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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37개국 2000여 개의 공정무역도시와 마을들(Fair Trade Cities & Towns)에 많은 주민들이 살고 있다. 2000년 작은 마을주민들이 스스로 선언하며 탄생한 이 마을들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경제적으로 소외되는 사람을 만들지 말자는 공정함,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대 등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국제적인 운동을 만들어냈다.

영국의 주요 노예항구였던 랭카스터(Lancaster) 인근에 위치한 가스탕(Garstang)이 바로 그 출발점이었다. 인구 5000명의 이 작은 마을은 과거 대서양 횡단 무역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마을 곳곳의 음식점과 카페, 소매점, 학교 등에서 커피, 초콜릿, 사탕수수, 바나나, 면화 같은 공정무역 제품과 재료들이 판매되고 음식에 사용된다. 학생들은 노예박물관에 방문하여 역사 속의 대항해시대와 그 뒤에 생겨난, 식민지와 노예무역 등에 대한 자료를 보며 역사와 지리를 배운다.

전 세계 공정무역마을 활동가들 모이다

공정무역마을운동은 이처럼 공정무역이 추구하는 원칙과 가치들을 일상 속 가까운 곳에서 배우고 공유하며 실천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국내에서 공정무역 도시와 커뮤니티들의 심사기준, 교육 및 컨설팅, 인증을 담당하는 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는 국제공정무역마을위원회(IFTTSC, International Fair Trade Towns Steering Committee)에서 공인한 비영리단체이다.

이 조직에서 국제 협력을 담당하고 있는 필자는 작년 2023년 가을(9월 22일~24일) 스위스의 소도시 글라루스 노르트(Glarus Nord)에서 열린 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International Fair Trade Cities and Towns Conference)에 참석했다. 그리고 올해는 9월 21일부터 23일까지 아프리카 대륙 최초의 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가 열린 남아공 드라켄슈타인(Drakenstein)을 방문했다. 상황에 따라 매년 혹은 격년으로 열리는 컨퍼런스에는 전 세계 2022개 공정무역마을과 공정무역 업계의 활동가들, 지자체 공무원 및 다양한 단체의 담당자들이 모여든다.

'23년 스위스 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 리플렛 '23년 스위스 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 리플렛
'23년 스위스 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 리플렛'23년 스위스 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 리플렛 ⓒ 국제공정무역마을위원회
'24년 남아공 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 리플렛 '24년 남아공 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 리플렛
'24년 남아공 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 리플렛'24년 남아공 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 리플렛 ⓒ 국제공정무역마을위원회

두 번의 컨퍼런스를 통해 국제 공정무역 도시와 마을들이 어떤 고민과 이슈를 안고 있는지, 이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지 살펴봤다. 유럽의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태동한 공정무역, 그리고 공정무역마을 운동은 현재까지는 주로 유럽 도시와 마을들이 이끌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에게 있어 최근의 화두는 공정한 공공조달(fair procurement), 각 지역의 맥락에 맞게 공정하면서도 기후 친화적인 소비와 라이프스타일을 만드는 것(local, green & fair), 그리고 유치원부터 초중고 및 대학교 교육과정과 깊이 있는 연계를 통해 다음 세대로의 전승(young generation & connectivity) 등을 들 수 있다.

프랑스 모든 음식점, 최소 50% '지속가능한' 식재료 사용 의무화

이러한 인식의 저변에는 2010년대 이후 시민들의 시대적인 요구가 단순히 경제적인 성장을 넘어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인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공공조달 측면에서도 기존에 상당 기간 유지되어왔던 '최저가 입찰' 기준에서 사회적, 생태적인 고려가 점점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2023년 스위스 컨퍼런스에서는 프랑스의 30개 공정무역 단체들의 연합조직인 공정무역 프랑스(Commerce Équitable France)의 내셔널 코디네이터의 발표가 선풍을 일으켰다. 2021년 프랑스 정부가 제정한 '신기후법'이 본격 발효되면서, 2023년부터 모든 음식점들은 최소 50%의 '지속가능한(sustainable)' 제품 혹은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친환경, 유기농, 공정무역, 탄소중립 등이 해당된다.

