가는 책을 통해 탈북이유와 과정, 한국정착 등 탈북민의 생각과 고민을 전하면서 100여 명의 청중들과 소통했다.

책 제목의 '유서'는 과거 11살이던 김은주씨가 북한 '고난의 행군' 시절 식량을 구하러 나간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다 배고픔에 지쳐 죽음을 목전에 두고 쓴 쪽지를 일컫는다.

책은 2012년 프랑스 외신기자 세바스티앙 팔레티와 공동으로 쓴 것으로 영어를 포함해 8개 국어로 발간됐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열한 살의 유서'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탈북한 지 20년 가까운 세월 속에 한국에 완전히 정착한 김씨는 약간 북한말 어투가 드러났지만 당찬 언변으로 자신의 탈북 스토리를 전했다.

이날 2008년 10살 때 탈북한 김나연(가명,26)씨도 패널로 참석해 어릴 때 유치원과 장마당 등 북에서 경험한 과거를 이야기했다. 북한 장마당은 90년대 당의 배급이 끊겨 2~3백만 여 명의 아사자가 발생할 때 생겨난 시장을 말한다(현재도 확실한 아사자 숫자를 알지 못함).

김은주 작가의 아버지는 고난의 행군시절 영양실조로 생긴 늑막염으로 사망했다. 이후 김씨 가족은 '장마당 꽃제비'로 전락해 먹을 것이 없어 농장의 감자와 옥수수를 훔쳐먹다 흠씬 얻어맞기도 했다.

김 작가에 따르면 꽃제비는 대부분 가출하거나 버려진 아이들인데, 이들 또한 청제비, 무리제비, 가족제비 등이 있다.

김씨 가족은 꽃제비 생활 1년에도 도저히 굶주림을 해결할 수 없자 총에 맞더라도 두만강을 건너기로 했다. 요즘은 돈으로 탈북이 가능하지만 과거에는 도강해 탈북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씨는 당시 두만강에 떠다니는 시체를 볼 수 있다고 증언했다.

두만강을 도강해 중국으로 탈북하더라도 특별한 연고가 없으면 잡혀 북송되기 일쑤다. 돈을 많이 요구하는 브로커들이 남자는 신분을 속여 노동을 착취하고 여자는 인신매매하는 것이다.

김 작가는 엄마와 언니와 함께 중국여성의 꼬드김에 속아 2천 위안에 중국인 남자에게 인신매매로 팔렸다고 말했다. 이처럼 인신매매와 성폭행 등 반인륜 범죄가 중국에서 빈번히 자행되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탈북 당시 14살 언니가 성폭행당한 일을 용기 내 작년 처음 고백했다고 한다. 탈북 첫날 어느 한 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길을 떠났는데 언니가 차에서 내린 한 정체불명 남자에게 붙잡혀 성폭행 당하고 길가에 버려졌다는 것이다. 김씨는 어리고 키가 작아 이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탈북민은 탈북 과정에서 온갖 위험한 일을 마주한다.(자료사진)
탈북민은 탈북 과정에서 온갖 위험한 일을 마주한다.(자료사진) ⓒ 8moments on Unsplash

김나연(가명) 씨는 행방불명된 엄마를 찾아 자주 오는 보위부 사람들로 불안을 느꼈는데 나중에 아버지로부터 엄마가 남조선에 간다며 태국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후 아버지는 어린 딸을 초등학교에 보내지 않았는데 탈북을 준비하기 사전 작업이었다.

그러나 나연씨 부녀는 탈북에 성공했지만 브로커 농간으로 인해 결국 강제북송을 당했다. 북으로 돌려보내진 후 아버지는 보위부에 끌려가고 나연씨 자신은 고아원에 맡겨졌다고 한다. 북한의 고아원은 수용소와 같은 시설이며 병으로 죽으면 아이들이 스스로 묻게 할 정도로 잔혹한 곳이라고 한다.

나연씨는 북에서는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의 부재는 차별로 이어지고, 이 경우 결국 대부분 꽃제비로 거리에서 생활한다고 말했다. 기념일에 주는 사탕과 과자 선물봉지를 받으면 먹을 때 김일성 정일 초상화에 먼저 인사하고 먹었다고 회고했다.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 후 직장을 다닌다는 나연씨는 "고아원 친구들에게 아무 말 없이 급히 나만 탈북해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 이들에게 미안하고 죄책감을 느낀다"며 잠시 흐느꼈다.