공정한 소비의 확산: 유럽 정부의 공공조달 전략

지역 맥락에 적합한 방식으로 공정하면서도 기후 친화적인 소비와 라이프스타일은 특히 유럽의 작은 마을과 소도시의 농부들과 장인, 소상공인들과 공정무역의 결합 모델로 나타난다. 벨기에의 공정무역 도시 겐트(Ghent)는 오래전부터 초콜릿 장인들로 유명한 곳이다. 공정무역 카카오를 재료로 하여 지역의 초콜릿 장인들이 만든 '시티 초콜릿(city chocolate)'은 도시의 이름을 단 고급 패키지로 포장되어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판매된다.

또한 중세시대부터 양모 등 섬유산업지대로 번성한 곳이다. 최근 겐트시는 재사용과 재활용, 폐기물 감축 등 순환경제를 촉진하기 위해 섬유, ICT, 식품, 천연광물 등에 대한 '지속가능한 조달'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다. 시청 직원들의 업무용 의류, 신발, 장갑 등이 인권 및 노동조건, 환경에 대한 영향의 최소화 등 사회적으로 책임 있고 투명한 공급망을 통해 제공될 수 있도록, 지역 내 관련 업체들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데 집중한다. 이에 따라 직원들의 업무용 휴대폰 역시 공정무역 인증받은 '페어폰(Fairphone)'이 제공된다.

학교에서 시작되는 공정무역 교육과 청소년 주도의 캠페인

하지만 무엇보다 유럽의 다양한 공정무역 도시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는 학교를 중심으로 한 공정무역 교육과 캠페인이다. 공정무역마을운동의 시작은 영국이었지만 현시점에 가장 많은 공정무역 도시와 마을, 학교가 있는 곳은 독일이다. 2009년 9개에서 시작한 독일의 공정무역 마을은 2024년 현재 890개에 이른다. 한국 기준으로 보면 시, 군 단위에 해당하는 규모의 크고 작은 공정무역 마을들이 16개 연방 주에 골고루 퍼져있다.

뿐만 아니라 963개 공정무역학교, 46개 공정무역대학이 있다. 이들 학교에서는 지리, 역사, 경제, 음식과 영양, 시민성, 지속가능성 등의 주제에 공정무역을 접목하여 학습한다. 공정무역 단체들과 교육 전문가들이 결합하여 정규 교과과정과 연계하여 단계별로 교재를 만든다.

커피, 카카오, 바나나, 사탕수수 등을 재배하는 생산자들의 실제 사례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학생들이 교육받은 내용을 직접 다른 학생과 부모, 교사, 시민들에게 교육받은 내용을 재교육하거나 캠페인 형태로 개발할 수 있도록 한다. 학교 식당에서 공정무역 재료를 이용한 메뉴를 제공하고, 학생들이 쿠킹클래스를 통해 직접 요리에 참여한다.

일상이 된 공정무역, 시장 확대의 원동력

마을과 도시에서의 공정무역 캠페인들은 이러한 학생들이 지역 내 공정무역 가게, 자원봉사자, 공정무역 단체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다. 독일 전역에 69만 명의 학생들이 공정무역 학교에 다닌다. 독일 국민 8400만 명의 절반이 공정무역마을에 살고 있다. 공정무역 독일(Fairtrade Deutschland e.V.)은 이것이 단순히 인구 수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 손꼽히는 독일의 경우 최근 인플레이션과 재정적 불안정성 증가 등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공정무역 제품 매출은 2012년 5억3300만 유로(한화 8000억 원)에서 2023년 25억6000만 유로(한화 3조 8000억 원)로 다섯 배 성장하였다. 독일 소비자 1인당 연간 공정무역 제품 구매액은 30유로(한화 4만3000원)를 넘어섰다. 전국 단위에서 공정무역마을로서의 자격을 2년마다 갱신하며 일상 속 소비와 실천을 확장해 나감에 따라, 공정무역 운동을 성장시키는 견인차가 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도전, 공정한 경제 육성을 위한 노력

올해 컨퍼런스가 열린 남아공의 드라켄슈타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 산지의 한가운데 자리한 지역이다. 국내에 소개되고 있는 공정무역 와인의 생산지가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이 도시는 과거의 인종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t)로부터 벗어나 공정하고 차별 없는 경제를 구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아프리카 최초의 공정무역마을인 이곳에서 개최되는 컨퍼런스에 걸맞게 'Cultivating Equitable Economies'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되었다. '공정한 경제 육성하기'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실제로 컨퍼런스에서 발표자나 토론자로 나선 아프리카의 공정무역 활동가들은 지역의 농부들, 소상공인과 장인들, 사업가들을 기반으로 한 '메이드인 아프리카 브랜드' 개발과 품질, 마케팅, 지역 관광 프로그램과의 연계 등을 강조했다.

작년 스위스 컨퍼런스에서 발표자로 나선 가나의 초콜릿 기업 '페어아프릭(fairafric)'의 청년 활동가 메이퀸(Mayqueen)은 아프리카에서 기후 친화적인 직업 1만 개를 만들어내는 것이 자신들 기업의 미션이라고 밝혔다.

페어아프릭(Fairafric) 청년 활동가 메이퀸(Mayqueen)의 발표 모습 페어아프릭(Fairafric) 청년 활동가 메이퀸(Mayqueen)의 발표 모습
페어아프릭(Fairafric) 청년 활동가 메이퀸(Mayqueen)의 발표 모습페어아프릭(Fairafric) 청년 활동가 메이퀸(Mayqueen)의 발표 모습 ⓒ 이미옥
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 소그룹 토론모습 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 소그룹 토론모습
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 소그룹 토론모습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 소그룹 토론모습 ⓒ 국제공정무역마을위원회

공정무역이 미래다, 지속가능한 세상을 향한 공정무역마을의 비전

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는 백여 명 남짓의 공정무역 도시와 마을 활동가들이 모인다. 지속가능한 미래는 공정과 공평이라는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소박하고 격의 없는, 일상적인 교육과 캠페인, 지역 기반의 다양한 사업 속 어려움과 노하우들을 얘기하고 공유하는 자리다. 작년에 만났던 활동가를 올해도 10년 후에도 만나 안부를 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새롭게 합류한 젊은 활동가들이 찾아와 다양한 관점과 아이디어를 풀어낼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란다.

올해는 벨기에의 고등학교 공정무역 동아리 학생들이 드라켄슈타인 공정무역 학교 캠페인 프로그램 방문과 컨퍼런스에서의 발표와 토론 등에 참여하기도 했다. 공정함을 통해서만 사람과 지구 모두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여러 발표자들이 "Future is Fair, Fair is Future!"(미래는 공정, 공정은 미래)라는 구호를 외쳤다.

'24년 남아공 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에 참석한 벨기에 고등학생 모습 '24년 남아공 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에 참석한 벨기에 고등학생 모습
'24년 남아공 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에 참석한 벨기에 고등학생 모습'24년 남아공 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에 참석한 벨기에 고등학생 모습 ⓒ 이미옥
남아공 와인 생산지와 여행 중소기업 협업 프로그램 발표 모습 남아공 와인 생산지 드라켄슈타인과 여행 관련 중소기업들 간의 협업 프로그램 발표 모습
남아공 와인 생산지와 여행 중소기업 협업 프로그램 발표 모습남아공 와인 생산지 드라켄슈타인과 여행 관련 중소기업들 간의 협업 프로그램 발표 모습 ⓒ 이미옥
전 세계 공정무역마을운동 활동가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전 세계 공정무역마을운동 활동가들이 "Future is Fair, Fair is Future!"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전 세계 공정무역마을운동 활동가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전 세계 공정무역마을운동 활동가들이 "Future is Fair, Fair is Future!"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 국제공정무역마을위원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라이프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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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와 푸드솔루션, 지속가능한 농식품, 공정무역에 대한 연구와 강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음. 현재 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 내셔널코디네이터, 이사. 한양대 사회혁신융합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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