일종의 노동 착취인 '노력 동원'... "북에는 창작의 자유가 없다"

국내 탈북민에 대해 김씨는 "아직도 서로 몰라 탈북민이 차별을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역차별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제는 과거보다 인식의 갭이 많이 줄었다 "고 설명했다.

김씨가 북에서 가장 싫어했던 활동은 퇴비동원, 물자동원, 농촌동원, 토끼동원 등 각종 노력동원이다. 김 씨가 "탈북해 여기 오길 참 잘했다. 여러분들은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다"라고 누차 말하는 이유이다.

나연씨는 "한국에서 나를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자존심 상하고 싫었다"면서 "자연스럽게 봐주고 이렇게 탈북 배경과 스토리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연씨는 함경북도 회령인 고향을 특별히 밝히지 않으면 탈북민인지 모를 정도로 우리말에 익숙했다.

작가 김씨는 자신처럼 책을 출간하는 자유를 누리지만 북에는 창작활동 자유가 없다고 증언했다. 정권유지 차원의 활동만 강요하기 때문이다. 노력과 의지가 있으면 뭔가 결과를 기대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데 한국은 이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씨는 북한인권 활동문제는 여야와 좌우 등 이념과 진영과는 상관없는 것인데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특히 일부 정치권에서 특히 이 문제에 침묵하거나, 정당에 따라 다른 입장을 내는 것도 안타깝다고 했다.

김 작가는 중국에서 7년을 생활하다 몽골 수용소에서 4개월 체류한 후 한국으로 들어왔다. 몽골로 들어갈 때는 사막에서 길을 잃거나 밤낮기온차가 심해 얼어 죽는 사람도 많다고 증언했다.

두 딸의 어머니인 김씨는 한국에서 21살 늦은 나이에 일반고에 입학해 공부했다. "지금은 이해하지만 당시 통일교육을 접하면서, 이곳 한국의 학생들이 통일을 거부하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고 말했다.

김정은 정권 들어 코로나 봉쇄로 현저히 준 탈북민

한편 이날 토크쇼의 큰 주제는 역시 탈북자 '강제북송'이었다. '패닉북송'은 탈북민들의 영원한 트라우마이다. 김씨는 "몽골에서 아침에 한국행 비행기가 상공에 뜰 때도 혹시 회항할까봐 걱정하던, 그 초조하고 불안한 심정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면서 "9. 1일 인천공항 상공에 다다를 때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섬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는 광경이었다 "라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무거운 통일담론보다 현재 중국에서 북송되는 탈북민을 막는 게 더 시급하며, 난민이 아닌 불법체류자로 취급하는 중국에 더 많은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북한인권활동에 "동참하겠습니다"는 말이 '큰 힘'이라고 말했다. 누구든 자기가 가진 돈, 지혜, 봉사, 달란트, SNS 등으로 얼마든지 북한인권증진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정권 들어서 국경통제와 봉쇄로 탈북민은 현저히 줄었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탈북민은 196명이다. 김 작가는 "탈북민구조활동에 들어가는 돈도 과거 150만 원~200만 원에서 1천만 원으로 치솟았다"고 분석했다.

두 사람은 두만강을 건너서 몽골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흔히 태국과 캄보디아 등동남아를 통해 입국하는 탈북경로와 다른 길을 선택했는데 예상보다 탈북경로가 다양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김씨 고향 '아오지'는 은덕으로 바뀌었다. 군수 및 화학공장 등 주요 시설이 들어서고 김일성 부자가 방문하면서 '은혜로운 덕'을 입은 장소라는 뜻의 은덕으로 변경됐다가 현재는 경흥군으로 불리고 있다.

이들 'MZ 탈북민' 세대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탈북이라는 모험 이야기를 넘어 북한 주민들의 고통과 인권을 외면하지 않고 인간 본연의 행복과 자유를 찾아주자는 것이다.

남북통합문화센터는 지난해엔 차성주 인민군 소령과 강준혁 탈북화가를 초대해 북한과 한국에서의 삶과 커리어를 공유하면서 남북 주민 간 소통과 공감대를 확대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열한살의유서#김은주#벽을넘은인터뷰#남북통합문화센터#강제북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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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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